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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by 뉴스1

맨발의 성지…하루 1000명에게만 허락한 '사색 길'

북한산 우이령길…우이역~석굴암~교현리 7.7㎞ 서울 대표 단풍 명소

삵·맹꽁이·까막딱다구리의 마지막 피난처…'공깃돌' 5개 올라간 오봉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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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단풍길. 사람에 치이기 쉬운 다른 단풍명소와 달리, 우이령에서는 호젓하고 정감적인 가을낭만을 즐길 수 있다.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이름, 우이령을 간다. 소의 귀(牛耳)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는 이름처럼 그렇게 길고 부드러운 고갯길이다. 우이령은 옛사람들이 한양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던 산길이었다가, 6.25전쟁 이후에 군사도로가 되었고,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침투했던 1.21사태 이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


사람 출입이 금지되자 DMZ처럼 생태계가 보존되는 효과가 생겨, 북한산과 도봉산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아름다운 자연이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993년 서울시와 경기도가 우이령에 4차선 도로를 내겠다고 추진할 때 많은 시민이 우이령을 보전하자는 환경운동을 전개해 도로계획을 무산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에 의해 자연이 지켜진 최초의 사례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이령을 개방하라는 압력이 지속되어, 2009년 북한산 둘레길을 개설할 때 하루 통행 인원을 1천 명으로 제한하는 것을 조건으로 길을 개방했다. 이 결정은 보전과 개발의 갈등을 중재한 ‘평화협정’이었으나, 이후에도 전면적인 개방을 하라는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우이동은 예전부터 유원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난잡한 불법시설들이 계곡을 점령하고 소나무마다 삼겹살 기름이 번지르르했던 적이 있었으나 국립공원 지정 후 질서는 잡히고 계곡은 깨끗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가가 공원구역에서 제외되면서 북한산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들어서고, 급기야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서 북한산 경관을 ‘독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확 트인 북한산과 백운대를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날려보내던 우이동 입구의 풍경은 이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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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북한산우이역~우이령 정상 3.3㎞ "호젓하고 편안한 맨발 산책길. 단풍에 넋 놓고, 맨발에 따끔거리고"

주말 아침의 우이역 주변은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서성대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우이동은 백운대로 가는 가장 빠른 등산로 입구이고, 북한산 둘레길의 시점이자 종점이며, 우이령 입구로서 항상 북적거리는 ‘등산 거점’이다.

우이령으로 가는 길의 초입은 음식점 거리다. 대추나무집, 산울림, 상록수 등의 구식 간판 사이로 리랙스, 하이그라운드, 하니앤손스 등의 신식 간판들이 들어서며 유원지 풍경이 바뀌고 있다. 변함이 없는 길가의 거목들과 옛 건물들은 보전해서 우이동의 옛 영화(榮華)가 기억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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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입구 상가의 가을 풍경. 빨강・노랑・파랑의 세계.

가파른 아스팔트 도로를 20분쯤 올라가, 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확인을 해야 우이령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예약은 국립공원공단의 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하고, 65세 이상과 장애인, 외국인은 전화예약도 가능하다. 예약확인을 끝내고, 100m쯤 더 가서 경찰부대 정문을 지나야 비로소 흙길이 시작된다. 딱딱한 포장길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흙길이 열리자 "야, 흙이다!" 하며 탄성을 낸다. 흙을 밟는 순간 자연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이 생기고, 몸에 긴장감이 풀린다.


11월 초의 우이령은 단풍 절정기다. 단풍보다 사람에 치이는 다른 단풍명소와 달리, 우이령은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호젓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단풍을 즐길 수 있다. 굽이굽이 꺾여진 길을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단풍 풍경이 발걸음을 잡는다. 단 두 가지의 색만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가을하늘과 그 아래 붉은 숲길이다. 꽃잎처럼 떨어져 뒹구는 낙엽으로 길도 붉고, 사람들의 얼굴도 불그스레하다.


서너 명이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이 몇 굽이 휘어지며, 완만한 경사로 올라선다. 우이령 길은 '맨발의 성지'다. 과감하게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대니 누워있던 흙 알갱이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깔깔하고, 따끔따끔하고, 톡톡 쏘아댄다. 그 작은 알갱이 하나가 거대한 몸 전체를 움찔하게 한다. 잠자던 신경들이 다 일어나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아우성친다. 살아있는 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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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정상의 2개의 장애물. 왼쪽은 탱크를 저지하기 위한 구조물 / 오른쪽은 생태계보호구역의 사람출입을 막기 위한 대나무 장애물.

우이령 정상에 다다르자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길 양쪽에 버티고 있다. 적의 탱크를 저지하기 위한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의 끝에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다. 대나무를 촘촘하게 엮어 세운 출입금지시설이다. 우이령 정상은 백두대간의 한북정맥이 지나는 마루금으로, 이곳을 통해서 상장능선이나 도봉산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일대는 우이령 주변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특별보호구역이다. 삵, 맹꽁이, 까막딱다구리 등 멸종위기의 생물들이 ‘간신히’ 살고 있는 마지막 피난처다.


고개의 정상 밑 너른 공터에 '국민 가곡'이었던 바위고개 해설판이 있다. 그 고개가 이곳이라는 설명대로, 이곳은 옛 풍경을 연상하면서 주변의 소소한 자연을 즐기는 장소다. 예전에는 화장실과 벤치만 있었는데, 현재는 야외무대와 ‘긴급재난 안전쉼터’라는 소형 건물과 야생동물 회피시설이라는 철골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풍경을 상하게 할 만큼 꼭 필요한 시설인지 세심한 풍경관리를 하면 좋겠다.

◇ 우이령 정상~석굴암~교현리 4.4㎞ "신기한 오봉에 감탄, 신작로 같은 단풍길에서 사색하며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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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 최고의 뷰 포인트인 오봉 전망대에서 감탄하는 사람들. 사진의 왼쪽 아래는 사방사업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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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당겨본 오봉. 다섯 개의 봉우리는 분명 자연의 흔적인데, 조각가가 정교하게 다듬은 작품으로 보인다. 왼쪽의 낮은 바위는 관음봉.

고개를 조금 내려가면 우이령의 뷰포인트인 오봉(666m)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는 정말 예술작품이다. 자연이 어떻게 저런 암봉을 다섯 개씩이나 비슷비슷하게 빚어냈을까? 봉우리마다 어떻게 작은 바위들을 공깃돌처럼, 족두리처럼 올려놓았을까?


북한산의 바위들은 약 1억 6000만 년 전에 땅 속의 용암이 솟구쳐 오르다가 땅 밑에서 식어 굳은 화강암이다.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지표가 무너지면서 암석이 노출되고, 빗물과 얼음에 의해 계속 깎이고 패여서 남은 것이 오봉과 같은 바위 봉우리이다. 맨 위의 '공깃돌'은 가장 단단한 부분만 남은 핵석(核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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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우이령길. 탐방로 양쪽의 낮은 덤불이 국수나무. 사람 발길을 막아 숲 안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오봉 전망대 밑에 1960년대에 설치한 ‘사방사업 기념비’가 있다. 북한산은 행궁(임금의 별궁)이 다 떠내려갈 만큼 홍수 피해가 컸던 산이다. 홍수를 대비해서 우이령 길 주변의 비탈면에 수로를 내고, 돌을 쌓고, 떼와 나무를 심었다. 우이령 길에는 그 때 심은 물오리나무와 아까시나무가 많다.

우이령 길의 숲은 2009년 개방 당시보다 많이 우거졌다. 숲 안쪽에는 신갈나무와 졸참나무가 많고, 길 가장자리에는 국수나무가 많다. 줄기 속에 국수 모양의 하얀 속껍질이 있어 국수나무라 하는데, 이 식물은 가지를 무성하게 퍼뜨려서 사람 발길이 숲속으로 미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이령을 개방하기 전에 많이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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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에서 사는 세계적인 희귀식물. 왼쪽 미선나무. 꽃이 예쁜 부채 같다는 이름이다. 사진 황영심 / 오른쪽 산개나리. 개나리보다 색이 연하다. 사진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우이령에서 애지중지해야 하는 식물은 미선나무와 산개나리이다. 미선(美扇)나무는 꽃모양이 아름다운 부채 같다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희귀종이고, 산개나리는 개나리보다 색이 연하고 잎 뒤에 잔털이 많은 식물로 북한산의 깃대종(상징종)이다. 한편, 우이령에는 신발이나 자동차에 묻혀오는 씨앗으로 퍼진 귀화식물(외국에서 들어와 정착한 식물)도 많다. 외래종이 너무 많이 유입되면 토종식물들이 밀려날 수 있어 생태계 관리를 잘해야 한다.


오봉 전망대에서 15분쯤 내려서면 운동장처럼 넓고 평편한 공터가 나온다. 예전에 군부대의 훈련장이었는데, 요즘에는 탐방객들의 점심 장소다. 이 넓은 '훼손지'와 위쪽 저수지를 야생화 초원과 습지생태계로 복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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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풍경. 가운데 관음봉, 오른쪽 오봉의 다섯 번째 봉우리 밑에 자리한 전각과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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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 건너편 통유리 바깥으로 조각 중인 부처님 모습. 그윽한 표정이 깊다.

여기서 가파른 도로 700m를 15분쯤 숨차게 오르면 석굴암이다. 입구에서 산과 절을 올려다본다.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을 이룬 관음봉과 오봉의 다섯 번째 뾰족 봉우리가 언제 쏟아질지 모를 가파른 산세다. 그런 수직의 비탈 아래 좁은 땅에 축대를 쌓아 몇 개의 전각을 올렸다. 거기까지만 단촐한 암자의 풍경이고, 그 아래에 크게 들어선 법당과 요사채를 함께 보니, 이제 암자가 아니라 커다란 사찰이 되었다. 새로 지은 대적광전을 들여다 보니 통유리 바깥으로 부처님을 조각하는 불사가 한창이다. 얼마 전에 주지스님과 차 한잔할 때 불국사와 석굴암을 조성한 김대성 얘기를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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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에서 바라본 상장능선. 위험한 암릉이 많고, 우이령 일원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금지다.

다시 유격장 공터로 내려와 교현리 방향으로 걷는다. 키 큰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서서 신작로 분위기가 나는 길이다. 길에서 뛰는 아이들, 조깅하는 청년들, 왁자지껄한 단체, 조용한 연인들, 생태탐사 나온 사람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소풍 나온 장애인들도 많다. 그러기에 딱 좋은 길이다.


가을 가뭄에 조용하던 계곡이 내려갈수록 졸졸졸 소리를 낸다. 빈 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도 나고, 팥배나무 빨간 열매가 풍성한 식탁에서 곤줄박이가 찌지직~ 노래하는 소리도 들린다. 바사삭 바사삭 발길에 부서지는 낙엽 소리, 그리고 바람에 팔랑팔랑 몸을 뒤집는 낙옆 위로 가랑잎이 떨어지는 장면에도 소리가 '보이는 듯'하다. 두런두런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자연의 소리처럼 듣기 좋다. 소의 귀가 아니라 사람의 귀가 호강하는 우이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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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현리 방향 우이령 길 입구. 왼쪽 시멘트 담장에 재미있는 벽화가 많다.

교현리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해서,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진 시멘트 담장을 지나면 곧 큰 도로가 나온다. 회색빛 도로와 건물들, 어지러운 광고판들, 웅웅 거리며 질주하는 차량들, 매캐한 공기... 방금 지나온 길과 너무 딴 판의 세계다. 새삼 우이령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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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의 깊은 가을. 번잡한 도시의 가까운 곳에 이렇게 호젓하고 편안하게 걷는 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이령은 서울과 경기도, 북한산과 도봉산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두 지역의 자연을 붙이고 사람을 소통시키는 ‘공동평화구역’이다. 사람에게도 생물에게도 도시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다. 그런데도 우이령길을 전면 개방하라는, 심지어는 도로를 개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우이령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의 흔적이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 것은 평화협정(예약제)에 의해 절제된 이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라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우이령에 남아있는 경찰 건물도, 군부대도 이전하고 본래의 자연으로 복원시키면 좋겠다.


온통 도로와 건물과 소음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언제든지 쉽게 찾아가 맨발로 걸으며, 소의 귀에다 대고 속상한 말을 실컷 해댈 수 있는, 그렇게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워낭 길’ 하나쯤은 남겨야 하지 않을까? 우이령을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세상이길 바란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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