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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중앙일보

칠십 대 할머니부터 여덟 살 손녀까지 3대가 손잡고 걷는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걷기축제 26일 개막

총 1735명 응모 사연 심사해 210명 선발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 퇴직 부부 많아



손민호의 레저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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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강릉시 두산동이오.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 홀로 부산 내려와 앞만 보고 살아왔소. 이제 살 만하여 돌아보니 벌써 칠십 중반이구려.… 어릴 적 땔감 구하러 다니던 그 길에 김연아 선수가 앞장서 유치한 평창올림픽 스케이트장도 생겼다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소.… 나도 어릴 적 학교 동무들과 걷듯이 함께 걷고 싶소. 이 늙은 감자바우도 꼭 데려가 주시오.”


잠깐 목이 멨던 것도 같다. 일흔네 살 어르신이 보낸 사연은 구구절절 사무쳤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다 늙어버린 당신이 이제 어릴 적 동무들과 걸었던 길을 소망하고 있었다. 이 소박한 그러나 지극한 소망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 길을 걷는 것이 이러한 일일 테다.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을 꿈꾸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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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앰블렘. 강원도를 상징하는 새 두루미를 형상화했고, 오륜기에 쓰이는 다섯 가지 색을 입혔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걷기축제 참가자를 모두 선발했다. 다 합쳐 210명만 참가할 수 있는데 1735명이 응모했다. 애초 공지한 대로 선발 기준은 사연이었다. 참가자들은 ‘이 가을 나는 왜 강원도 심심산골까지 찾아가 길을 걸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이유를 밝혔다. 그 사연을 다 읽었다. 저마다 인생이 담겨 있어 조심조심 읽었다. 다 읽고서 거듭 깨달았다. 길을 걷는 건 얼마나 위대한 행동인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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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리바우길 걷기축제가 오는 26일 강원도 정선 아리랑시장에서 열린다. 평창올림픽 레거시(Legacy·유산)를 주제로 한 최초의 축제로, 중앙일보와 강원도·정선군·평창군·강릉시가 공동 주최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유일하게 인정한 평창올림픽 공식 트레일(Trail·걷기여행길)이다. 올림픽이 열린 세 고장, 정선과 평창 그리고 강릉을 잇는다. 모두 9개 코스로 전체 길이는 131.7㎞다. 올림픽의 감동이 희미해진 지금, 아니 올림픽 시설 활용을 두고 여태 시끄러운 요즘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아마도 유일하게 남은 올림픽 유산이다. 그 유산에서 잔치를 벌인다. 늦은 감도 있지만, 이제라도 올림픽을 기릴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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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를 뽑는 일은 고역이었다. 참가비가 없어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연 하나하나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암 환자는 왜 이리 많은지, 은퇴자는 왜 이리 많은지, 오늘 우리의 삶은 왜 이리 버거운지. 신청자들의 삶을 저울질하는 것 같아 심사 내내 끙끙 앓았다.


물론 기준은 있었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와 가족 신청자는 아무래도 점수가 후했다. 칠십 대 할머니부터 여덟 살 손녀까지 3대가 동행하는 가족, 축제 기간에 결혼 40주년을 맞는 부부의 사연이 기억난다. 최고령 참가자는 84세고, 최연소 참가자는 6세다. 외국인과 결혼 이주 여성도 있고, 가수와 피아니스트도 있다. 3주일에 걸쳐 9개 전 코스를 다 걷는 참가자는 3명이다. 이 중 한 명은 유튜브로 현장 중계를 할 예정이다. 아울러 인연이 빗나간 1500여 명께 한 말씀 올린다. 감사하고 죄송하다. 내년엔 꼭 같이 걷기를 바란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제주올레보다 힘든 길이다. 강원도의 높은 산도 오르고 긴 고개도 넘는다. 그래도 큰 걱정은 안 한다. 걷기축제는 제한 시간이 없다. 완주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름 그대로 길을 즐기는 축제이어서다. 벌써 설렌다. 당신과 함께 걸을 생각에 가슴이 뛴다. 길에서 만나자.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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