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의 '백일몽'…용두사미로 끝난 대권도전
경선출마 선언 101일 만에 사퇴
등판 전 지지율 1위 올랐지만
'슈퍼화요일'서 처참한 성적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대권도전이 백일몽으로 끝났다. 대통령 경선 출마를 선언한지 101일 만에 사퇴를 발표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자금을 동원하고, 독특한 선거전략을 구사해 등판 전부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찻잔 속의 태풍'도 없이 쓸쓸이 막을 내렸다. 세계 8위 부자, 3선 출신 뉴욕시장이라는 그의 성공신화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4일(현지시간) '슈퍼화요일' 경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경선에서 하차하는 이유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서"라며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조 바이든) 뒤에서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현지 언론은 블룸버그의 사퇴 발표에 대해 첫 TV토론 데뷔전에서 난타를 당했을 때 "사퇴하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과 함께 "'슈퍼화요일'의 초라한 성적표는 그의 결정을 번복할만큼 뼈아픈 패배였다"는 분석을 내놨다.
블룸버그는 경쟁후보들 보다 반년가량 늦은 11월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자금과 이색 선거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져 관심을 모았다. 후원금도 모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재산으로만 선거운동을 벌인 것이다. 100일 동안 5억6000만달러(약 6600억원)를 쏟아부었는데, 이는 민주당내 경쟁 후보들의 10여배에 달하는 규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SNS부대'를 꾸려 월급으로 약 3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 출마 당시 이미 후보 등록이 마감돼 초반 경선 4개주(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과감히 건너뛰고 '슈퍼화요일'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런 그의 전략은 대중의 반감을 샀다. 경쟁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으로부터 "민주주의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가 하면, 그가 가는 곳에는 '민주주의는 판매용 상품이 아니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룸버그의 도전은 하나의 정치적 실험이었다"며 "마케팅기법은 효과적이었으나 제품은 그에 못미쳤다"고 논평했다.
한때 그는 여론조사 지지율 1위에 오르며 본격 등판하기도 전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플로리다주 여론조사에서 27.3%의 지지율로 1위로 급부상했다. 플로리다주는 캘리포니아(416명)와 텍사스(228명)에 이어 대의원 219명이 배정된 슈퍼화요일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민주당내 경쟁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집중견제를 당했다.
그의 기세는 지난달 19일 첫 TV토론에서 난타전을 당하며 꺾이기 시작했다. 경쟁 후보들의 공격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시장 재직시절 실시했던 불심검문 논란, 회사 내 여성 차별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결과는 첫 데뷔전이었던 슈퍼화요일의 처참한 결과였다. 블룸버그는 슈퍼화요일이 열리는 14개주에서 단 한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미국령 사모아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이 곳은 경선 판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블룸버그의 사퇴 소식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에게 대통령이 되는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말해줄 수 있었다"며 "만약 그랬다면 그는 10억달러를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어 "'미니' 마이크와 그의 별난 친구 톰 스타이어는 선거를 매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려운 방법을 통해 알아냈다"고도 했다. 톰 스타이어는 앞서 출마를 포기한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명으로, 그 역시 재력을 갖춘 사업가 출신이다.
블룸버그는 포브스 기준 자산 584억달러(약 69조원)으로 세계 8위 부호다. 블룸버그사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디어기업으로 키워 막대한 부를 일군 뒤 2001년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재선에 성공한 뒤인 2007년 공화당을 탈당해 2009년 무소속으로 뉴욕시장 3선에 성공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뉴욕 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