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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소시지·치즈·햄 푸짐하게 든… 구수하고 얼큰한 ‘한식계 BTS’

[아무튼, 주말 - 정동현의 pick] 부대찌개



부대찌개를 먹으면 BTS가 생각난다. BTS가 한국 전통음악은 아니다. 힙합, 랩, 댄스 등 온갖 요소가 섞였다. 하지만 지금 세계인이 생각하는 한국 음악은 BTS다. 부대찌개도 된장찌개나 구절판, 궁중 음식 같은 전통음식은 아니지만, 가장 한국적인 음식은 맞는다. BTS 음악을 틀어놓은 식당에서 소주 회사 로고 박힌 앞치마를 하고 테이블마다 설치된 가스레인지 불을 올린 뒤, 부대찌개가 담긴 냄비를 마주하는 것은 익숙하다 못해 우리 자신의 일부에 가깝다.


부대찌개의 최첨단을 경험하려면 서울 압구정로데오거리 ‘스튜부대’에 가야 한다. 통창으로 열리는 전면, 카페에 온 듯 선과 면으로만 구성된 이른바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보면 ‘부대찌개집스러움’을 찾기 힘들다.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을 써서 불필요한 가스 배선도, 버너도 볼 수 없다.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주인장이 부대찌개집을 하던 부모의 조리법을 물려받았다는 설명에 이 집 풍경이 절반쯤 이해됐다.


국물의 농도를 보니 경기도 송탄의 걸쭉한 국물과 멸치 육수로 우린 의정부의 시원한 국물 사이였다. 소고기와 소시지가 잔뜩 들어간 국물이 금세 끓어올랐다. 토마토의 감칠맛·신맛·단맛이 맵고 짠 맛과 어울린 ‘토마토 부대찌개’는 이 음식의 탄생이 이른바 ‘잡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다. ‘한식에 토마토가 어울릴까?’라는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물에 밥을 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쉽게 깨졌다.


부대찌개에서도 원류를 찾자면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정통부대고기’를 가보는 것이 좋다. 1973년 문 연 이곳은 부대찌개도 찌개지만 ‘부대볶음’으로 더 이름 날린다. 의정부역에서 조금 떨어진 경기도 북부, 경계 지역 특유의 황량함이 남겨진 도로 한편 붉은색 바탕에 ‘부대고기’라고 또박또박 적은 간판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주력 메뉴인 부대고기는 국물 없는 부대찌개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쑥갓과 어묵, 갖은 소시지와 다진 소고기가 냄비를 채운 부대고기는 고춧가루 범벅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맵지 않았다. 그보다는 단맛의 존재감이 적지 않아서 어린아이 입맛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 테이블에서는 중년 남자가 소맥 한 잔을 말아 마셨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아이들이 포크로 소시지를 찍어 입에 넣었다.


부대찌개도 급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에 가져다 놔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실력이었다. 맑은 국물 속에 굵은 당면을 선두로 건더기가 가득했다. 가스 불을 올리면 구수한 맛이 천천히 끓어올랐다. 긴 시간 사람들이 드나들며 가다듬어진 맛은 혀와 위장을 놀래키지 않았다.


거창한 수식 대신 동네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부대찌개를 찾자면 서울 풍납동 ‘통큰양푼이찌개’가 먼저 생각난다. 강동구청역 뒤 주택가 좁은 길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점심시간마다 동네 단골들이 자리를 잡으려 한바탕 경쟁을 한다. 상호처럼 동태찌개, 김치찌개, 부대찌개 등 찌개류 전문이다. 단골들은 저마다 입맛이 맞는 한 가지를 골라 그것만 시켜 먹는 듯,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는 이가 없었다. 스테인리스 테이블은 윤이 났고 주문받는 직원들은 허둥대는 기색이 없었다. 찌개와 곁들인 고등어구이는 기다란 접시를 삐져나올 정도로 큼지막했고 막 잡아 올린 것 같은 밝은 푸른색이 가을 햇빛처럼 빛났다.


라면 사리 위에 부추와 치즈 한 장을 올린 부대찌개는 만만한 양이 아니었다. 큼직하게 썬 김치에서 우러난 개운한 신맛이 부대찌개의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국물은 어느 쪽으로 치우진 감이 없었다. 신맛에 침을 삼키면 매콤한 기운에 땀이 흘렀고 땀이 식을 즈음에는 구수하고 농도 짙은 육수가 위장을 넉넉히 채웠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 내내 부대찌개를 앞에 두고 세게 볶은 파마머리, 원색 등산복, 땀에 전 티셔츠, 기름때 묻은 청바지 차림의 사람들이 국자로 국물을 푸고 하얀 밥을 말아 먹었다. 빨간 부대찌개가 내뿜는 하얀 수증기 속에 사람과 음식 모두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 스튜부대: 오리지널 스튜부대 1만원, 토마토스튜부대 1만1000원. (02)512-4381


# 원조부대고기: 부대찌개 9000원, 부대볶음 2인분 2만2000원. (031)872-7814


# 통큰양푼이찌개: 김치찌개 8000원, 부대찌개 9000원, 고등어구이 9000원. (02)474-8086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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