[여행] 쫄깃 과메기, 뜨끈 매생이국...겨울 별미
강원 속초 양미리
경북 포항 과메기
경남 거제 대구
전남 장흥 매생이
속초항에서 어민들이 그물에 걸린 양미리를 떼어내고 있다. 양미리는 10월 말부터 12월까지 제철인데 12월 중순이면 알이 꽉차고 살이 오른다. |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바이러스가 참 끈덕지다. 이럴 때 여행의 순간을 추억하는 방법은?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집에서 먹어 본다. 웬만한 산물은 택배 주문이 가능한 요즘이다. 겨울 별미가 많다. 제철 음식 챙겨 먹으면 건강을 챙기고 꼬여버린 일상도 잠시 잊을 수 있다.
‘못 생겨도 맛은 좋은’ 양미리. |
◇ 강원 속초 양미리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던 양미리다. 이 방송을 보고 “저런 생선도 있네” 했던 ‘청춘’들이 많을 거다. 참 못생겼다. 길이 10cm 안팎의 ‘가냘픈’ 몸매는 조금은 징글맞고 뾰족한 주둥이, 툭 튀어나온 아래턱은 볼수록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맛은 있다. 노릇하게 구워낸 양미리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애가 타는 사람이 여럿이다. 대부분 굵은 소금을 뿌려 숯불에 노릇하게 통째로 구워 뼈째 먹는다. 칼칼함이 당긴다면 조림도 좋다.
양미리는 사는 것이 녹록해지면서 별식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 생선이다. 한때 강원도 북부 동해안 일대에서 참 많이 잡혔다. 그만큼 값도 쌌다. 일대 포구의 포장마차에서 쌈짓돈을 털면 한 접시 수북하게 쌓아 놓고 먹을 수 있었다. 사는 게 넉넉해지면서 잊혀졌다가 몇 해 전부터 ‘추억의 음식’으로 소환됐다. 대표 집산지인 속초항에서 축제가 열리고 칼슘, 아미노산 등이 풍부하다고 알려지며 호기심에 찾는 이들까지 생겼다.
양미리와 도루묵. |
이런 양미리가 10월 말부터 12월까지 제철이다. 특히 12월 중순이면 알이 꽉차고 살이 오른다. 이 무렵 속초항 등에서는 수십명의 촌부들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어내고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값은 여전히 싸다.속초항 등 현지에선 1만5000원이면 한 바구니 가득 양미리를 받을 수 있다.
양미리와 비슷한 이유로 눈길을 끄는 도루묵도 제철이다. 양미리와 비슷한 시기인 12월 말까지 많이 잡힌다. 알이 꽉 들어찬 생물 ‘알도루묵’이 반응이 좋다. 살이 쫀득하고 알도 씹기 적당할 정도로 아삭거린다. 냉동시킨 도루묵 알은 질겨져서 본래의 맛을 잃는다. ‘알도루묵’은 얼큰한 찌개로 먹어야 제맛이다.
속초는 이름난 관광지다. 설악산, 영랑호 등 둘러볼 곳이 많고 깨끗한 겨울 바다도 좋다. 언제 찾아도 가슴을 탁 트이게 할 볼거리다.
포항 구룡포 해안의 과메기 덕장.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말린 것이 상품으로 꼽힌다. |
◇ 경북 포항 과메기
찬 바람 불면 과메기도 생각난다. 생미역이나 김을 곁들여 초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하고 새콤한 맛에 몸이 절로 떨린다. 과메기 역시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이다. 특히 상인들은 바닷바람 매서운 12월과 1월의 것을 상품으로 친단다.
과메기는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관목(貫目)’에서 비롯됐다. 대표적 과메기 생산지인 경북 포항 구룡포 일대에서 관목을 과메기로 발음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청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청어 어획량이 줄며 요즘은 꽁치가 청어를 대신한다. 청어 과메기도 나오긴 하지만 양이 많지 않다. 청어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에 비해 크기가 크고 살점이 조금 더 두둑하지만 기름기와 잔뼈가 많아 호불호가 갈린다.
‘상생의 손’ 조형물로 잘 알려진 포항 해돋이 명소 호미곶. |
구룡포는 과메기의 중심지다. 포항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과메기 생산량의 약 90%가 구룡포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룡포 해안의 온도와 습도, 바람의 세기 등이 과메기 말리기에 최적이어서다. 원재료도 중요하지만 과메기는 얼마나 꾸덕하게 잘 말리느냐가 관건이다. 강원도 인제 용대리의 황태나 전남 영광 법성포의 굴비가 유명한 것 역시 잘 말려진 덕분이다. 현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0마리+야채세트’가 약 3만원이다. 지난해보다 약 20% 올랐다. 포항시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꽁치가 늦게 올라와 가격이 올랐다. 12월 들어 풀릴 것”이라고 했다.
구룡포 시장 인근에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다.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거리를 재현해 뒀는데 드라마에 많이 나왔다. 또 세밑이니 포항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관광지)은 기억한다. 바다에서 솟아 오른 거대한 손 조형물(상생의 손)이 유명한 그곳 맞다. 해는 언제든 뜨니 급할 것은 없다.
거제 외포항 위판장에 나온 대구. |
거제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
◇ 경남 거제 외포리 대구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말이 있다. 눈이 내릴 때 대구가 많이 잡히고 비가 내릴 때 청어가 많이 잡힌다는 얘기다. 명실상부 겨울을 대표하는 생선이 대구다. 산란기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가장 실하고 맛도 좋다. 담백하고 시원하게 끓여낸 대구탕은 겨울 한기를 제대로 잊게 만든다. 지방 함유량이 적고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주목받는 대구다. 게다가 각종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대구로 유명한 곳이 경남 거제 장목면 외포리다. 진해만 최대의 대구 집산지다. 얘기는 이렇다. 대구가 산란을 위해 주로 회유하는 곳이 거제 앞바다의 진해만이다. 여기에서 잡힌 대구들이 외포항으로 와서 풀린다. 전국 대구 물량의 30% 이상이 이곳을 거쳐 간다. 게다가 외포항은 대구 산란기에도 조업과 위판이 허용된다.이맘때면 위판장 주변 좌판에는 ‘대구 융단’이 깔린다. 크기가 70cm를 넘나든다. 얼음을 넣고 포장을 잘 해 주기 때문에 서울까지 가져가는 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상인들의 말이다. 물론 택배 주문도 할 수 있다.
담백하고 시원한 대구탕 |
항구 주변에는 생대구를 이용해 탕, 찜, 회 등을 내는 음식점도 10여 곳이나 된다. 직접 간다면 대구찜을 눈여겨본다. 생대구 살이 부서지지 않게 김치에 싸서 찐다. 회 역시 현지여서 맛볼 수 있는 메뉴다. 또 거가대교도 메모해둔다. 거제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8.2km의 다리다. 거가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돋이가 멋지다. 거가대교는 장목면에서 중간지점인 중죽도까지는 사장교로 돼 있다. 여기서 가덕도까지는 해저터널로 만들어졌다.
장흥 내저마을 어민들이 매생이를 채취하고 있다. |
◇ 전남 장흥 매생이
바다 향기를 오롯이 품은 매생이도 겨울 별미다. 파래나 김의 ‘사촌’쯤 되는 해초다. 그러나 훨씬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며 향이 깊다. 철분과 칼슘이 많고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빈혈 예방이나 숙취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굴과 함께 넣고 끓인 뜨끈한 매생이국은 겨울 한기를 제대로 떨어낼 겨울 별미다. 겨울 한기가 제대로 가신다.
매생이는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채취한다. 특히 초사리가 으뜸으로 꼽힌다. 매생이는 발을 설치한 시기에 따라 채취시기가 달라진다. 보통 한 발에서 매생이를 2회까지 채취하는데 처음 채취하는 것이 초사리다. 향이 짙고 아주 부드럽다.
매생이와 굴을 넣고 끓인 매생이국/한국관광공사 제공 |
전남 장흥 대덕읍 내저마을은 국내 대표적인 매생이 산지 중 하나다. 이맘때면 촌부들이 손길이 분주하다. 매생이 채취는 손이 많이 간다.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야 하니 새벽, 아침이 따로 없다. 발에 붙은 매생이는 직접 딴다. 배 바닥에 몸을 완전히 엎드린 채 고개를 숙이고 발을 걷어 올린 후 매생이를 채취한다. 가는 매생이는 손으로 직접 행군다. 너무 가늘어서 기계작업이 안 된다. 매생이는 바다향기와 함께 촌부들의 수고도 품고 있다.
장흥은 문학의 고장이다.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김영남…. 한국 현대문학을 이끈 숱한 문인들이 이 땅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선사한 남도의 꾸밈없는 삶과 질펀한 풍경이 사방천지에 널렸으니 혹시라도 장흥에 간다면 흔적 좇아 두루 구경한다. 멋진 바다 보려면 관산읍의 정남진 전망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