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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by 스포츠춘추

‘비위 심판’ 최규순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2017년 ‘구단 금전 수수 사건’ 6년 뒤 만난 최규순

-최 씨 “그간 야구장 근처에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아” 

-“건설근로자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야구팬들께 ‘용서해달라’는 말은 꼭 하고 싶었다” 

-“희망을 갖기엔 늦었을까”…”그래도 살아갈 이유? ‘내일’이 있으니까”

전 프로야구 심판 최규순(사진=삼성, 스포츠춘추)

전 프로야구 심판 최규순(사진=삼성, 스포츠춘추)

“난 최고의 심판이었다. 당시 심판상은 다 휩쓸다시피 했다. 실은 말이다. 그런 심판이 되려고 노력을 참 많이 했다.” 전 프로야구 심판 최규순의 회상이다.


한때 ‘그라운드 위 포청천’으로 활약한 최 씨는 2017년 ‘구단 금전 수수 사건’의 장본인으로 밝혀지며 야구계를 떠났다. 그 여파로 구속돼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최 씨는 어떻게 지냈을까. 스포츠춘추가 최 씨를 만나 근황을 물었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 팬들께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최 씨의 말이다.

“열심히, 또 치열하게 살고 있다” 최규순의 통회 “용서를 구한다”

최규순은 “그간 야구장 근처에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최규순은 “그간 야구장 근처에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야구장(수원KT위즈파크) 근처다. 야구장은 얼마 만인가. 자주 가나?

안 간다. 아니. 못 갔다. 야구장은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내 잘못으로 야구계에 큰 실망을 안겼다. 모든 분께 죄송스러움이 아직 남았다. 야구장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겠더라.


‘그 일’ 이후,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건설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현장이 잡히면 한 1년간 바짝 일하고, 한두 달 정돈 쉬곤 한다.


자세하게 듣고 싶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보조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건물이 올라갈 때 내부의 세면대, 화장실, 욕조, 배수 공사 등을 돕고 있다. 아침 6시에 나가 오후 5시까지 일한다. 열심히, 또 치열하게 살고 있다.


과거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게 화제가 됐다.

그 방송 후로 가장 많이 느낀 게 있다.


뭔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 분들이 아직 많단 점이다. 댓글이라든지 반응이 그랬다. 이번 인터뷰도, 이 곳에 나오기까지,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인터뷰에 응했다. 용기를 낸 이유는 뭘까.

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건 죽을 때까지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다. 야구계에 누를 크게 끼쳤다. 나를 기억해주시는 야구팬들께 ‘이 말’은 꼭 다시 한번 하고 싶었다. ‘용서해달라’고.


심판 생활은 몇 년간 했나.

현역 때 심판 생활은 23년 정도 하면서 1,500경기쯤 나섰다. 2013년 후론 심판을 보지 않았으니, 10년이 지났다.


선수에서 심판이 됐다.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신)에서 선수를 할 때였다. 프로의 벽이 정말 높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당시 2군 감독이신 이광환 감독님께서 나를 불러 ‘심판’으로의 길을 추천하셨다. 일주일 고민 끝에 결심을 내렸다. 그 후 테스트에 참여해 심판이 됐다.


선수로 미련은 없었나.

큰 아쉬움까진 없었다. 노력은 참 많이 했지만, 선천적인 부분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선수’ 최규순에겐 타고난 재능이 없었다. ‘선수로 대성하진 못했지만, 훌륭한 심판으로 거듭나보자’란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선수보단 심판이 적성에 더 잘 맞았다.

“꿈과 희망을 갖기엔 늦었을까”…”그래도 살아갈 이유? ‘내일’이 있으니까”

심판 시절 최규순(사진=삼성)

심판 시절 최규순(사진=삼성)

‘심판’ 최규순을 회상한다면?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고사성어가 있지 않나. 잘한 사람한테 상을 주듯이, 그땐 내가 심판상을 휩쓸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최고의 심판’ 아니었을까. 최고의 심판이 되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 늘 망설이지 않고, 자신감을 품고 판정했던 기억이 난다. 선수로 타고나진 못했지만, 심판으로서 더 많은 재능을 발견했던 날들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이었을까.

맞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해마다 심판상은 거진 다 받았다. 선수협에서 주는 최우수 심판상도 3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현장에 있는 선수들이 직접 준 상이라서 의미가 남달랐다. (주저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화려했던 순간이다.


2014년부터 심판을 그만뒀다.

슬럼프가 찾아온 건 2012년부터였다. 잃어버린 의욕이 도무지 돌아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쳤다고 해야 할까. 가정사도 있었다. 방황에 빠지게 된 까닭이다.


도박에 손을 댔다.

마음을 도저히 다스리지 못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됐다. 일상에서 위안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고. 계속 바깥으로, 테두리 바깥으로 튕겨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도박에 손이 가 있었다.


승부조작 논란까지 불거졌다.

안다. 당연히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부조작은 없었다. 당시 관련해서 조사를 다 받았다. 다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개인적인 일탈이었다. 승부조작은 절대 하지 않았다.


앞서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말을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이런 내가 꿈과 희망을 갖기엔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하지만, 또 살아야 하니까.  그 누구보다 내일이 설레고 기대되니까. 항상 스스로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되새긴다.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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