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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이데일리

황매산 은빛 물결에 춤추고, 해인사 천년지혜에 반했네

여행

경남 합천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영남의 소금강 '황매산'

봄에는 분홍 철쭉이, 가을에는 은빛 억새 일렁

한국불교의 성지 '해인사'

해인사대장경판 등 국보, 보물 등 40여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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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경남 합천 황매산 정상 부근의 억새 군락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지난봄 분홍 철쭉이 흐드러졌던 황매산은 어느새 억새 옷으로 갈아입고, 은빛 물결로 넘실거렸다. 오가는 계절을 비켜 갈 수는 없는지 해 저무는 황매산의 바람은 스산하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억새 사이로 스며 나와 산란했고, 고개를 떨군 억새군락은 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휘청거렸다. 바야흐로 억매산은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있다. 발아래 너울대는 산자락 풍경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 위로 펼쳐진 억새군락의 은빛 물결은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지금 황매산의 가을은 계절의 한복판으로 치닫고 있다.

영남의 소금강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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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경남 합천 황매산 정상 부근의 억새 군락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경남 합천의 황매산. 높이 1108m의 제법 큰 산이다. 가야산과 함께 합천 양대 명산으로 꼽힌다. 모습도 특이하다. 해발 700∼900m에 높이 약 300m의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듯한 형상이다. 황매산은 사시사철 여행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특히 봄과 가을이면 어김없이 인파로 붐빈다. 해마다 봄철이면 정상 부근의 철쭉 군락지가 기지개를 켜고 제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가을 주인공은 억새다. 지금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 이삭은 11월 초까지 황매산 정상부근을 하얗게 뒤덮는다. 여기에 황매산성의 순결바위와 국사당이 있고, 남쪽 기슭에는 통일 신라 때의 고찰인 합천 영암사지(사적 131)도 있다. 합천군은 황매산을 1983년 군립공원으로, 또 합천팔경 중 하나로 지정했다.


황매산 정상까지 오르는 일도 어렵지 않다. 해발 850m 지점에 오토캠핑장이 있어 도로가 나 있어서다.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도 압도적이다. 고산준봉이 눈 아래로 넘실대고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땀 한 방울 흘리는 수고도 하지 않고 바라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값진 것이라 황송할 지경이다. 황매산 정상 쪽으로는 하얗게 빛나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매산이 자랑하는 억새군락지가 펼쳐져 있어서다. 캠핑장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도 10분이면 닿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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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경남 합천 황매산 정상 부근의 억새 군락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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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매점을 지나면 억새군락지로 가는 입구다. 길은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편안하다. 길을 따라 양쪽으로 억새평원이 넘실댄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억새 천지다. 수십만 평이라는 숫자는 무의미하다. 끝없이 펼쳐진 억새바다다. 말 그대로 장관이다. 억새평원은 해발 900m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억새는 그늘이 있는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 양지식물이기 때문에 큰 나무가 없는 황매산 능선은 억새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예전에 목장이 있던 자리라 드넓은 고원을 간직하고 있다.


황매산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정상 아래 산성이 나타난다. 영화촬영을 위해 세트장으로 지은 산성이다. 산성의 누각은 숨겨진 일몰 포인트다. 산성 너머 산자락이 층층이 붉게 물들어 가는 풍경이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마침 뉘엿뉘엿 해가 기운다. 석양으로 물든 억새평원은 눈부신 금빛으로 변해 출렁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빛은 파도처럼 흩어졌다 모인다. 사르륵 사르륵 억새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클래식 연주보다 아름답다. 세상 시름도 사르륵 사라진다.

남에는 황매산, 북에는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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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웅보전

황매산이 합천의 남쪽을 대표한다면, 북쪽에는 해인사가 으뜸이다. 해인사는 가야산 깊은 곳에 자리한 고요한 사찰로, 그 이름은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사찰 전체가 국보라 할 만큼 곳곳에 아름다운 불교 유산이 있어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과 ‘장경판전’(제52호)이다. 팔만대장경은 부처가 전해준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놓은 목판으로, 경판의 수가 8만 1258판에 이른다. 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보관용 건축물이 장경판전이다. 해인사 가장 깊숙이 자리한 이 보물은 우리 민족의 긍지이자 자랑이다. 유네스코도 그 가치를 인정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올렸다.


사실, 1200여년 역사의 해인사가 처음부터 대장경을 모신 것은 아니다. 고려 고종은 16년에 걸쳐 팔만대장경을 완성하고,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 경판당에 보관했다. 이어 강화도 선원사에 옮긴다. 대장경이 해인사로 온 것은 조선 초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팔만대장경의 이동 기록이 남아있다. 대장경판 한 장의 무게는 약 3㎏. 팔만 장에 이르는 무게를 모두 합치면 무려 240t에 달한다. 엄청난 규모의 대장경을, 그것도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옮긴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일이었다. 해인사에 도착한 팔만대장경은 오늘날까지, 무려 762년의 세월 동안 단 한장도 썩거나 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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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사진=한국관광공사)

그 이유는 장경판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경판전은 세 개의 계곡이 흐르는 가야산 산중턱에서 남향으로 서있다. 습기를 머금은 채 동남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스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위치 덕분에 계곡의 바람은 장경판전 건물을 비스듬히 지나칠 수 있었다. 또한, 장경판전 자리는 풍부한 일조량이 보장되는 천혜의 장소이기도 했다. 겨울철 산중임에도 평균 일조량은 일곱 시간이 넘었고, 따뜻한 햇볕은 하루 한번 장경판전 전체를 골고루 비춘다. 목판에 치명적인 습기를 피하고, 햇빛을 확보하는 최적의 장소에 장경판전이 세워진 것이다.


장경판전의 구조에서도 우리 조상의 빼어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장경판전 건물의 앞면은 위 창이 작고 아래창이 크다. 반면, 뒷면의 창은 위 창이 크고 아래창이 작다. 장경판전은 서로 크기를 달리한 창들을 마주 보게 함으로써 공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건물 내부의 온도차를 줄여나가는 역할을 했다. 서가배열 역시 팔만대장경 보존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경판과 경판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경판에 부착된 마구리 덕분이다. 경판을 서로 떨어뜨림으로써 공기가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고 습기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에 대한 조상들의 지극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장경판전 내부 흙바닥도 그냥 바닥이 아니다. 소금과 숯 모래횟가루를 섞어 만들었다. 이러한 바닥의 재질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번의 침수도, 습기로 인한 피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장경판전은 조선 초기 과학의 집대성이자, 그 시대가 낳은 지혜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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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해인사 장경판각

여행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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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대장경테마파크의 대장경천년관

여행팁 : 19일부터 16일간 ‘합천기록문화축제’가 대장경테마파크 일원에서 열린다. 이 기간 실내에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VR 체험·도예체험이, 실외에서는 초청가수·댄스 공연, 가을꽃, 김영환 장군 수호비행기, 대형 한글대장경판 등을 전시한다. 야외 특설무대에서는 매 주말 팝페라·창작타악·통기타· K팝 댄스·직장인밴드, 국내외 전통무용 공연도 마련한다. 체험존에서는 고려복식 문화와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을 재현한다. 또 대장경 인쇄 체험과 서예가가 써준 가훈을 받아 갈 수도 있다. 여기에 ‘팔만대장경 전국예술대전’이 이달 19일부터 25일까지 기록문화관에서, 19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는 ‘전국사진공모전’도 함께 펼쳐진다.

합천=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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