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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겨레

서서 마시는 카페…낯설지만 달콤하거나 부드럽거나

커버스토리 ‘에스프레소 바’ 안내서

이탈리아어로 카페=커피, 대표적 커피가 에스프레소

설탕 들어간 ‘카페 에스프레소’, 크림 탄 ‘콘 판나’ 기본

이국적 공간·커피 본질 좋아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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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에스프레소 바 ‘에빠’의 테이블 위에 수채화가 그려진 에스프레소 잔이 쌓여 있다. 잔을 쌓아 놓고 인증샷을 찍는 것도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묘미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고 에스프레소 마시러 가는 카페. 물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판다. 앉아서 말고 서서 마시는 카페. 물론 앉는 자리도 있다. 오래 이야기 나누기보다 잠깐 있다 나오는 카페. 물론 더 머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선 ‘에스프레소 바’라고 부른다. 이국, 먼 나라의 음료는 대한민국 커피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에스프레소. 원두에서 추출한 최초의 커피. 이 글은 한번쯤 에스프레소를 마셔 보고 싶었으나 잘 몰라 시도하지 못한 분, 에스프레소 바라는 말을 부쩍 많이 듣고 있으며, 지나가면서 본 적도 있지만 들어가지 못한 분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우선 기억할 건 ‘설탕’이에요. 에스프레소는 작은 잔에 담겨 나옵니다. 손가락 두개로 손잡이를 잡고 휙 삼키면 될까요? 설마요! 써서 어떻게 마셔요? 잔 바닥에 설탕이 깔려 있습니다. 함께 준 스푼으로 저어 설탕을 녹인 후 원하는 속도로 마시면 됩니다. 에스프레소 바에 가서 메뉴판을 보면 ‘카페 에스프레소’라고 적혀 있고 하단에 작은 글씨로 “설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으면 미리 알려주세요”라는 문구도 적혀 있습니다. 설탕을 원하지 않으면 빼달라고 하면 되겠죠. 이른바 원조인 이탈리아 사람들도 설탕을 넣어 마십니다. 물론 그냥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해진 건 없습니다. 저는 커피의 쓴맛과 설탕의 단맛 사이의 묘한 간격을 음미하는 걸 좋아합니다. 설탕을 한번에 전부 녹이지는 않고요, 두세번 저어 약간만 녹입니다. 그렇게 몇 모금 마시다가 바닥에 남은 설탕을 스푼으로 긁어서 입에 넣고 삼킵니다. 마시는 사람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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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파차토는 뜨거워야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입술이 데지 않게 코코아 파우더를 뿌린다. 이우성 제공

다음으로 기억할 것은 코코아 파우더인데, 중요하지는 않아요. 핵심은 설탕이니까. 에스프레소 표면과 잔에 코코아 파우더를 뿌리기도 합니다. ‘고소하다’는 정도일 뿐 별맛은 없어요. 다만 코코아 파우더 덕분에 커피가 입술에 닿고 입안으로 들어갈 때 묘하게 질감이 느껴집니다. 커피 액체를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하죠. 주의 사항! 마신 후에는 거울을 봐야 해요. 파우더가 입 주변에 묻어서 우스꽝스럽거든요. 대표적인 메뉴는 ‘스트라파차토’.


마지막으로 기억할 건 크림이에요. 이건 중요해요. 제 기준에서 에스프레소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설탕이 들어가느냐, 크림이 들어가느냐. 크림이 들어가면 설탕만 들어간 것보다 더 달고, 질감도 더 다양하게 느껴지겠죠.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고요. 대표 메뉴는 ‘콘 판나’입니다. 메뉴판에는 ‘카페 콘 판나’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즐겨 마시죠. ‘콘’은 ‘함께’라는 뜻이고 ‘판나’는 ‘크림’이라는 뜻입니다.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라는 의미입니다.


메뉴가 적은 에스프레소 바에는 설탕이 들어간 카페 에스프레소와 크림이 들어간 콘 판나 정도만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두 메뉴 위주로 마시니까요. 둘 중에서도 카페 에스프레소. 음료 종류가 많은 곳은 크림을 활용한 여러 메뉴를 판매합니다. 콘 판나를 변형한 메뉴가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크림을 푸딩처럼 넣은 메뉴도 있고, 크림을 전동 휘핑 기계로 잘 ‘쳐서’ 점성을 진하게 만든 후 에스프레소 위에 층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견과류 등 토핑을 얹은 메뉴도 있습니다. 이런 메뉴들은 한국식 변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에스프레소 바에 가서 메뉴판에 적힌 여러 에스프레소 음료를 보고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더 당황할 수도 있거든요. 종류가 왜 이렇게 많지? 대부분 크림 음료입니다. 결국 메뉴를 선택할 때 고려할 건 두 가지입니다. 설탕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마실 것인가, 다양한 형태로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마실 것인가.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마시러 ‘바’에 갑니다. “커피숍이나 에스프레소 바가 따로 있다기보다 그냥 바가 있죠. 커피 팔고 술도 파는 바요. 레스토랑에서도 커피 팔고요.”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현재는 한국과 밀라노를 오가며 사업하는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카페’에 간다고 하잖아요. 이탈리아어로는 카페가 커피예요. 그 사람들이 마시는 카페는 에스프레소고요.” 정리하면 우리는 카페에 간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한테는 ‘카페’가 공간이 아니라 ‘커피’고 그 커피는 즉, 에스프레소라는 말.


“이런 풍경을 떠올리면 될 것 같아요. 슈트를 차려입은 신사(혹은 숙녀)가 바에 서서 신문을 보며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고 출근하는 모습이요. 이게 딱 그들의 아침 풍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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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중구 ‘리사르’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잔을 쌓아놓은 모습. 이우성 제공

한국에선 서울 중구의 ‘리사르’가 이 흐름을 이끌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은 정말 바입니다. 앉는 자리가 없습니다. 서서 한두잔 마시고 나갑니다. 설탕만 넣은 기본 에스프레소는 가격이 1500원이고,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는 2000원대입니다. 저렴하죠! 이탈리아 바에서 파는 가격과 비슷합니다. 이 에스프레소 바가 약수동에 생긴 건 2018년 즈음이고, 그 전까진 바만 있는 카페가 제가 알기로 없었습니다. 불편해서 사람들이 가겠어? 하물며 에스프레소? 당시 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오판이었죠. 이 공간은 금방 어마어마하게 인기를 끌었으니까요. 다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쌓아 놓고 ‘인증샷’ 찍는 게 유행하기도 했죠. 아침 7시 반, 사람들이 서서 에스프레소를 빠르게 마시고 출근하러 갑니다. 누군가에겐 하루를 여는 루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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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부산 ‘오엘스’의 바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는 이우성 필자. 이우성 제공

지금은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바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가 봤습니다. 부산에 사는 친구들에게 에스프레소 바를 추천받았는데 여럿이 해운대구의 ‘오엘스’를 말했습니다. “이 공간은 2021년에 문을 열었고, 그즈음 부산에 에스프레소 바가 여러개 생겼어요.” 박지환 대표가 말해주었습니다. 직접 보니 음료 만드는 공간을 바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좌석은 한두명이 앉거나, 서너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이 하나씩 있습니다. “가게 문 열고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분도 많았어요. 처음엔 상처를 받았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어요. 반면에 바 문화를 이해하고 즐거워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서서 커피 마시고 저와 간단히 이야기도 나누고 가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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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엘스’의 파도바(왼쪽)와 오르베(오른쪽). 이우성 제공

저는 ‘파도바’와 ‘오르베’를 주문했습니다. 파도바는 콘 판나처럼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 음료입니다. 마시기 쉬운 에스프레소 음료예요. 오르베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음료예요. 매우 진한 라떼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의외로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바를 편하게 생각하세요. 유럽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셔 본 이야기도 들려주시고요. 한국에서도 바 문화가 성장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동네 분들뿐만 아니라 부산 여행 오신 분들도 차를 타고 찾아오세요.”


오엘스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바다 냄새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골목에 있습니다. 지대가 높아 걸어서는 가기 어렵고, 마을버스를 타거나, 좁은 길을 운전해서 가야 합니다. “저도 신기해요. 그래서 손님들께 종종 여쭤보거든요, 오시는 이유에 대해. 좋으시대요, 재미있고. 에스프레소라는 문화, 그러니까 작은 잔에 담긴 정성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무엇보다 커피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일 거 같아요.” 박지환 대표가 에스프레소 머신의 긴 압축 바를 위로 올리며 혼잣말하듯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많은 것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은유의 영역이고 제가 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유행이라서, 또 누군가는 커피 자체를 사랑해서 에스프레소 바에 갑니다. 이곳을 지속적으로 가기 위해선 누구라도 분명히, 소량의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커피 본질에 대한.


오엘스 한쪽 벽엔 서핑 보드가 세워져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커피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인증샷을 찍을 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커피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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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에스프레소 바 ‘에빠’에서 김석현 대표가 에스프레소가 담긴 잔에 크림을 부어 콘 판나를 만들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서울 성동구의 ‘에빠’ 김석현 대표는 올 초 이 공간을 열었습니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마을에 있을 것 같은 바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만의 방식으로요.” 에빠에는 오래된 샹들리에, 나무틀이 멋스러운 메뉴판, 대리석 테이블 상판, 쿠키가 담긴 무거운 유리장 등이 있습니다. 정말 이탈리아의 바 같습니다. “저와 아내가 평소에 모은 것들이에요. 매주 수요일에는 생화를 사 와서 화병에 꽂아요.” 그러고 보니 테이블에 화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피렌체 여행 갔을 때 작은 바에서 본 우아한 꽃들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엔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매장같이 모두 같은 그런 공간이 아닙니다.


“저와 아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걸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메뉴도 간소해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 메뉴가 사실 몇개 안 되거든요. 그 메뉴들을 저희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근본’이랄까요, 그걸 지키면서도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의지예요.”


기사에 사용할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며 연신 “좋아요,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에스프레소 잔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수채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색감, 채도, 그림체 모두 자유롭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사 온 것들입니다. 이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주인이 보여주고 싶은 취향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특별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 에빠에 머무는 즐거움은 이런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 놓고 나니 손님들이랑 이야기할 것도 많아요. 소품 중에 무엇인가를 신기하게 보고 계시면 제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드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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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에빠’의 아포가토.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저는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취향을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에스프레소 바가 정말 유행이라면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에스프레소 바’라고 불리는 공간은 아마도 대한민국에만 있을 겁니다. 에스프레소를 집중적으로 만들고 제공하는 바. 저 먼 나라, 이국의 문화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공간인 셈이죠. 규격이 존재하지 않고,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이 그 공간의 분위기가 됩니다. 아직까지는 자유롭달까요.


우리는 언젠가 영화에서 혹은 잡지 화보에서 비슷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여행 중에 들어가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셔 보았을 수도 있고요. 누군가는 향수에 젖어서, 누군가는 낯선 감각이 새로워서 이 공간에 갑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도 재미있고, 공간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바에 서서 음료를 마시는 경험도 새롭고요. 세상에 비슷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 다행스럽게 덜 비슷하고, 다행스럽게 본질에 집중하며, 다행스럽게 낯선 공간 혹은 문화. 그런 것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셈이죠. 제가 지나치게 낭만적인가요?


동네의 작은 에스프레소 바를 찾아보세요. 한적한 시간에 가서 메뉴판을 보며 여러분 각자 최초의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보세요. 설탕과 크림에 대해 제가 이야기해 드린 걸 떠올려 봐도 좋겠고, 바리스타에게 설명을 요청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공간의 독특한 부분이 무엇인지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낯선 곳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겁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다고요? 아, 그렇군요!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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