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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겨레

울진 바닷속 백두대간에서 달콤한 대게살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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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와 홍게가 제철이다. 신선한 대게와 홍게를 잡자마자 삶아 먹으면 담백한 맛이 입안에 그윽하게 퍼진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수중 3개 봉우리 맞닿은 ‘왕돌초’ 해양생물 최적 서식지 ‘황금어장’

가장 맛있는 2월, 후포항·죽변항 경매 분주…9㎝·다리 9개 이상 엄선

선도 빨리 떨어져 산지에서 싱싱하게…“택배는 찐 상태로 받으세요”


“대게는 이렇게 뒤집어서 삶아야 해요. 물에 담가 익히면 안 되고요, 증기로 삶아야죠.” 지난달 25일 경북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식당 ‘왕돌회수산’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주인 임효철(56)씨가 대게 수십마리를 커다란 솥단지에 넣어 삶고 있었다. 몰려든 손님들이 너도나도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대게는 지금이 제철이다. 어부들은 12월 말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잡는다. 5월부터는 금어기다. 대게만큼 전국권 ‘유명 인사’가 있을까. 2002년 배우 신구가 한 광고 영상에서 “니들이 게 맛을 알아?”란 대사를 ‘치는’ 바람에 각종 패러디 영상이 쏟아진 대게. 최근에도 화제다. 한 10대가 ‘썩은 대게’라 주장하며 시커멓게 변한 대게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리자 수산물 전문 유튜브 채널 ‘입질의 추억’ 운영자인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가 그저 잘린 대게의 ‘흑변 현상’이라며 시식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 조회 수는 40만이 넘었다. 그만큼 대게는 대중이 선호하는 식품이다. 도대체 대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까지 오는 걸까. 제대로 알고 먹는 게 ‘슬기로운 미식생활’이다.

어선 위에서 암수 구별하는 이유

울진은 대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고유명사처럼 돼버린 ‘영덕대게’란 호칭 때문에 영덕을 대표 어획지로 인식하는 이가 많은데, 울진군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23㎞ 떨어진 수중암초지대 ‘왕돌초’ 일대가 서식지다. 영덕 어부가 이곳에서 대게를 잡으면 ‘영덕대게’, 죽변 어부가 잡으면 ‘죽변대게’가 되는 것이다.


‘왕돌암’ ‘왕돌잠’이라고도 부르는 왕돌초 일대 바닷속에는 맞잠(남쪽), 중간잠, 셋잠(북쪽) 등 3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마치 백두대간처럼 연결돼 우뚝 솟아 있다. 이런 자연조건은 해양생물이 서식하기에 맞춤한, 먹이가 풍부한 환경을 만들었다. 어부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황금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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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 ‘왕돌회수산’ 주인 임효철씨가 쪄서 내온 대게와 홍게. 이맘때면 열리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에는 전국의 미식가들이 후포항을 찾는다. 참여하는 가게마다 잘 삶은 대게·홍게를 먹으려고 손님들이 몰린다. 올해는 지난 22일부터 4일간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박미향 기자

30년 넘게 대게잡이 어선을 운영한 임기봉(68) 선장은 요즘 왕돌초 일대 바다로 자주 나간다. 울진군 죽변면이 고향인 그는 731t 배를 몬다. “30분 거리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1~2시간 걸리는 바다로도 나간다”는 그는 한번 출항할 때마다 바다에 부표 60개를 띄운다. 부표 아래 바다에는 길이가 대략 200m 되는 그물이 깔린다. 그는 친환경 생분해그물을 쓴다. 선원은 4명. 30대 인도네시아인 아메, 50대 윤명진씨, 60대 한종길씨, 70대 임기준씨 등이다. 다른 어선에 견줘 한국인 선원이 많은 편이다. “고되지요. 아침(8시께)에 위판장에 나가 전날 잡은 대게 팔고, 또 나가요. 새벽 3시에 나갔다가 오후 2시에 오기도 하고, 낮 12시에 나갔다가 저녁 6시에 오기도 해요.” 한 배당 승인된 대게 수를 채우면 돌아오는 것이다. 선원이 총 5명이면 600마리, 4명이면 500마리, 3명이면 400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450마리, 500마리만 잡혀요. 600마리 못 채울 때가 많지만 잡는 순간에는 기분 좋지요.”


몸통 길이 9㎝ 이상인 대게만 잡는다. “그 아래(9㎝ 이하)는 바다에 버려요. 우린 딱 보면 알죠.” 길이는 윤명진씨 혼자 잰다. 그게 원칙이란다. “그래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도 나가죠. 암컷도 바다로 버려요. 개체 수 유지할라믄 그래야죠.” 우리가 먹는 대게는 모두 수컷인 것이다.


“날이 지저분하면 안 나가지요.” 그가 말한 ‘지저분한 날’은 파도가 높은 날이다. 2월 중순을 넘기자 파도가 높아진 날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기자도 여러 차례 승선 취재를 하려 했으나, 번번이 파도 때문에 무산됐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가장 대게 맛이 좋다는 2월, ‘게 잡는 날’은 소중하다.


그는 죽변자망 자율공동체 회장이기도 하다. “20여년 역사를 가진 공동체인데 자원관리 차원에서 고민 많죠. 우리(죽변 어부) 같은 데 전국에 없을 겁니다.” 총 45명이 회원인데 이 중 대게잡이 어부는 35명이다. “우린 통발로는 안 잡아요.” 대게는 그처럼 자망(바다에서 물고기 떼가 지나는 길목에 쳐놓은 그물)으로 잡거나 통발로 잡는다. “자망으로 더 큰 걸 잡을 수 있다”고 임 선장은 설명한다. 대게잡이 배에서 끼니는 어떤 맛일까. “대게 한마리 큼지막한 거로, 라면 삶아 먹죠. 맛이 환장합니다.(웃음)”


그는 평생 소설 ‘노인과 바다’ 주인공처럼 바다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1남 1녀를 키워내는 데 도움이 컸던 대게가 고맙기만 하다.

힘센 박달대게, 한마리에 수십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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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울진 후포항에서 펼쳐진 대게 경매 모습. 울진군청 제공

우리 식탁에 대게가 오기까지, 그 여정의 시작점이 어선이라면 위판장(위탁 판매가 시작되는 시장) 경매는 길목이다. 아침 8시30분이면 울진군 죽변항이나 후포항 위판장에선 경매가 시작된다. 울진죽변수협 임준식(43) 경매사는 “요즘 대게 잡은 배가 평균 27척 들어온다. 34척 들어올 때도 있다. (지난해) 12월9일부터 위판이 시작됐는데, 2월 넘자 점점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5일 기준 한마리당 대게 가격은 1만7700원으로 책정됐다고 한다. “날마다 달라요. 잡히는 물량에 따라 변동이 심합니다. 한마리당 2만~3만원 가기도 하고요. 단가가 매일 달라도 경매사들은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경매사 경력 7~8년인 그의 눈은 매섭다. “몸길이가 9㎝ 이상 안 되는 것은 치수 미달로 안 팔고요, 다리 개수(집게다리 포함해 모두 10개)는 반드시 확인합니다. 1개까지 없는 것은 ‘통과’해요. 집게다리는 반드시 있어야 상품으로 취급합니다.” 지난 20일 후포항 인근에 있는 왕돌회수산(울진군 후포면 울진대게로 119-1)에선 대게 한마리가 2만5천~3만5천원에 팔렸다. 한마리당 무게는 대략 800~900g. 주인 김현화(55)씨는 “아주버니가 선장이라 바로 받아서 중개수수료가 안 붙은 가격”이라고 말한다. 이 일대에 들어선 90여개 식당마다 가격차는 조금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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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와 홍게 수십마리를 삶기 전 솥단지에 담은 모습. 박미향 기자

수심 200~300m에 서식하는 대게는 몸통이 커서 ‘대게’가 아니고 8개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지고, 대통처럼 비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혹자는 영덕 축산면에 있는 죽도산 대나무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대게 중의 대게’인 박달대게도 잘 잡힐까. 박달대게는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차서 붙은 이름이다. 임 경매사는 “먼바다에선 잘 잡히는데, 껍질이 단단하고 다리도 잘 안 떨어진다. 잡은 대게를 100%로 치면 그중 10%가 박달대게”라고 말한다. “한마리당 수십만원대로 고가”라고 그가 말을 이었다. 단지 일반 대게보다 커서일까. “대게끼리도 싸웁니다. 바다에서 생존하려면요. 승리한 대게죠. 오래 살아남은 놈인 겁니다. 탈피를 거듭하면서 더 단단해지고 살이 꽉 차고 맛이 좋아집니다. 수족관에 넣어도 박달대게는 오래 살아남아요.”

“작아도 살이 꽉 찬 게 좋아요”

대게의 참맛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 궁금하다. 대게는 선도가 빨리 떨어지는 생물이라서 산지에서 즐기는 게 좋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에 미식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유다. 올해는 지난 22일부터 4일간 울진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울진 죽변항과 후포항에는 수십개 전문 식당이 있다. 이 식당들 대부분은 ‘전국 택배’를 한다. 왕돌회수산 주인 김현화씨는 “요즘은 살이 꽉 찬 대게가 적은 편이다. (크지만 속이 빈 대게 한마리보다) 작아도 살이 꽉 찬 대게 두마리를 주문하는 게 낫다”고 알려준다. 속이 꽉 찬 대게를 골라내는 법도 궁금하다. 왕돌회수산 주인 임효철씨는 다리가 붙은 몸통 부분을 눌러보라고 알려준다. “단단하고 야물다는 느낌 받으면 좋은 거죠. 들었을 때 묵직하게 무게감이 나가야죠. 너무 가벼우면 살이 없는 거예요.” 김현화씨는 “택배 주문은 잘 찐 대게를 받는 게 더 안전한 편”이라고 조언한다. 죽변자망 자율공동체 소속 ‘덕성호수산’(010-8855-8917)에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 질 좋은 대게는 배를 눌렀을 때 물컹물컹하지 않다. 내장도 짜지 않다. 그리고 단맛이 돈다.

베테랑 셰프의 ‘게살볶음’ 요리법 : 닭 육수에 죽순·버섯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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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진진의 게살볶음. 박미향 기자

2017년부터 3년간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를 받았던 중식당 진진의 주인장 겸 요리사는 왕육성씨다. 그는 40년이 훌쩍 넘는 경력의 중식 대가다. 그가 자신의 식당 메뉴인 ‘게살볶음’ 요리법을 공개했다. “식당용 센불이 필요 없는 요리다. 가정에서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아 발라낸 대게 살 200~300g(1인분), 채 썬 죽순,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등을 준비한다. 죽순 등은 물에 데쳐 짠 다음 소금으로 간한다. 육수 한 국자 정도 준비하는데, 반드시 닭 육수여야 한다. 왕 셰프는 “소고기 육수는 게살 맛을 죽인다. 담백한 닭 육수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대게를 삶을 때는 찌는 시간이 중요하다. 그는 “잘 못 찌면 살이 질겨지고 비린내가 난다”고 말한다. 대게 배를 위로 한 채 김에 익힌다. 찜용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은 낮추고 20~30분 정도 더 찌면 된다. “신선할 때 빨리 삶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죽순·새송이버섯·팽이버섯 등과 게살을 1대1로 양을 맞춘 다음 섞어서 살짝 볶다가 육수를 부어 마저 끓인다. 왕 셰프는 “오래 끓이면 안 된다. 게살이 질겨진다”고 말한다. 육수가 끓어오르면 바로 불을 끄고 달걀흰자(3개 분량)를 넣는다. 함께 섞어 살짝 끓이면 완성이다. 소금이나 설탕, 고추기름 등으로 간을 한다. 식초 몇 방울은 달걀 비린내를 잡아주는 데 좋다고 한다. 하지만 다진 생강은 절대 넣지 말라고 말한다. “생강과 게살은 맛의 궁합이 안 맞습니다.” 그가 식품으로서 대게의 장점을 말했다. “대게는 영양소도 풍부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담백한 맛이죠. 무엇보다 보드라운 식감이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울진 대게 맛보고 둘러볼 여행지


국립해양과학관: 국내 최초로 해양과학을 주제로 만든 전시관. 브이알(VR) 체험관과 전망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양과학관 건물과 전망대를 잇는 ‘바다마중길393’은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죽변면 해양과학길 8)


덕구계곡: 해발 998m 높이의 응봉산이 뒤쪽에 자리잡은 계곡이다. 요즘 엠제트 세대에게 인기 많은 덕구온천이 바로 이 계곡 물이다. 계곡물이 덕구온천에 흐르도록 시설을 갖췄다.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도 인기다. 오솔길 구간마다 금문교, 노르망디교 등 세계적인 다리의 이름을 차용한 다리가 있다.(북면 덕구온천로 905) 덕구온천, 후포등기산공원 등도 색다른 경험과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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