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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SRT매거진

커버스토리 #전남 신안

주머니에 넣어둔 행복을 찾아
병풍·대기점·소기점·소악도

너와 나 사이 바다가 있다면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고운 발 바닷물에 젖지 않도록, 겨울에도 시리지 않도록. 전남 신안, 병풍리. 크고 작은 6개 섬을 잇는 노두길을 따라 걸으면 자비와 평화를 바라는 12개의 작은 예배당도 만날 수 있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바깥에서 얼굴 반 을 가리던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 아직도 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켜켜이 닫힌 마음의 빗장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한 발 내딛기가 불안했던 수많은 어제에는 경고장과도 다름없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저 일어나는 일은 없고 그저 주어지는 달콤한 행복 역시 없다.’

푸른 하늘, 주홍 지붕, 하얀 소금

서울지하철이 한강을 달린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쾌청한 하늘과 하얀 꽃 무리가 별처럼 고운 이팝나무가 저리 환한데 모두가 손에 쥔 네 모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네모난 화면에서는 오늘도 아귀다툼 이 벌어진다. 잠깐 쉬어볼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내 순진한 생각은 순식간에 그곳에 저당잡힌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방 속에 스마트 폰을 집어넣는다. 지친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겠다. 푸른 하늘, 주홍 지붕, 하얀 소금 이 있는 전남 신안. 진정한 쉼이 있는 그곳으로.

신안과 목포를 이어주는 압해대교를 타고 이윽고 송공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평일 낮인데도 여느 때보다 북적이는 모양은 엔데믹(감염병 의 풍토병화) 전환과 따뜻한 계절에 대한 설렘으로 읽힌다. 여객선터미널에 밀집된 식당들 중 여객선터미널에 밀집된 식당들 중 한 곳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낙지볶음을 주문 했는데, 역시 신안에서 먹는 낙지 맛은 다르다. 탱글탱글한 식감에 칼칼한 양념이 어우러져 밥 한 공기를 게 눈 감추듯 비운다. 이윽고 터미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과 차가 한곳을 향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병풍’으로 가는 배가 항구에 닿고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이 몸을 싣는다. 30여 분이면 오늘의 목적지 증도면 병풍리에 당도한다. 병풍·대기점·소기점·소악도를 합한 병풍리에서 가장 큰 섬은 병풍도, 그 외 작은 섬들에도 주민이 살고 있다. 가장 많은 주민이 모여 사는 병풍도에는 가을이면 맨드라미가 지천으로 피어 나 꽃축제가 열리고, 이를 상징하는 벽화와 주홍색으로 칠한 지붕이 파란 하늘, 검은 갯벌과 어우러져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병풍도 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노두길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18km 길이다. ‘노두’ 란 징검다리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두놓기’라는 세시풍속과도 연결된 다. 겨울철 차디찬 시냇물에 징검다리를 놓는 선을 행함으로써 신의 복을 바라는 것이다. 병풍도의 노두길은 징검다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이웃과 더불어 잘 살고자 하는 선 그 자체다.

노두길, 선을 행하고 복을 얻는 섬 길

만조(조석현상에 의해 해수면이 하루 중에서 가 장 높아졌을 때)가 되면 노두길은 바다에 잠겨 사라진다. 섬의 주민도 이때는 발이 묶이는데, 2~3시간만 기다리면 사람과 차가 오갈 수 있는 노두길이 신비롭게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밤하늘의 운행을 살피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은 흔치 않지만, 병풍도 일대 의 여행이라면 다르다. 보름달이 뜨는 만조 기간 에는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어도 노두길이 물에 잠겨 제 시간에 여러 섬을 돌아보기 여의치 않은 탓이다.

만조 때만 제외하면 평상시 병풍도 일대 는 밀물 때라도 노두길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물이 차지 않고, 찰랑이던 바닷물도 눈에 보일 정도로 금세 빠진다. 기자는 만조 때 방문하지 않아 이 섬, 저 섬을 오가는 데 전혀 지장은 없었으나 노두길이 완전히 잠긴 그 모습을 막연히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조금 아쉽기도 했다. 병풍리의 가장 큰 자랑은 갯벌에 있다. 31.3㎢의 드넓은 갯벌은 지난 2010년 1월 갯벌 습지보호 구역, 2011년 7월 람사르습지, 2016년 3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등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10여 분 전 지나온 노두길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물새가 내려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물때를 알고 찾아온 것인데, 별이 총총한 밤에는 섬 주민들이 나와 갯벌에서 낙지를 잡기도 한다. 운이 좋게도 소악도선착장 인근에 사는 조재갑 선생 댁에서 저녁을 대접받았다. 곱창김이며, 양파, 돌게무침 등 전부 지역에서 나고 선생이 직접 잡은 것인데 자극적인 양념 없이도 감칠맛 이 나 로컬푸드의 묘미를 경험했다.

여러 사람에게 이 맛을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고 하자 선생이 좋은 식당 한 곳을 추천한다. 소기점도에 자리한 특산품 판매소&카페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까지 운 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로컬에 의한 로컬의 맛. 낙지 탕탕이·연포탕·볶음에 갈치조림, 홍어회까지 메뉴도 다양하고, 국과 반찬이 있는 매일의 정식 메뉴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즐 길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기존 게스트하우스에 4인실·8인실을 증축했다. 점점 늘어나는 관광 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인데 1일 최대 40명 까지 수용할 수 있다. 기자 역시 하룻밤 이곳에 머물며 좀 더 여유로운 섬 여행을 즐겼는데 전 날 노두길에서 오가며 스친 인연들을 이곳에서 또 만날 수 있었다.

자비를, 평화를 12개의 건축미술 작품

맨드라미가 한창 피어나는 계절에는 꽃바람을 맞으러 수많은 사람이 병풍도를 찾았는데, 이제 는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할까? 사람들은 사시사철 이곳을 찾는다. 섬 전체가 명소로 거듭나 고 있기 때문이다. 신안군의 ‘인구 및 세대 현황(2022. 4월 기준)’ 자료를 보면 증도면병풍출장 소에 179가구(304명)가 거주한다. 그런데 이틀 에 한 번꼴로 섬 주민보다 많은 사람이 섬을 찾 는다. 지난해 증도면 기점·소악도에 방문한 관광객은 5만4000여 명, 하루 평균 148명꼴이다. 대부분 진섬, 딴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곳곳에 자리한 12개의 특별한 건축미술 작품을 보러 오는 것이다.

2018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지정된 것 을 계기로 신안군에서는 각 섬에 건강의 집(베드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그리움의 집(야고 보), 생명평화의 집(요한) 등 12개 건축물을 세웠 다. 이들 작품은 노두길을 통해 연결되고, 물때에 맞춰 드러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자연과 사람이 빚어낸 신비로운 조화에 ‘기적의 순례길’로 불리며 점점 걸음하는 이가 늘어났다.

김윤환, 이원석, 요라이 아브라함슈발, 장 미셀 후 비오 등 국내외 작가 10명이 1년 여간 섬에 머물며 완성한 작품은 본래의 뜻처럼 자연, 주민의 삶, 일 상과 지극히 어우러진다. 기자는 12개의 건축물에 붙은 이름을 생각하며 행복의 집에서는 행복한 일을 하나 떠올리고, 인연의 집에서는 내 곁의 소중 한 인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은 예배당으로도 불리는 건축물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껴안아줄 듯한 크기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이곳에 잠시 머 무르는 사람들과 이곳이 삶의 터전인 주민을 생각한 작가들의 마음씀에 미소가 지어진다. 네모나게 뚫린 창으로 노두길 너머 병풍도 마을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주홍색의 마을 지 붕이 말 그대로 액자 속 작품이다. 마을에는 ‘야옹, 야옹’ 울음소리와 함께 느리게 걷는 고양이 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대기점도 노두길 입구 에 자리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앞에는 파란 구슬눈을 한 고양이 조형물이 미소를 짓고 있 다. 12개의 작품을 다 둘러본 사람들은 묻겠지. “넌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라고. 기 자는 그리움의 집(야고보), 행복의 집(빌립)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붕에 붉은 기와를 얹은 그리움의 집은 평범한 듯하면서 안온한 정서가 가득하고, 요정의 집처럼 보이는 행복의 집은 곡선미를 살린 지붕에 동판, 적벽돌 등을 사용해 우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이 안에 머물다 갔을까? 작은 쓰레기 하나 없이 실내는 깨끗하고, 창가에는 나와 이웃의 안부를 묻는 글이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다. 자비를, 평화를…. 종교나 성별, 생각의 차이에 갇힘 없이 나아가길.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와 하얀 나비의 날갯짓, 먼 데로 날아가는 왜가리를 바라보며 다시 노두길을 걷는다. 선착장에 배가 들어오고 평온한 미소의 사람들이 그 안에 몸을 싣는다.

AROUND

먹고, 쉬고, 자고, 타고 1박 2일 섬 여행 완성

로컬의 맛 ‘순례자의 섬 게스트하우스&카페’

“디포리(보리멸의 방언)라고, 전어처럼 생긴 작은 물고기를 직접 말려서 육수를 냈어요. 여기에 각종 채소를 넣고 지난밤 갯벌에서 잡은 낙지로 만든 연포탕이에요. 어때요? 국물 맛 이 담백하죠?”

신안 안좌면이 고향인 여 사장님이 솜씨를 부린 낙지연포탕 은 개운한 국물 맛에 탱글탱글 부드러운 낙지의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 음식 맛과 더불어 마을의 자랑인 노두길의 역사와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까지 곁들여져 한 끼가 더욱 풍성 해진다. 소악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길 가까이 마을법인 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카페, 식당이 자리한다. 잠시 쉬어 가기도, 하룻밤 머물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기점길 23-58

061-246-1245

자전거 타고 섬 여행

신안의 떠오르는 핫스폿, 병풍도 일대를 여행하는 데는 자동 차보다 도보, 자전거 여행을 추천한다. 주민들이 섬과 섬의 왕래를 위해 세운 노두길을 기점으로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12km 거리에 자리해 사색하며 걷는 길이 본래의 취지에도 잘 맞는다. 걷기 여행에 나서자면 약 4시간이 소요되는데 병풍 도와 함께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자면 자전거 여행도 매력적 이다. 생각하는 집(안드레아)이 자리한 대기점도에서 전기자 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하루 이용하는 데 1만5000원, 소악도 선착장에 반납할 수도 있지만 대여한 곳에 반납하면 보증금 5000원을 돌려준다.


*대여소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마감 10분 전까지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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