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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없이 세계 어디서든 회의…'가상 기업' 뜰까 [임주형의 테크토크]

코로나19 유행 이후 재택근무 활성화

비디오 스트리밍 기술 통해 작업환경 구현

원격 근무 만으로 운영되는 '가상 기업' 가능성

비용절감·신속한 인재 확충 장점

정부·지자체 세수 피해 우려도

美·英 등 선진국서 '디지털 서비스세'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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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회의 서비스 소프트웨어를 가동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일상 생활은 물론 기업 내부에서도 언택트(비대면) 추세가 활성화 됐습니다. 특히 기업의 언택트 업무를 가능케 한 것은 비디오 스트리밍 기술 덕분이었는데, 직원들이 회사로 직접 출근할 필요 없이 집에서 화상 채팅 등을 통해 회의나 의견 교환을 하면서 사무실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이제 아예 사무실 없이 스트리밍 기술만을 이용해 운영되는 기업의 탄생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즉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 만을 통해 작업하며, 실제 본사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가상 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상 기업 모델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험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9년 영국 런던에서 창업된 온라인 행사 주최 기업 '호핀(Hopin)'입니다.


호핀은 자체 제작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최대 10만명의 동시 참석자 수를 지원하며, 이벤트 공간에 모인 참석자들은 서로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화상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 보도에 따르면, 호핀은 창업한 해인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업가치 20억달러(2조2660억원)를 초과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또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는 기업 가치가 56억달러(6조3448억원)를 넘어서며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IT 회사로 올라섰습니다.


호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상 기업' 모델에 있습니다. 호핀은 직접 제작한 화상 회의 및 채팅 소프트웨어를 회사 내에 도입, 400여명에 이르는 전 직원의 재택근무화에 성공했습니다. 재택근무 만으로도 직원 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기 위해 '수석 재택근무 책임자'라는 직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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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이벤트 주최 기업 '호핀'의 구인란 모습. 모든 직원이 원격근무(Remote) 형태로 근무한다. / 사진=호핀 홈페이지 캡처

실제 호핀 공식 홈페이지 내 구인란을 보면,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통해 일을 할 예정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특히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엔지니어 직무의 경우 영어만 가능하면 전세계 어디에 있든 즉시 고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상 기업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회사는 호핀 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기업인' 직방' 또한 지난달 9일 전 직원 200여명에 대한 최근 원격 재택 근무 제도를 전격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구글·아마존·HSBC·골드만삭스 등 다른 나라 대기업들 또한 재택근무 비중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 회사들은 가상 기업화에 공을 들이고 있을까요? 가상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비용절감입니다. 모든 직원이 원격 재택근무 만으로 일을 하면, 많은 자본을 들여 사무실을 매입하거나 본사 건물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건물 유지비나 세금, 관리자 인건비 또한 아낄 수 있으니 매우 저렴한 기업 운영 방안입니다.


가상 기업은 인재 채용 경쟁에서도 매우 유리합니다. 실제 호핀의 경우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전세계 어디서나 공간적 제약없이 곧바로 고용할 수 있었기에 초고속 성장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니 부파랏 호핀 창업자 겸 CEO는 지난달 유럽 IT 전문 매체 '시프티드'와 인터뷰에서 "원격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회사를 아주 빨리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며 "우리는 새 빌딩을 짓고 노동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할 시간에 소비자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가상 기업은 회사의 운영 비용을 절감하고 신속한 인재 확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특히 정부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업들이 새 건물에 투자하고 입주하지 않으면 국가와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금이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호핀의 경우 본사가 런던에 위치한 영국 회사이지만, 직원 고용은 전세계 어디서든 순식간에 해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개발자 인건비가 매우 높은 런던 대신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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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핀의 화상 회의 및 채팅 소프트웨어 가동 모습. / 사진=호핀 홈페이지 캡처

앞으로 가상 기업 모델을 채택하는 회사가 늘어나면, 기업이 본사가 위치한 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능력은 감소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렇다 보니 최근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가상 기업에도 포괄적인 세금을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디지털 서비스세는 디지털 사업을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순이익 대신 매출에 세금을 매겨, 부동산·산업 설비 등에 의존하지 않는 IT 기업에게 적절한 부담을 지우자는 취지입니다.


이와 관련, 리지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 장관들과 공동 명의로 미국 정부에 보낸 서신에서 "코로나19 위기는 모든 기업이 공평한 부담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라며 "전세계 어디서든 물리적으로 세금을 책정할 수 있는 기반 없이 영업할 수 있는 IT 기업들도 순이익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팬데믹 이후로 소비 습관은 더욱 디지털 서비스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이들은 다른 나라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함으로써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수익을 창출하는 만큼 공평한 세금을 내고 있지는 않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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