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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by 조선일보

16년째 매주 결혼하는 '서프라이즈 그녀'를 아시나요

유명한 無名 배우 김하영

조선일보

16년째 MBC '서프라이즈'에 출연 중인 배우 김하영. 지난 10일 서울 방배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사람이 좀 많아 알아볼 수도 있는데 괜찮은지 묻자 "알아봐주시면 감사하다"고 했다. 시종일관 밝았다. 연기에 대해 물을 땐 "늘 진지하게 임한다"며 웃음을 거뒀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유명한 무명배우. 모순이지만, 배우 김하영(40)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주변에선 하나같이 모르는 이름이라 했다. "아~, 이 사람!" 사진을 보여 주니 그제야 익숙한 얼굴이란 반응이었다.


김하영은 16년째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서프라이즈)에 출연한 배우다. '매주 결혼하는 여자' '수백번 죽어본 사람'으로 불린다. 긴 세월 배우의 길을 달려왔지만 '재연 배우'라는 수식이 이름을 가렸다. 김하영 석 자보다 '서프라이즈 걔'로 더 유명하다. 지금까지 700여 개 역할을 했다. "어릴 때는 이해 안 되는 인물이 많았는데 요즘은 이해가 너무 되는 거예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너무 여러 역할을 해봐서 그런가 모르겠어요." 지난 10일 서울 방배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하영이 말했다. 베테랑 배우답게 그는 인터뷰 내내 성실하게 답했다.

매주 연기할 수 있어 행운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 16년 이상 몸담은 사람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가족오락관의 허참 등 유명 원로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 그가 주로 맡는 역할은 아름다운 비련의 여자. '너무 오래 봐서 지겹다'는 악플을 볼 때는 조금 화나지만, 아직도 녹화 날인 금요일에는 다른 날보다 더 들뜬다.


―서프라이즈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2004년 여름이었어요. 영화학과(상명대)를 졸업하고 성우를 준비 중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왔죠. 바로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서프라이즈 팬이었거든요. 안 해본 배역이 없어요. 한 주는 왕비였다가 다음 주는 처녀 귀신이 됐어요. 설산에 맨발로 올라가 보기도 하고, 여름에 옷을 6~7겹 껴입고 끙끙대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덧 16년째가 됐네요."


―소속사가 없어 연락하기 힘들었습니다.


"방송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질까 봐 몇 년 전부터 따로 두지 않았어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될 때도 있거든요. 친한 동생 한 명과 같이 일하고 있죠. 종편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 제안에는 서프라이즈 녹화날인 금요일이라 어렵겠다고 했어요. '저 정도 연기는 누구나 한다'는 악플도 있지만, 매회 진지하게 임해요."


―보통 재연 프로그램은 잠시 하고 결국 다른 일을 찾지 않나요?


"처음에는 미니시리즈나 영화 같은 정극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굉장한 행운아 아닐까 싶더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를 보여줄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유명 연예인조차도 사람들이 잊을까 봐 늘 불안해하거든요. 다른 정극에 도전하고 싶지만, 서프라이즈를 포기해야 한다면 하지 않을 거예요."


―오랫동안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다면.


"연기 복기(復棋)를 철저히 해요. 화면을 보며 '다음에 저런 장면을 찍을 때에는 눈을 더 떠야겠다' 하고 생각하는 식이죠. 촬영 시간이 짧아 잘못된 연기를 다시 할 시간이 거의 없어요. 철저히 복기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하게 되는 거죠. 거의 반사적으로 더 나은 연기가 나올 수 있게 연습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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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은 산속을 헤매는 여인(왼쪽 사진) 등 매주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그러나 거의 매번 나오는 장면이 있다면 결혼식.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과 함께 "오늘도 또 간다. 지겹다"는 농담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적도 있다. / MBC 서프라이즈·김하영 인스타그램 캡처

재연배우 아닌 그냥 배우

서프라이즈 출연진이 하는 걱정은 '재연 배우'라는 꼬리표다. 한번 재연 배우로 자리매김하면 정극에 캐스팅되기 어렵다. 몰입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연기가 지나치고 어색하다는 편견도 따라온다. 서프라이즈 한종빈 PD는 이런 시선이 안타깝다며 "B급 감성이라고 많이들 하시지만, 부족한 제작비에도 그들의 A급 연기력 덕분에 B급까지 올라오는 것"이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재연 배우라고 불리기 무섭다고요.


"정확히는 '대충 연기하는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무서워요. 재연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신을 찍어야 해요. 저희는 하루에 60~70장면을 찍죠. 그래서 재연 프로그램 연기자는 그만큼 대충 한다는 인식이 있는 듯해요."


―재연 배우로 인지도를 얻은 건 사실이니, 그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물론이죠. 연기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 매주 '맡은 역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까' 고민하고 인물 자료도 찾아요. 출연진은 모두 연기 도사예요. 5초 만에 눈물을 흘리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를 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배우는 드물걸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를 조금 더 좋게 봐달라는 뜻인 거죠."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3년쯤 지났을 때 슬럼프가 와서 휴식기를 가졌어요. 역할이 가진 한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등이었죠. 그런데 한 반년쯤 지나니까 다시 끌리더군요. 제작진도 계속 다시 하자고 연락하던 참이어서 촬영장에 다시 나왔죠. 정말 반갑더라고요. 저희 팀은 밝고 분위기가 좋아요. 회식 때는 다른 팀으로 옮긴 스태프나 배우 분들도 다 찾아올 정도예요. 그 뒤로는 돌아보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요."

배우 김하영 아니어도 좋아

그는 "평소에도 얼굴이 익숙하니 많은 분이 동네 언니, 옆집 딸 같다며 친숙하게 대해주신다"며 "그때만큼은 톱스타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서프라이즈 외에는 어떤 일을 하나요.


"연기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4~5년 전부터 낚시 다니는 프로그램에 나가고 있어요. 너무 열심히 낚시를 해서 손등 피부가 벗겨졌어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낚시 갔던 게 도움이 됐죠. 행사 진행도 맡아서 해요. 처음에는 연기 말고 다른 것을 할 생각을 못했지만, 요즘에는 예능프로그램도 재미있고요. 시청자분들에게 나도 몰랐던 나를 소개하는 느낌이에요."


―방송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아요. 즐기지 않으면 몰입을 잘 못하는데, 다른 직업은 적성에 안 맞나 봐요. 사업 제안이 종종 들어오는데 다 죄송하다며 거절해요. 욕심이 많으면 결국 그르치기 마련이거든요. 실제로도 많이들 그렇고요. 연기나 방송에 영향이 있다면 안 하는 게 옳다고 봐요."


―배우 김하영으로 더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나요.


"'서프라이즈 걔'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매주 다른 인생을 살면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는 것도 '유명한 무명'이기 때문인걸요. 너무 잘나가면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시간처럼만 계속 연기하고 싶어요." 그는 "분장 안 하고 할머니 역을 소화할 때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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