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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서울문화재단

음악을 완성하는 세공사, 음향 엔지니어 곽은정

뮤지션의 소리와 감성을 기록하는 일이란

한 곡의 노래를 우리가 듣기까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과 많은 사람의 노력을 거치게 된다. 음향 엔지니어, 그 중 스튜디오 엔지니어는 악기와 보컬 등 음악의 재료를 섞고 다듬는 사람으로서 음악의 완성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들과 작업해 온 곽은정 엔지니어는 좋아하는 음악, 뮤지션과 함께하기에 긴 인내의 시간과 고달픔도 결국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을 완성하는 세공사, 음향 엔지니

‘음향 엔지니어’라고 하면 그게 어떤 직업인지, 대체 어떻게 시작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다. 돌이켜보면 내 경우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우연이 겹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사실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이 직업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광고 녹음실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1년 가까이 됐을 때 ‘이왕 할 거라면 음반 제작을 위한 녹음실로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가 참여한 결과물이 몇 년이 지나도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별다른 인맥도 없고 관련된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나는 엔지니어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유학을 준비 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갑작스레 소개받아 한 녹음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데다, 그곳에는 선배 엔지니어가 한 명도 없었기에 ‘민폐만 끼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혼자 버티면서 일을 체득해야 했다. “그 당시 열심히 일했습니다!”가 아니라 “그렇게 했어야만 했습니다!”에 가까운 절박한 시절이었다. 그 곳은 외국계 직배사 녹음실이었는데 내가 들어간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당시 가장 유명한 엔지니어 중 한 분과 회사가 동업을 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핫’한 녹음실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 좋게도 좋은 뮤지션들과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로 요리한다는 것

크게 음향 엔지니어 라고 하는 직업은 공연, 영화, 방송, 광고 등의 분야로 세분화된다. 그 중 스튜디오 엔지니어는 말 그대로 녹음실(studio)에서 녹음(recording)과 믹스(mixing)를 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각각의 악기들과 목소리를 녹음하고 듣기 좋게 섞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처럼 좋은 재료를 준비해서 잘 버무린 후 보기 좋게 플레이팅 하는 것과 비슷하다. 스튜디오 엔지니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뮤지션의 음악 역사(소리와 감성)를 기록(Record)하는 사관’이라고도 생각한다. 흔히 ‘엔지니어’라는 단어 때문에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테크닉과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며 좌뇌와 우뇌를 풀 가동해야 하는 직업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영화에 조감독과 감독이 있듯 스튜디오의 어시스트 엔지니어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믹싱 엔지니어로 입봉하게 된다. 내 경우, 오래 같이 작업한 뮤지션의 앨범에는 보컬 디렉터와 코프로듀서(coproducer)로, 최근에는 편곡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아직 한국에는 드물지만 해외의 경우 프로듀서를 겸하는 엔지니어들이 많다.) 윤상, 브라운아이즈, 윤건, 리쌍, 정인, 이적, 김동률, 존박, 스윗소로우, 아스트로비츠, 캐스커, 선우정아, 이영훈 등 싱어송라이터와 대부분 작업해왔는데, 작업할 때에는 뮤지션의 진심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다.

음악을 완성하는 세공사, 음향 엔지니

1. 5집 앨범 'There ia a man'은 곽은정 엔지니어의 첫 입봉작이다. 2. 지난 해 작업한 김동률의 6집 앨범.

한 앨범이 발표되면 그 음악은 리스너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대신 그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교감과 공유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소중한 무엇이다. 그래서 녹음실에서는 최대한 편안하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곤 한다.

음향(스튜디오) 엔지니어가 되려면?

 

아무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첫째.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음악을 들을 때 믹스한 엔지니어의 마음에 이입해 감상하려고 노력한다. 엔지니어의 성향, 성격을 파악해보는 것도 나만의 감상 포인트!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어시스트 시절을 잘 버티기 위해서는 묵묵함이 필요하고, 일반 회사원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체력과 정신력이 바탕이 되면 좋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은, 음악은, 특히 상업음악은 공감의 문화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긴 시간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작업. 그리고 음악

이 일은 해나가는 데에 많은 인내와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청춘의 긴 시간을 투자하고도 그만두는 안타까운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남녀를 떠나 묵묵히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며 수련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엔지니어는 음악산업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과 시간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지금은 교육기관이 늘어나 동문이나 친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일한 만큼 수입이 많아지는 시스템이 되어가는 듯하다. 다만 음악 매체의 변화에 따라 걱정되는 부분은 없지 않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음악을 담는 매체가 CD에서 mp3 등 파일로 바뀌었다. 기록(Record)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매체는 중요한 그릇이다. 같은 영화라고 해도 화질이 좋은지 떨어지는지, 혹은 화면이 큰지 작은지에 따라 연기자의 디테일한 감정까지 세세히 느낄 수 있는가가 달라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접하는 mp3 음원은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결과물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큰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한 것을 작은 휴대폰으로 볼 때 생기는 간극이랄까.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작은 모니터로 보아도 잘 보이게 자극적인 색을 쓰는 경우가 생긴다. 사운드도 좀 더 자극적인, 어떤 매체로 들어도 귀를 확 끌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매일 영화관에 갈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작지만 휴대가 간편한 매체로 영화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큰 화면과 좋은 사운드로 영화를 보고 싶어 우리는 영화관을 찾곤 한다. 음악도 좀 더 퀄리티를 담아낸 매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작업자들이 디테일한 부분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홀대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 곡의 노래는 수많은 사람과 감각, 긴 시간과 노력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라 본다. 좋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 시대다. 더불어 엔지니어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글 곽은정
음반, 음원의 녹음과 믹스를 담당하는 스튜디오 엔지니어. 여성 1호 믹싱 엔지니어로 윤상, 브라운아이즈, 이적, 김동률, 캐스커 등 쟁쟁한 싱어송라이터들과 작업해왔다. 홍대 앞에서 작업실 ‘KWAK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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