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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SRT매거진

Here we go #우리는 지금 ‘완주’하는 길

우리는 지금

‘완주’하는 길

함박눈이 쌓인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과 시인이 예찬한 작고 소중한 화암사까지,

완주하던 매 페이지가 절정이었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하얀 눈 세상,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

간밤 하늘에서는 쉼 없이 눈을 내려보냈다. 눈 내리는 소리에 구석에 잠들어 있던 먼지들도 놀라 깨어났다. 무슨 일이야? 이 눈이 다 뭐야? 한 해를 분주히 보내느라 애썼다고 잠시 쉬어 가라고 이렇게 두꺼운 이불이 온 사방에 깔린 걸까. 심통 같기도 하고 요술 같기도 한 자연의 조화다. 뽀드득, 푹푹. 지금 이 순간이어서 이토록 풍족한 눈길에서 마음껏 눈 사치를 한다. 길고 탐스러운 머릿결을 자랑하듯 편백나무 잎은 대지를 향해 꼬리를 늘어뜨리고 그 위로 함박눈이 소복하다. 빨갛게 얼어버린 손끝을 호호 불어가며 편백나무가 촘촘한 숲길을 걸었다. 여기저기에 건넨 “뜻한 바 이뤄지길 바랍니다”라는 새해 인사는 진심이었다. 뜻한 바 이뤄지기까지 가장 애써야 하는 건 그 자신이다. 나의 인사로 그가 애씀을 상기한다면 더없이 뿌듯할 것이다. 언제나 목표는 높은 데 있고 가는 길은 험해서 ‘완주’하고 나면 저 밑에서 속-삭-속-삭, 생의 설렘이 하루를 간지럽힌다. 일기예보대로 간밤 완주에는 눈이 하염없이 내려와 쌓였다. 손과 삽을 이용해 낯선 길, 눈 속에 빠진 차를 겨우겨우 구출하고서야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소설의 구성 단계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뤄지지 않는가? 방금 ‘위기’를 잘 극복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여지없는 ‘절정’의 단계다. 보통의 나였으면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다른 사람의 SNS를 통해 구경했을 아름다운 프레임이 눈동자에 박힌다. 액자에 끼워 두고두고 바라볼 절정의 설경이다.  2009년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이룬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은 편백나무 10만 그루, 잣나무 6000그루, 삼나무, 낙엽송, 오동나무가 무리를 이룬다. 하얀 눈, 작은 새의 노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강한 숲의 치유 인자들로 한 해를 보낼 유익하고 이로운 힘을 가득 받았다.

‘쓰지 않을 거야. 그 잔도, 니 인생도’

상관면 공기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 자리한다. 박물관은 바로 구이저수지와도 맞닿으니 코스처럼 둘러봐도 좋다. 2015년 10월 개관한 박물관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평가에서 우수 박물관으로 선정됐다. 가장 오래된 가공음료인 술은 인류의 맥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술을 5만여 점의 유물로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박물관은 관람객의 자연스러운 동선에 맞춰 기획전시실, 발효숙성실, 복합문화공간, 유물전시관, 상설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주가라면 ‘술’과 얽힌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닐 터, 박물관의 곳곳은 방긋 미소를 짓게 하는 콘텐츠로 발길을 멈춰 세운다. 1960년대 대폿집은 ‘인정 많았던 서민의 안식처’라는 타이틀로 재현되었는데 당장이라도 왁자한 소리가 들릴 것처럼 그 현장이 실감난다. ‘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쓰지 않을 거야. 그 잔도, 니 인생도’라는 익살스러운 문구가 새겨진 계단을 따라 2층 전시실로 오르면, 본격적인 술의 역사 속으로 빠질 차례다. 우리나라 전통주부터 각 지역의 술, 맥주, 양주, 와인, 증류주 등 전 세계 술을 총집합해놓은 ‘술꽃피는 역사관’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명성 자자한 술들이 그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 우리나라 가양주가 어떤 이유로 쇠퇴하게 되었는지 역사적인 이유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며 다양하고 활발해진 시대별 술 광고도 눈에 띈다.

2021~2022년은 ‘완주 방문의 해’  BTS로 시작해 완주 정독!

“전주 가보셨어요? 바로 옆에 완주를 안 들르고 그냥 가셨다니!” 완주에서 만난 현지인의 안타까운 한마디다. 그렇다. 완주는 전주와 아주 가깝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와 인접하다 보니 완주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것도 사실. 2021~2022년은 ‘완주 방문의 해’로 완주만이 가진 무한매력을 세상에 공고히 할 시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거듭난 우리나라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은 ‘2019 서머 패키지 인 코리아’ 영상과 화보 촬영을 완주의 오성한옥마을에서 진행했다. 덕분에 오성한옥마을, 아원고택 등이 사람들의 입에 빈번히 오르내리게 됐지만, 실제로 방문한 도시와 마을이 기대와 다르다면 이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BTS, 그다음에는 아원고택, 그리고 오성한옥마을, 그 위의 위봉산성, 비비정, 화암사, 삼례책마을로 완주의 매력은 점점 넓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위봉산, 서방산, 종남산, 원등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오성한옥마을은 마치 큰 새의 둥지에 깃든 것처럼 아늑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통과 개인의 취향이 조화를 이뤄 이리로, 이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아원고택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해체한 뒤 이축한 건물로 3개 동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현재 갤러리로 재탄생한 공간은 서울 화신 백화점 철거 과정에서 나온 벽돌과 전주초등학교에서 나온 100년 된 고재를 재활용해 대나무, 물, 콘크리트, 소리, 자연이 둘도 없는 작품으로 모양을 뽐낸다. 더불어 소양고택은 고창과 무안에서 130년 된 고택 세 채를 옮겨와 서점, 카페, 한옥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높고 낮은 데, 크고 작게 마련한 건물의 창으로는 종남산이며 위봉산, 대숲이 그림처럼 놓이니 오성한옥마을에서의 하룻밤은 누구나 소원할 법하다. 마을 위로는 완주 9경 중 6경에 속하는 위봉사, 위봉폭포, 위봉산성이 자리한다. 겨울 산수화를 눈앞에 마주하면 이처럼 아름다울까.

삼례읍에서 화암사까지. 깊고 깊은 완주 속으로

삼례읍에 도착했을 때는 곧 해가 질 무렵이었다. 겨울 한기에 몸을 숨기듯 잰걸음으로 삼례책마을에 들어섰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다란 책장에는 고서와 주민들의 손때 묻은 헌책이 잘 정리되어 있다. 원래 양곡창고이던 건물은 책마을센터, 북하우스, 한국학문헌 아카이브, 북갤러리가 되어 주민들 간 소통의 장소요, 문화와 문화를 잇는 매개체로 탈바꿈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지만 공간이 주는 품과 무게가 깊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완주에서 봉동읍 다음으로 많은 가구가 거주하는 이곳 삼례읍은 삼례책마을처럼 부족한 것을 채우고, 낡은 것을 이롭게 사용하기 위한 마음 씀씀이가 곳곳에 묻어난다. 또한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마을의 고유한 풍경과 옛 정취를 드러낸다. 구 만경강 철교(국가등록문화재 제576호) 위 비비정예술열차에 탑승한다. 레스토랑, 카페로 운영되는 예술열차에서 만경강의 아름다운 낙조와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를 가리키는 비비낙안을 눈에 담는다. 그 너머 같은 이름의 만경강 철교 위로 화물열차가 눈발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어제와 오늘의 이어달리기, 힘껏 제 몫을 해내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룰은 사물들에게도 적용된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이룰지보다 그저 가는 중, 완주하는 길이 삶에서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만경강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발을 헤치며 달리는 열차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주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는 시인 안도현이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고 쓴 화암사가 있다.”


잘 늙은 절이란 무엇이고, 나 혼자 보고 싶은 책 같은 절은 어떤 모양일까.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산길, 좁았다가 넓어지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 어여쁜 길을 오르자 문득 땡그랑, 땡그랑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완주 화암사 우화루,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바깥에서는 기둥을 세워 누각처럼 보였던 우화루가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인다.

화암사는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극락전(국보 제316호)과 우화루(보물 제662호)는 조선 초기에 세워져 작고 네모난 경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햇살 머금은 전각 아래에서 불명산과 극락전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눈가루처럼 하얗게 바랜 문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삼례책마을, 6번째 책장 높은 곳에 숨겨진 책 한 권. 꿈 많은 소년이 가슴에 새기려 한 구절, 한 구절 손으로 짚어가며 읽은 그 책, 화암사처럼 바래고 귀한 헌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OTHERS 완주, 갤러리·카페·한옥스테이까지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원암로 82 / 063-245-2456


2019년 5월 개관한 산속등대복합문화공간(이하 산속등대)의 활약은 BTS급! 같은 해 9월에는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한 달 뒤에는 전북 건축문화상에서 금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20 나만의 내나라 비대면 인생여행지 추천대회’에서 대표적인 상징물인 ‘하늘을 헤엄치는 아기 흰수염 고래’로 5위에 선정되어 전북권역 1위를 차지했다. 오랜 기간 방치된 제지공장을 가족 중심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원태연 대표는 교육형 예술놀이터로서 산속등대의 비전을 다지고 있다. 입장은 무료, 산속 등대지만 찾아오기도 아주 쉽다. 전시관, 미디어관, 공연장, 체험관, 예술놀이터, 휴식공간 등으로 운영되며 오는 2월까지 산속등대미술관에서 <좋은 날, 너에게 간다_곽미영 초대전>을 개최한다.

 

카페라온

전북 완주군 소양면 오도길 64 / 0507-1321-6896


배산임수, 명당의 기운을 카페라온에서 받아볼까.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 그대로 전면의 넓은 통창에는 저수지 오성제가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지고, 초록의 숲이 빽빽이 카페라온을 감싼다. 베이커리 카페로 운영하며 오성한옥마을에서 차로 3분 거리다.


소양고택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472-23 / 063-243-5222


오성한옥마을에서 아원고택만큼 탄탄한 문화 콘텐츠를 자랑하는 곳이다. 고창과 무안의 고택 3채를 이축해 현재 두베카페, 플리커책방, 한옥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택에 대한 주인장의 애정과 감각적인 손끝은 모든 공간, 구석마다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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