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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학교도 병원도 못 가게 한 아버지… 배움이 날 구원했다

“공교육은 정부의 음모”라 믿는 부친 때문에 16세까지 학교 못 가

독학 끝에 케임브리지大 박사 돼…

부모가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찾기까지 과정 그려

조선일보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김희정 옮김|열린책들 520쪽|1만8000원


고아가 아닌데도 소녀는 생일이 언제인지 몰랐다. 부모는 일곱 자녀 중 아래 넷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아이들 나이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모르몬교 근본주의자로 종말론을 믿었던 아버지는 "공교육은 아이들을 신(神)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정부의 음모"라며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병원에 가거나 양약을 먹는 건 "신을 배신하고 정조(貞操)를 파는 일"이라 여겼다.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은 부엌"이라 가르쳤다. 가학 성향이 있는 둘째 오빠는 소녀를 상습 폭행했다. 화장을 한다고 '창녀'라 불렀고 순종하지 않는다며 변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로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는 타라 웨스트오버(34)가 2018년 낸 이 회고록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탈출해 자신을 찾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다. 미국 아이다호주(州) 산골서 나고 자란 타라는 만 열여섯 살까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폐철 공장에서 크레인을 몰며 일을 도왔다. 공장 기계에 다리를 찢겼지만 동종요법 치료사인 엄마의 약초만이 허용됐다. 미래는 빤했다. 열여덟 살쯤 결혼하고 엄마처럼 산파(産婆)가 될 것이었다. 구원의 동아줄을 내린 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진학한 셋째 오빠였다. "내 생각에 이 집이 너한테는 최악의 곳이야. 대학으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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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타라에게 대입자격시험(ACT)은 높다란 벽과 같았다. 그렇지만 독학에는 이력이 나 있었다. "우리 집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온전히 혼자서 방향을 찾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공부한 끝에 17세에 모르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브리검 영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 생활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장 발장과 나폴레옹 중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몰라 '레 미제라블'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 저축이 바닥나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매혈(賣血)을 할지언정 정부 학자금을 차마 신청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주입시킨 종교적 신념에 따르면 정부 의존은 금기였기 때문이다.


책은 세상 전체가 틀렸고 아버지만이 옳다고 생각한 타라가 아버지야말로 이 세상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가 기른 그 소녀'와 헤어지는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이 가장 큰 지원군이었다. 눈 밝은 교수가 타라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케임브리지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라고 독려한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모습이에요. 자신이 누군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사람의 내부에 있어요."


'누가 역사를 쓰는가'라는 문장을 교수가 칠판에 적을 때,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는 타라는 이후 "진흙이 조각가에게 몸을 맡기듯" 자신을 대학에 맡긴다. 최우수 학부생으로 브리검 영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한다. 하버드 방문연구원을 거쳐 19세기 모르몬주의 연구로 2014년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그를 속박했던 부모와 관계를 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부모가 만들어준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어른이 된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힘이 된다. 이 이색적인 이야기가 커다란 감동을 주는 건 기저에 깔린 이 보편성 때문이리라. 책은 영미권에서 300만부 넘게 팔렸고, 타라는 지난해 타임지(誌)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이 됐다.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삶의 여정에 대해 타라는 말한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원제 Educated.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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