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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느끼는 ‘목포시간여행’

한국관광공사 추천 ‘관광 100선’ 목포

원형 온전히 남은 일제강점기 근대역사문화공간

가수 이난영·김시스터즈 발자취 남은 공간들도 인기

하늘과 바다 사이 오가는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 절경

“막막한 강안(江岸)을 흘러와 쌓인 사아(死兒)의 장소/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神)들의 항구를 지나서.”


시인 최하림은 ‘빈약한 올페의 회상’에서 반도 끝자락의 부두, 목포를 두고 ‘노래를 잃어버린 신들의 항구’라고 말했다. 목포에서 성장기를 보낸 시인의 눈에 비친 이 도시의 묘지(錨地)가 쓸쓸해서였을까. 신들이 잃어버린 노래는 천연히 사람에게 이어져 시대를 사로잡은 가객을 탄생시켰다. 주제는 당연히 목포였다. 열아홉 가수 이난영이 망국의 슬픔을 노래한 ‘목포의 눈물’은 조선의 한을 넘어 이후 호남, 그리고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도시 곳곳에선 여전히 그녀의 구슬픈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그 곡조에 이끌려 시작된 목포 여행은 예정된 듯 목포의 원도심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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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상케이블카는 북항스테이션에서 출발해 유달산 정상부에서 ‘ㄱ’자로 꺾여 해상을 지나 반달섬 고하도에 이르는 국내 최장 3.23km 길이의 케이블카다. 다도해의 금빛 낙조와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목포여행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제공 = 목포시청

1897년 대한제국은 목포항 개항을 선언했다. 외세의 압박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 의지로 이뤄진 첫 개항이었다. 일본은 목포에 간척사업을 펼치며 도심을 확장해나갔고 이때 이뤄진 도시계획으로 지금도 목포 구도심은 격자식 도로를 중심으로 한 계획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식민 현실 속 일제의 수탈에 맞서 은행, 상점 세우며 지켜낸 '민족의 자존심'

조선의 자원 수탈에 매진한 일제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목포에는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 줄지어 개점했다. 제일은행, 식산은행, 18은행 등이 먼저 자리 잡은 목포에 1929년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호남은행 목포지점이 도시 중심가에 문을 열었다. 앞서 1920년 호남의 자본가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호남은행의 창립멤버에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조부 현준호,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등이 있었다. 민족자본 은행의 지점이었지만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은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현 목포 근대역사관 2관)과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 규모와 완성도를 자랑했다. 


지금 이 건물은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변모해 목포 개항, 이난영과 김시스터즈, 극작가 김우진과 소프라노 윤심덕에 대한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전하고 있다. 이곳을 필두로 옛 일본영사관, 동양척식회사, 적산가옥, 상점, 창고, 방공호 등을 도보로 이동하며 만날 수 있다. 특히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눈도장을 찍은 일본영사관 건물은 영상에서의 아름다움을 사진에도 담으려는 젊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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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호남은행의 목포지점 건물은 지난해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개관해 목포의 다양한 근현대사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 목포시청]

최초의 걸그룹 멤버이자 첫 한류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프로듀서 이난영

개항장 목포에는 막대한 자본과 사람이 몰려들어 도시 곳곳에 문화를 향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서양화가 김환기, 극작가 김우진, 소설가 박화성, 수필가 김진섭, 시인 김지하, 문학평론가 김현, 극작가 차범석, 소설가 천승세, 무용가 이매방….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본향이 목포였다.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난 이옥례, 아니 이난영은 그 맨 앞줄에서 지금도 호명되고 있다. 1932년, 16세 때 삼천가극단 막간무대에 오른 것을 계기로 단원으로 발탁돼 가수가 된 이난영은 2년 뒤 발표한 목포의 눈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1936년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 후 ‘목포는 항구다’, ‘다방의 푸른 꿈’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당대 함께 활동한 ‘오빠는 풍각쟁이’의 박향림,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화류춘몽’의 이화자와 ‘저고리 시스터즈’를 결성해 한국 최초의 걸그룹 멤버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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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데뷔한 ‘김시스터즈’는 1959년부터 14년 간 미국에서 활동했다. 이들을 프로듀싱한 이난영(가운데)과 미국의 유명 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의 진행자 에드 설리번(그 왼쪽), 그리고 김시스터즈 멤버들의 모습. [사진제공 =인디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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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로 남편 김해송이 실종되고 그는 자신의 딸 김숙자, 김애자, 그리고 자신을 많이 닮은 조카 이민자를 직접 가르쳐 1953년 미8군 부대 무대에서 데뷔시켰다. 김시스터즈의 시작이었다. 미8군 무대를 휩쓴 어린 소녀들은 인기에 힘입어 1959년 한국 걸그룹 최초로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큰 인기를 얻은 TV쇼 ‘에드 설리반쇼’에 33회 등장하며 비틀스보다 더 많이 출연한 뮤지션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들의 미국 활동 당시 주급은 무려 1만 5000달러로 당시 라스베이거스의 고액 세금 납부 순위 4위에 오르며 인기를 과시했다. 목포 원도심 목원동에 자리한 ‘화가의 집’에는 당시 이난영과 김시스터즈의 미국 활동 당시 무대의상과 공연 자료 등이 다양하게 소장돼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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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일본영사관. 1900년에 지어진 목포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있다. [사진제공 = 목포시청]

목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낙조와 야경으로 한눈에 만날 수 있는 목포해상케이블카

북항에서 출발해 목포를 상징하는 유달산을 거쳐 이순신 장군이 왜란 중 판옥선을 정비한 반달섬 고하도까지 이어지는 목포해상케이블카는 목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풍경을 선사한다. 총 길이 3.23km로 국내 해상케이블카 중 가장 긴 거리를 자랑하는데, 목포 신항만과 목포대교, 유달산 곳곳에 숨은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목포여행 필수코스다. 고하도 승강장 뒤편으로는 섬 정상 전망대로 향하는 고즈넉한 산책로가 조성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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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고하도 해상데크길. 멀리 목포대교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제공 = 목포시청]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정비했다고 전해지는 판옥선 13척을 쌓은 형태의 전망대 아래로는 목포대교 아래로 이어지는 해변 데크길이 놓여있어 산과 바다 풍경 모두를 즐기며 걸을 수 있다. 원도심 일원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문화재로 지정된 뒤 목포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지난해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며 목포는 옛 도시의 흔적과 문화예술의 원천을 고스란히 품은 특색있는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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