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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아시아경제

초록이 전하는 위로·희망 띄운 茶香

조용준의 여행만리

전남 보성, 봇재고개 탁 트인 정상에서 바라본 차밭 한폭의 풍경화


코로나19에 갇혀 모든 일상 '일시정지'

차 한잔에 번뇌까지 못 씻어도

갑갑한 마음에 작은 위안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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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재 정상에 서면 산비탈의 능선을 따라 곡선과 볼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차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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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여행만리'의 여정이 멈춘 지 2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남녘땅에선 매화, 산수유, 동백 등 봄꽃들이 전하는 소식이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코로나19로 집밖을 나서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여행을 떠나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번 주까지 멈춰야하는건 아닌지 고민에 망설임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사시사철 초록의 싱그러움을 뽐내는 보성 차밭에서 번지는 다향(茶香)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비탈의 능선을 유려하게 휘감은 차밭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든 일상에 잠시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지면으로 옮겨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보성으로 여행을 가시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모두 숨죽이며 외출마저 자제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전해드리려는 작은 마음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에게도 희망의 봄은 찾아오고 코로나19도 물러가겠지요.

'보성 땅은 보배로운 싹이 자라나는 곳/바다 안개는 늘 바람결에 실려와/이슬 맺힌 다섯 신선 봉우리에 차밭을 일구었네…./오늘도 녹차 한잔에 모든 번뇌가 씻어지네….'(시인 임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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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을 녹차명소로 만든 대한다원 차밭

따듯한 녹차 한잔에 모든 번뇌가 씻어지고 희망찬 힘이 샘솟는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전남 보성이 바로 그런곳이다. 보성으로 가는길,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드물다. 마을로 들어서도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마을길 사이로는 서글프게 핀 짙붉고 새하얀 매화가 홀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보성땅에 들면 초록빛 차밭에서 번지는 다향에 사람의 마음을 취하게 한다. 차밭은 봄의 '싱그러움', 여름의 '푸르름', 가을의 '하얗고 노란 차꽃'으로 계절마다 다른 멋과 향기를 뽐낸다.


보성 읍내에서 영천리 율포로 이어진 18번 국도변에 조성된 수많은 차밭을 따라 봇재 정상에 섰다. 등고선마냥 녹차 이랑이 층층이 휘감은 산과 멀리 득량만 바다와 섬들, 그리고 그 사이의 논밭이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특히 영천저수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봇재다원 옆 휴게소에 서면 곡선과 볼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계단식 차밭을 따라 펼쳐져 장관을 맛 볼 수 있다.


사방이 차밭이다. 산등성이를 올려다봐도, 산자락을 내려다봐도 골골마다 차나무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산비탈의 굴곡을 따라 만들어진 차밭은 서 있는 위치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을 만들어낸다.


보성이 녹차명소가 된 배경은 천혜의 기후조건 때문이다. 보성군 문화 해설사는 "보성은 물빠짐이 좋은 산성토양인데다 풍부한 강수량, 일년내내 안개 끼는 기후 등 3박자를 모두 갖췄다" 며 "특히 안개는 '타닌' 이라는 차의 쓴 성분을 막아 차 맛을 좋게 만든다."고 말했다.


봇재고개에서 차머리를 우측으로 돌리면 안방과 스크린을 달궜던 명장면을 만날 수 있는 보성 최대 차밭인 대한다원이 나온다. 보성녹차밭으로 더 유명한 대한다원은 1939년에 개원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장영섭 회장이 인수해 일군 국내 유일의 녹차관광농원이다. 녹차 외에도 삼나무, 편백나무, 향나무, 주목 등 약 300만 그루의 관상수가 있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주차장에서 다원 입구까지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은 코로나19로 잔뜩 움츠리며 외출을 자제했던 사람들에게도 여행의 묘미를 한 층 더 돋구어 준다.


하늘을 찌를듯 삼나무가 도열한 청록의 차밭은 이국적인 풍경이다. 연초록 잎이 싱그러운 봄날에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CF를 찍었던 삼나무 오솔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초록빛 차밭이 곡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일렁인다.


봄이 무르익을 때면 아낙네들이 차밭 이랑에 들어가 찻잎을 딴다. 바구니를 하나씩 옆에 끼고 차를 따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정겹다. 이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줄을 잇는다.


지금까지 눈으로 차향을 만 끽했다면 이젠 입으로 차향을 느낄 차례다. 옛말에 '차를 마시듯, 밥 먹듯 흔한 '이라는 뜻으로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우리 조상들 중에 차 문화를 즐기는 '차인'들이 많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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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술자리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차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침착해지며 건강도 돕는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녹차를 어떻게 마셔야 할까. 도시인들은 '티백'을 종이컵에 담아서 편하게 녹차를 마시지만, 차인들은 차향을 잃을 수 있어서 잘 권하지 않는다.


차를 제대로 마시려면 좋은 '찻잎'뿐만 아니라 '좋은 물'과 '차 그릇'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차인들은 조언한다. 그래야 차의 원래 향과 맛을 잃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도를 정립해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1786-1866)'는 차와 탕수를 넣는 방법에 따라 차의 맛ㆍ향ㆍ풍미가 모두 다르다고 '다신전'에 기술하기도 했다.


다향 가득한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자 "차를 마시면 군자와 같이 삿됨이 없는 맑은 성품을 갖는다"고 읊은 초의선사의 말이 다향에 실려 오는 듯하다.

여행메모

  1. 가는길 :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화순을 거쳐 40분쯤 달리면 보성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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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볼거리 : 득량만입구에 있는 율포 해수녹차탕이 유명하다. 지하 120m에서 끌어올린 지하 암반 해수에다 녹차 진액을 섞은 전국 유일의 녹차해수탕. 탕안에서 고기잡이배 등 바다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인근에 있는 벌교에는 보물로 지정된 홍교(사진)를 비롯해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인 중도방죽, 보성여관 등이 볼거리다. 봄이면 일림산 철쭉이 유명하다.
  4. 먹거리 : 보성엔 녹차 성분이 함유된 녹돈, 녹우 등 녹차음식이 많다. 하지만 대표먹거리는 벌교 꼬막이다.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을 정도로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다. 꼬막전, 꼬막부침, 꼬막전골, 꼬막 회 등 다양한 꼬막요리는 그 맛이 일품이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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