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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by 중앙일보

독립투사 후손 재일교포, 유도 태극마크 달았다…“일본이 겁낼 에이스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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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재일교포 출신 유도 여자 국가대표 허미미. 여자 유도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는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이 목표다. 김경록 기자

“한국 국가대표가 됐으니 세계 최강 일본을 꺾고 우뚝 설 거예요. 태극마크를 달면서 결심했어요.”


재일교포 출신 유도 여자 국가대표 허미미(20·경북체육회)는 이렇게 말했다. 허미미는 올해 한국 유도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대형 신인이다. 지난 2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통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지난 6월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조지아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여자 57㎏급에서 세계적인 강호를 잇달아 메치며 금메달을 따냈다. 8강에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라파엘라 실바(브라질)를 꺾었고, 준결승에선 세계 4위 에테리 리파르텔리아니(조지아)를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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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그랜드슬램 금메달을 목에 건 허미미(왼쪽 둘째). 사진 I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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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국제 대회 출전에서 우승한 뒤, 김정훈(왼쪽) 경북체육회 감독과 기뻐하는 허미미. 사진 IJF

신인 허미미는 단 한 차례 입상으로 단숨에 세계 33위까지 올라섰다. 한국 현역 여자 57㎏급 선수 중 최고 순위다. 한국 유도계에선 “한국 여자 유도 선수 중 올림픽 메달 획득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가 바로 허미미”라고 말한다. 일본 언론도 “일본 여자 57㎏급 에이스 후나쿠보 하루카의 강적이 될 것”이라며 경계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허미미는 “일본 친구들도 두려워하는 한국 유도의 에이스가 되겠다”고 말했다.


허미미는 200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일본 국적이다. 조부모는 모두 한국 국적이다. 그는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를 따라 6세 때 처음 도복을 입었다. 타고난 힘과 센스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중3 땐 1000여 명(본선·지역 예선 포함)이 출전한 전 일본 중학 유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유도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 여자 유도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7체급 중 4체급에서 금메달(52·70·78·78㎏급)을 휩쓴 최강국이다. 고교 시절에도 줄곧 전국 톱3 안에 든 특급 유망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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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는 할머니 유언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는 우리말이 서툰 편이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초·중·고교 내내 일반 일본 학교에 다녔다. 한·일 이중국적자라서 한국 청소년 대표로 뛴 적도 있지만, 특별히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행을 결심한 건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는 “미미가 꼭 한국에서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허미미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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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허석의 순국기념비 옆에 선 허미미. [사진 경북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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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처음 입촌한 허미미. 사진 대한체육회

그런데 이 과정에서 허미미가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허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지역에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경북 군위군에 순국기념비가 있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감독은 선수 등록 업무를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를 방문했다가 군위군 관계자로부터 “허미미가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감독은 경북도청, 국가보훈처, 주일대사관 등은 물론 지역 면사무소까지 찾아다니며 가족 관계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까지 나서서 허미미와 김 감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허미미의 할아버지인 허무부 씨가 허석의 증손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허미미는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태극마크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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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는 톡톡 튀는 MZ세대다. 와세다대 2학년인 그는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잡을 만큼 욕심이 많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는 ‘공부하는 유도 선수’로 유명하다. 일본체육대, 메이지대 등 유도 강팀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명문 와세다대에 입학했다. 현재 스포츠과학부 2학년이다. 허미미는 “고교 시절 막연하게 명문대생을 꿈꿨는데, 와세다대는 유도부 전력도 좋은 편이었다. 입학하면 좋아하는 유도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A학점을 받기 무척 어렵지만, 유도를 하면서 경쟁하는 건 익숙해서 괜찮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만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스포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와세다대에서 유도와 학업을 병행하던 허미미는 이달 초 처음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 합류했다. 키 1m59㎝의 허미미는 밸런스가 좋고 힘도 뛰어난 편이다. 일명 ‘뽑아 메치기’로 불리는 강력한 업어치기가 주 무기다. 일본 특유의 기술 유도를 배워 한국 선수들이 약한 굳히기(조르기·꺾기·누르기) 실력도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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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의 주특기는 업어치기다. 일본에서 유도를 배워 굳히기도 탄탄하다. 사진 IJF

한국의 ‘체력 유도’를 더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정훈 감독은 “이제 겨우 국제 대회에 데뷔했다. 앞으로 꾸준히 세계 무대를 누비며 경험을 쌓으면 더욱 강한 선수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미미의 롤모델은 현 여자 대표팀을 지도하는 김미정(1992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감독이다. 허미미는 “레전드 김미정 감독님께 올림픽 금메달의 비결을 전수 받겠다. 진천 선수촌 ‘지옥 훈련’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각오는 돼 있다. 이겨내겠다”고 자신했다.


그는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낸다고 했다. 특히 멤버 뷔의 열성 팬이다. 허미미는 “지치고 힘들 때 BTS 노래를 틀고 흥얼거린다. 금세 긍정 에너지가 솟아 기운을 차린다. 유도 선수로 유명해지면 BTS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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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의 본격 시험대는 10월 세계선수권이다. 국제 대회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김경록 기자

허미미의 꿈은 2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한국 여자 유도는 긴 침체기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조민선 이후 올림픽 금맥을 캐지 못했다.


허미미의 첫 시험대는 오는 10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리는 2022 세계선수권이다. 국제 대회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있는 대회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허미미는 “현조 할아버지 순국기념비 앞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다짐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허미미는


생년월일: 2002년 12월 19일(일본 도쿄)


소속: 한국 여자 57㎏급 국가대표, 경북체육회


체격: 1m59㎝, 57㎏


학력: 일본 테이쿄중-테이쿄고-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2년


주특기: 업어치기, 굳히기


수상: 2017 전일본중학선수권 우승, 2022 트빌리시 그랜드슬램 금


특기사항: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허석


취미: BTS 노래 듣기


꿈: 파리올림픽 금, BTS 멤버 뷔 만나기


기타: 2021년 일본 국적 포기. 한국 선택


좋아하는 음식: 삼겹살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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