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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by 경향신문

[단독]“성폭행당하고도 왜 가해자와 함께 바다에 갔나” 한국기원 ‘어이없는’ 미투 질의서

윤리위 보고서 제목엔 피해자·가해자 이름 나란히 적기도

피해자 “김성룡은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보고서 재작성해야”

경향신문

한국기원 윤리위원회가 김성룡 전 9단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성 질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한국기원 ‘(코세기 디아나-김성룡) 성폭행 관련 윤리위원회 조사·확인 보고서(2018년 6월1일 작성)와 질의서.

한국기원이 김성룡 전 9단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성 질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기원은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 채택도 거부했다. 피해자인 헝가리인 코세기 디아나 기사가 2009년 6월5일 김 전 9단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난 4월16일 폭로하면서 ‘바둑계 미투’가 불거졌다.


22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기원의 ‘(코세기 디아나-김성룡) 성폭행 관련 윤리위원회 조사·확인 보고서’(2018년 6월1일 작성)와 질의서를 보면, 윤리위는 “김성룡씨가 진술인(코세기 기사)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춤을 진하게 추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코세기 기사에게 물었다. 코세기 기사가 김 전 9단에게 호감이 있었다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전제를 담은 2차 가해성 질문이다. 윤리위는 보고서 제목에 피해자 이름을 앞세워 가해자 이름을 병렬 표기하기도 했다.


윤리위는 “진술인과 친구가 김성룡씨와 다음날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면, 진술인은 그 약속을 한 시점에 이미 김성룡씨 집에서 숙박할 것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김성룡씨 집을 방문했던 진술인이 친구가 오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도 물었다.


코세기 기사는 지난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9단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아마추어 기사 ㄱ씨에게 전화해 안전한지 물었다. ㄱ씨가 ‘그 사람 요즘 외국인들이랑 일도 하고, 문제없겠지’라고 말해 이를 믿고 갔다. 친구를 기다리다 술을 많이 마시게 돼 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윤리위는 코세기 기사가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윤리위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다음날 가해자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간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인데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코세기 기사는 “일이 발생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친구 두 명을 따라다닌 것이고 친구들이 김 전 9단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 같아 같이 있었다”고 했다.


윤리위는 코세기 기사의 복장도 지적했다. 윤리위는 “청바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벗기가 쉽지 않은 옷으로 디아나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탈의에 협조했다는 김성룡 측 진술이 사실일 경우 준강간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코세기 기사가 “당시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자 윤리위는 “디아나가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며 코세기 기사의 진술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윤리위는 코세기 기사가 제출한 증거를 채택하는 것도 거부했다. 코세기 기사는 사건 이후 친오빠에게 당시 상황을 적어 보낸 e메일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윤리위는 “e메일의 편집본이 아니라 전문이 있어야 한다”며 거부했다. 코세기 기사는 “사적인 내용이 많아 변호사의 조언을 토대로 관련 내용만 제출했다”고 했지만 윤리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리위는 조사 결과를 내며 “김성룡이 즉각적으로 자료를 제출했고, 진술 내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김성룡 측 주장이 상대적으로 일관성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성룡이 디아나를 집으로 불러 같이 술을 마시고 자다가 성관계를 시도한 것은 분명하나 성관계를 했는지, 준강간이 성립되는지는 미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코세기 기사의 주장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축소했다.


코세기 기사는 “질의서와 보고서는 김 전 9단에게 유리하게 작성됐다”며 “김 전 9단이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윤리위가 보고서를 재작성해야 한다. 현 위원들을 차기 윤리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했다. 동료 프로기사 223명도 재작성 요청 서명에 동참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보고서에 대한 지적은 들어 알고 있다. 재작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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