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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연합뉴스

바위 덮은 초록빛 신비…이끼 계곡과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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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상동 이끼 계곡[사진/조보희 기자]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생긴 최초의 육상 식물이다. 원시의 신비를 간직했다.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이끼 계곡을 마주하면 '태곳적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일까'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매혹적인 초록빛 신비다.

◇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끼 계곡

부드럽고 푹신한 이끼가 융단처럼 깔린 평화로운 광경은 삶에서 생긴 무수한 생채기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만 같다. 한국에는 이름난 이끼 계곡과 폭포들이 있다.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 이끼 폭포, 영월군 상동읍 이끼 계곡, 평창군 장전리 이끼 계곡, 지리산 부자바위골 이끼 계곡 등이다.


습도, 수분, 햇빛양 등의 조건이 적절하면 이끼가 생기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더라도 산과 계곡 곳곳에 작은 이끼 천국이 숨어 있을 것 같다.


바위 표면에 붙은 이끼들을 같은 종류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초중등 교과서에 나오는 우산이끼, 솔이끼를 비롯해 2만3천여 종에 이른다. 이끼는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정착해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준다.


이끼가 자라면서 흙은 다른 식물이 살 수 있는 부식토로 바뀐다. 또 이끼는 작은 동물에게 안식처와 먹이를 제공한다. 미미해 보이는 이끼가 생태계 형성과 유지를 위해 맡은 역할은 자못 크다.

영월 상동 이끼 계곡

◇ 명상과 힐링의 장소…영월 상동 이끼 계곡

이끼 계곡 탐방은 특별한 여름을 선물한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 고요 속에서 서늘한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명상과 힐링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계곡에 발을 담그는 물놀이를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개운해져 피서가 따로 없다.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산2-1에 있는 이끼 계곡은 등산로 옆에 있다. 계곡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산(1,408m), 삼동산(1,179m), 구룡산(1,345m) 태백산(1,566m) 등이 있다.


동, 서, 남의 방향 모두에 높은 산이 있고,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로 숲이 빽빽해 사시사철 계곡에는 직사광선이 거의 쬐지 않고 상쾌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끼가 자생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전국의 이끼 계곡은 대개 사진작가들이 인터넷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에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알려진 숨은 명소들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지만 카메라와 삼각대를 둘러매고 계곡을 오르내리는 방문객이 꽤 있었다.


이끼 계곡 탐방 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이끼가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촬영에 유리한 장소를 잡으려 이끼를 밟거나, 이끼 낀 바위를 무심코 오르내리다 보면, 수십 년 걸려 자란 이끼들이 한순간에 바위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손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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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상동 이끼 계곡[사진/조보희 기자]

얼핏 보기에도 발길에 이끼가 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훼손이 심해지면 결국 이끼 계곡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연의 경이를 많은 사람이 체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끼가 상하기 쉽다. 그러면 탐방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가. 민경문 영월지오뮤지엄 사무국장은 "탐방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자연을 즐기는 동시에 존중하는 배려와 양식이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 옥자와 미자의 행복 무대…삼척 무건리 이끼 폭포

무건리 이끼 폭포가 유명해진 건 2017년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계기다. 슈퍼 돼지 옥자를 구하는 산골 소녀 미자의 모험을 다룬 이 영화에서 옥자는 무건리 계곡의 원시림과 폭포에서 마음껏 뛰놀고 뒹군다. 옥자를 지키는 미자는 무건리 자연림처럼 순수하다. 무건리 이끼 계곡을 찾아가는 길은 감동의 연속이었다.


계곡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임도로 된 등산로 3㎞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다. 오르는 동안 내내 산길 옆 낭떠러지 밑으로 형성된 깊고 울창한 숲이 눈을 즐겁게 한다. 봉우리들은 높고, 나무는 빽빽이 들어찼으며, 골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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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도계읍 무건리 이끼 폭포[사진/조보희 기자]

6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송아지만큼 크고 잘생긴 개를 끌고 인적이 드문 산길을 천천히 오르는 모습은 숭고한 순례를 연상시켰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쇠락한 산골 마을이 있었다. 무건리 마을에는 한때 300여 명이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두 가구 정도만 남았다. 마을 언저리에는 소달초등학교 무건분교가 있었으나 1994년에 폐교됐다. 디딜방아 터, 너와집을 떠올리는 나무 지붕과 벽 등, 화전민 삶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폐가들은 외딴 산골의 애수를 진하게 했다.


임도 끝에서 폭포까지는 약 500m. 나무 계단의 연속이었다. 방문객이 많아지자 삼척시는 탐방을 돕고 이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길을 정비하고 폭포 주변에 나무 데크 길과 전망대를 설치했다. 폭포는 초록 이끼와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가 오묘한 조화를 이뤄 여느 폭포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폭포 양옆은 깎아지른 석회암 단애였고, 암벽에는 푸른 이끼가 두껍게 생성돼 있었다. 이끼 폭포는 일종의 2단 폭포였다. 위쪽 폭포는 용소굴, 용소폭포, 용소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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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건리 이끼 폭포에 있는 용소 굴, 용소폭포, 용소[사진/조보희 기자]

서상현 이끼 폭포 관리인은 큰 태풍이 와서 계곡물이 불어나거나 하면 이끼가 유실돼 탐방객들을 안타깝게 한다고 전했다. 이끼 계곡은 가물어도,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감상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가뭄이 심할 때는 수분을 취하지 못한 이끼가 누렇게 변색하기도 한다. 수량이 너무 많으면 이끼가 물줄기에 가려 제멋이 살아나지 않는다. '성장이 느린 이끼의 속성을 고려할 때 훼손된 이끼가 복원되려면 최소 20년 이상 기다려야 하므로 모두 아끼고 사랑하자'는 당부가 폭포 주변에 게시돼 있다. 이끼 계곡은 귀한 지형이자 자연 현상이다. 무건리에서 옥자와 미자가 누렸던 행복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도록 바위는 물론 계곡물까지 초록빛인 이끼 계곡이 고의나 부주의로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다시 간절해졌다.


무건리 계곡은 두리봉산(1,074m), 육백산(1,243m), 응봉산(1,268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육백'은 산 정상이 평평해 조 600석을 뿌려도 될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건리 계곡은 첩첩산중 육백산 능선을 돌아 두리봉산과 삿갓봉 줄기 사이로 흐른다. 이 계곡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깊고 우거진 숲속에 감춰져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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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로 연결된 장호해변 무인도[사진/조보희 기자]

◇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한국의 나폴리'

대부분 식물은 여름에 열매 맺는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는 뜻의 '열음'에서 '여름'이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견해가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계절을 선사한다면 강렬한 태양 아래서 결실이 왕성하게 커가는 여름이야말로 제격이지 싶다. 여름에 무건리 오지 탐험을 했다면 삼척 여름 바다의 낭만을 느껴보지 않고 발길을 돌릴 순 없을 것 같다. 장호해변은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과 유리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로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독도 지킴이' 괭이갈매기가 장호해변에도 많다.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를 내는 괭이갈매기가 백사장에 떼지어 앉은 겨울 해변 풍경은 또 다른 장관이라고 삼척 토박이 김미자 삼척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전했다.


장호해변 옆 용화해변은 해양 레일바이크의 출발점이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해안 절경을 따라 5.4㎞ 복선으로 운행되는 레일바이크는 울창한 곰솔 숲을 가로지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 경관을 즐기게 해준다. 장호, 용화 해변은 해상케이블카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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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곡 용굴촛대바위길[사진/조보희 기자]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굴이 있는 초곡 용굴촛대바위 길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 덕에 해금강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초곡해안의 절경은 몇 년 전만 해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출렁다리, 전망대 등이 설치된 야외탐방로 660m가 조성돼 산책하듯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군 경계 철책 철거와 함께 53년 만에 비경이 공개된 덕봉산은 해안에 외로이 솟아오른 언덕과 같이 작은 산이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가는 코스와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탐방로가 있다.


은빛 모래밭이 길게 펼쳐져 명사십리라고도 불리는 맹방해변 끝자락이 덕봉산이다. 맹방해변은 인근에 울창한 소나무 숲, 유채꽃밭, 벚꽃길이 있어 사계절 내내 관광객과 주민의 사랑을 받는다. 2021년 '빌보드 핫100'에서 9주 연속 1위를 기록한 BTS의 'Butter' 앨범 재킷 촬영지가 맹방해변이다. 촬영 당시 모습을 재현한 포토존에 방문객의 호응이 뜨겁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월 삼척 =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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