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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SRT매거진

‘교동도’라는 백과사전 화개정원에 펼쳐지네

고려시대 대학자 목은 이색이 다녀간 교동도, 조선시대 연산군의 마지막이 기록된 교동도, 멸종위기종 저어새가 찾아오는 교동도, 이 모든 교동도를 담은 화개정원에서 나비도 쉬어간다.

고구저수지에서 바라본 화개산과 화개산전망대

“분홍색 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철모를 쓴 군인의 안내에 따라 이름과 연락처, 생년월일을 적은 출입증을 건네고 교동도에 들어선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섬으로서 교동도를 실감한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은 2023년 정전 70주년이 도래한 이 땅에서 오히려 흥미롭다. 


북한 황해도 연백군(현 연안군)과 우리나라 강화 사이에 크고 넓게 자리한 교동도. 섬이라고 하지만, 지난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되며 관광지로서도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강화군 최북단의 교동도에서 북녘의 연백평야까지는 3.2k m… 남쪽에서는 이미 져버린 봄꽃들이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운 교동도다.​

화개산모노레일과 그 위로 보이는 화개산전망대

꽃길을 걸어요, 화개정원

6월이면 연꽃이 만개해 황홀경을 선사하는 고구저수지 너머로 화개산이 자태를 드러낸다. 해 발 269m의 화개산은 교동도의 주산이자 5월 14일 정식 개관을 앞둔 화개정원으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자자하다. 21만3251㎡ 규모의 휴식형 가족공원으로 모노레일, 스카이워크 전망대를 갖추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임시 개방했다. 주차장에서 정원입구까지 순환하는 셔틀버스(오픈 카트)는 평일에도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화개정원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교동도에 낚시차 들렀는데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고 해서 구경 왔지요.” 친구분들과 화개정원을 찾은 관광객은 경기도 시흥에서 방문했단다. 교동대교가 개통하기 전에는 교동도 방문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강화군 창후리에서 교동도 월선포 사이의 뱃길은 20분에 불과했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큰 탓에 물이 빠지면 배를 돌려 두 배의 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1950년대는 교동도에서 인천으로 나가는 데 7시간이 걸렸다니 세월의 변화가 엄청나다. 여기에 검문 소를 통과하는 것도 지금처럼 간소화되지 않았고, 통제 시간도 존재했다. 현재는 0시부터 04시까지만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해 사실상 출입 제한이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화개산의 형상을 상징하는 조형물

화개산을 닮은 이것은?

화개산 북쪽 비탈진 지면을 지그재그로 돌아볼 수 있도록 조성한 정원은 정식 운영을 앞두고 막바지 단장에 분주하고, 한 마리의 나비처럼 화개정원을 누비는 여행객들의 표정에는 기대 감이 가득하다. 화개산은 ‘불 화(火), 덮을 개(蓋)’ 자를 쓴다. 산세가 마치 솥뚜껑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이를 상징해 정원 곳곳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솥뚜껑 조형물을 만들어 두었다. 6개 이상의 솥뚜껑을 찾아 앱에 인증하면 소정의 선물도 받을 수 있다.


정원 입구에서 정상까지 11만㎡ 부지에는 5개 테마 정원이 자리한다. 교동도를 대표하는 고구·난정 저수지의 식생과 경관을 담은 물의 정원, 연산군 유배지와 교동읍성 등 역사를 배우는 역사·문화의 정원, 실향민의 마음을 달래는 향수 정원, 민족 화합을 담은 평화의 정원, 다양한 수목과 식물재료를 이용한 힐링 정원이다. 왕골, 꽃잔디, 암석원, 상사화, 섬도라지, 장미원, 사자밭약쑥 등을 식재한 정원 곳곳에는 일명 멍 때리기 존(Zone)으로 물과 숲, 논 뷰 배경의 선베드, 빈백, 파고라 등 편의시설도 조성되어 교동도의 자연과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저어새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남기자

왕들의 유배지, 교동도

교동도의 역사, 자연, 일상, 문화가 어우러지는 화개정원은 마치 ‘교동도’라는 한 권의 백과사전을 압축해놓은 것 같다. 과거 교동은 송도(현 개성), 한양(현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살이 거세어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도 유명했다. 1211년 고려 21대 왕 희종이 교동으로 유배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인조의 동생인 능창대군이 유배를 왔으며 재위 12년 폐위당한 연산군은 교동으로 유배와 두 달 만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 위리안치된 연산군 유배 상황을 재현한 공간과 왕족들의 유배지로서 교동도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도 화개정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노란색 화개산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화개정원의 모습을 찬찬히 담는다. 정상의 화개산전망대까지 속도는 느리지만, 급경사를 만나는 구간에서 적잖은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산, 바다, 들을 품에 안은 교동도의 풍광이 눈앞에, 발아래 굽어진다. 20여 분 만에 화개산전망대에 도착하자 거센 바람이 몸을 감싼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이렇게 매서운 걸까. 수려한 모양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화개산전망대는 강화의 군조인 저어새를 형상화했다.​

화개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교동도 일대 풍경

화개산모노레일타고 저어새 닮은 전망대까지

멸종위기야생물 I급인 저어새는 우리나라 서해안에 가장 많이 번식하며, 강화도 해안은 ‘천연기념물-강화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진 스카이워크에 서자 고구저수지와 저 너머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래전 그날에는 황해도 연안으로 배를 타고 잦은 왕래를 이뤘다는데 지금은 이렇게 가까워도 우주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화개산전망대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교동망향대 또한 근거리에서 연백평야가 드리운다. 망원경에서는 어딘가로 마실을 가는지, 바쁜 걸음의 북한 주민도 보인다. 교동도의 1세대 원주민은 대부분 고향 땅을 생전에 갈 수 없었던 실향민이다. 이렇듯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갈 수 없었던 통한의 세월은 교동도의 역사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룡시장

시간이 멈춘 듯, 대룡시장

6·25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이 교동도로 유입되었다. 교동도 최북단인 망향 대에서 연백평야는 직선거리로 3km, 막는 것만 없다면 그곳까지 하루, 반나절, 아니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다. 잠깐 몸을 피하면 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황해도 연백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은 교동도 대룡리에 마을을 이뤘고, 자연스럽게 시장도 형성되었다. 오늘날 세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관광 명소로 찾는 대룡시장이다. 1960~19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장은 세대를 불문, 복고풍 매력을 찾아온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1세대 실향민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그 후손들이 어버이의 터전을 물려받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대룡시장에서 강화의 특산물인 순무로 만든 김치도 맛보고, 청계알을 띄운 오래된 다방에서 쌍화차도 맛본다. 대룡시장을 방문할 때는 남동쪽 출입구에 자리한 공용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이곳에는 관광안내센터 역할을 하는 교동제비집과 파마스마켓이 위치한다. 


농기구 수리 창고를 개조한 파머스마켓에서는 기름병 밀크티로 잘 알려진 교동 밀크티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로컬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시장에서 대각선 거리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촬영지인 교동초등학교도 자리한다. 1913년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다.​

궁전다방의 쌍화차

꿈결에도 그리운 어른들의 고향 땅

교동도에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향교로 전해지는 교동향교가 있다. 홍살문을 지나 완만한 길 을 따라가면 뒤로는 화개산,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지는 곳에 향교가 자리한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향교를 세운 첫 기록이다. 이후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향교를 옮 겼으며, 현재 강학을 하는 명륜당,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서 처음 공자 초상을 들여와 모신 대성전 건물 등이 남아 있다.

화개사

교동향교 바로 가까이에는 소박하고 안온한 정서로 가득한 화개사가 자리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과 화개사의 인연이 기록되어 있다. 1341년 14세의 나이에 친구 2명과 화개사에서 독서와 공부를 즐긴 선생은 어느 계절, 화개산에 올라 한시도 남겼을 것이다.

“바닷속 화개산은 푸른 하늘에 닿았는데, 산 위 옛 사당은 언제 지었는지 모르겠네. 제사한 후 잔 마시고 이따금 북쪽을 바라보니, 부소산(扶蘇山) 빛이 더욱 푸르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선생의 시에는 푸른 하늘에 닿은 화개산과 푸른빛의 부소산이 등장한다. 제사한 후 잔 마시고 선생이 바라본 부소산은 어디메 있을까. 꿈결에서나 볼 수 있을까. 간지러운 봄볕 올라온 화개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본다. 꿈결에도 그리운 어른들의 고향 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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