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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뉴스1

18㎞ 휘감은 금정산성…고당봉 우뚝, 부산이 품안에

금정산 범어사~고당봉~동문 9.3㎞…푸근·듬직 '부산의 너른 지붕'

'금빛 물고기 설화' 범어사·금샘…해운대 반짝·낙동강 굽이 '풍경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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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샘에서 바라보는 금정산의 산세가 넉넉하고 부드럽다. 왼쪽 끝은 해운대 위의 장산, 오른쪽은 금정산과 이어진 백양산.

산을 이야기할 때 진산(鎭山)이라는 개념이 있다. 도시와 백성을 수호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서울은 북한산, 광주는 무등산,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이다. 하늘에서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부산을 금정산 중심의 산줄기들이 꼬옥 껴안고 있다. 따듯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듬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는 병풍 모습이다. 외침과 격동이 많았던 부산을 지켜내고, 사람들이 기댔던 신앙의 숨결이 곳곳에 묻어있는 산, 금정산이다.


금정산은 사람의 산이다. 산 위에 성곽과 마을과 도로가, 산 구석구석에 암자와 기도터가, 산 둘레에 산책로와 운동시설이 가득하다. 거주지가 산에 바싹 붙어있다. 산이 도시와 사람을 품고, 도시가 산을 단단히 지탱하면서 역사를 이어온 금정산이다.


금정산은 풍경의 산이다. 불과 1시간 남짓 올라 산마루에 서면 사방팔방으로 풍경의 전시장이 펼쳐진다. 산에서 수많은 산을 보고, 그림같은 동해와 남해바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부산과 양산, 김해에 펼쳐진 도시와 들판을 내려다 본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금정산에는 금정산성의 동서남북 4문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등산로가 나있고, 성곽의 북쪽에 최고봉인 고당봉(801m)이 있다. 능선을 길쭉한 고구마 형태로 이은 18.8km의 금정산성은 국내 최대 규모의 산성이다.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범어사에서 북문을 거쳐 고당봉에 오른 후 원점회귀를 하거나 남쪽 능선을 타고 종주를 하는 코스다. 기자는 범어사에서 고당봉에 올라 동문까지 '절반 종주'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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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 범어사~북문~금샘~고당봉 4.2㎞ "산책하듯 부드럽게 올라, 사방팔방의 명품 풍경들을 조망하다"

금정산과 범어사는 한 몸이다. 산꼭대기의 샘에 하늘에서 금빛 나는 물고기가 내려와 놀았다 하여 그 샘을 금샘, 그 산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했고, 그 물고기를 따서 범어사(梵魚寺)라는 절 이름을 지었다. 범(梵)은 불교에서 부처가 사는 세계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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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불이문 위로 잿빛 하늘을 불그스레하게 물들이는 여명. 키다리 소나무와 어우러진 한국화 풍경이다.

랜턴을 켜고 새벽의 산사에 들어선다. 하늘은 잿빛이고 전각들은 검은데, 기다란 계단을 올라서니 법당의 네모 칸에만 불빛이 환하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동작이 간절하다.


하늘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하여 범어사 앞 하늘에 번지는 여명을 바라본다. 회색 도화지에 붓질을 하듯, 잿빛 하늘에 불그스레하게 번지는 물감이 어느새 햇살을 불러와, 수십 개의 전각에 아침 빛을 비춘다. 깨끗이 쓸어놓은 흙마당에 발자국을 내는 것도, 지르밟는 발자국 소리도 미안해하며 절을 나선다.


등산로 입구는 돌의 계곡이다. 물은 대부분 돌 밑으로 흘러 돌만 보인다. 가녀린 씨앗이 돌 틈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려 거목을 키워냈을까?, 기골이 장대한 서어나무, 팽나무, 졸참나무들이 돌의 바다에 우뚝하다. 나뭇잎들 색은 아직 여름인데,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깊은 가을이다. 콧속에 들어오는 공기가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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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풍경. 성곽의 끝 왼쪽에 고당봉, 가운데에 금샘이 있는 바위가 보인다.

금정산성 북문까지는 불과 2.5㎞, 40분 안쪽의 거리다. 금강암 입구를 지나 높은 돌계단을 10분쯤 올라선 이후에는 올라갈수록 경사가 낮아지는 부드러운 길이다. 그래서 소풍 차림이 많고, 물 한 통만 달랑 들고 가는 사람도 있다. 북문에는 넓은 공지와 식수, 화장실, 탐방안내소가 있고, 심지어 반대편의 임도를 통해 올라온 자동차 주차장까지 있다. 이 너른 터는 왜적에 대항하기 위한 승병 훈련장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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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샘 풍경. 한 커플이 인생 샷을 찍고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금정산이 널찍하고 유순하다

여기서 고당봉은 아득하게 보이지만 늦어도 30분 이내로 도착하는 짧은 거리다. 적당한 경사의 돌길을 15분쯤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금샘을 다녀오는 오솔길이 있다. 그쪽으로 5분쯤 들어가 커다란 바위에서 로프를 잡고 힘껏 올라서자, 바위 무더기 끝에 길쭉하게 솟아오른 바위가 보인다. 바위 끝에 홈이 파여 거기에 빗물이 담긴 금샘이다. 물고기가 놀기에는 너무 좁다. 범어(梵魚)는 그곳을 우주로 삼았을까? 금샘에서 물만 먹고, 저 널찍한 산과 광활한 하늘을 떠다니지 않았을까? 여기서 바라보는 금정산의 어깨와 등이 유순하고 펑퍼짐하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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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봉 풍경1. 탐방객이 정상석 가까이 가자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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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봉 풍경2. 정상석 남쪽에서 금정산과 낙동강, 김해 벌판을 바라보는 사람들. 낙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비장하다.

다시 큰길로 돌아 나와 340개 데크계단을 10분쯤 오르니 화강암 돌무더기 끝에 정상석이 햇빛에 반짝인다. 고당봉(姑堂峰)은 할머니 보살님이 제사를 지내던 봉우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금정산의 산등성이는 할머니 손바닥처럼 아늑하고, 산줄기들은 할머니 주름살같이 순하게 뻗어내렸다.


산너울 넘어 저 멀리 고층빌딩이 우뚝한 해운대와 파란 바다가 아른거리고, 유유하게 흘러온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며 수평선으로 들어가는 비장한 풍경도 있다. 뛰어내려도 될 듯 가까운 양산의 물금 벌판과 도시풍경, 그 너머로 첩첩하게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정상석 아래서 도시락을 열자, 고양이 몇 마리가 야옹거리며 어슬렁거려, 몇몇 사람이 소시지 조각을 던져 준다. 고양이는 다람쥐 같은 작은 야생동물들에겐 호랑이다. 다 잡아먹는다. 그러니 고양이를 산에 두면 안 된다. 반려동물은 꼭! 사람 곁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이번에는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남기고 가라는 듯 까악 까악 크게 울어 댄다.

◇ 고당봉-원효봉-동문 5.1㎞ "하얀 도시와 푸른 낙동강을 조망하며 걷는 스카이웨이"

다시 북문으로 내려와 남쪽 성곽을 따라 능선길을 걷는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과 부드러운 능선길을 20분쯤 걸어 원효봉에 닿는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도시풍경은 하얗다. 구불구불한 산자락 사이에 담겨있는 구름 같기도 하고, 솜사탕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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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봉 밑 미륵사에서 본 금정산. 멀리 해운대의 빌딩 숲과 광안리 해변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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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망루 풍경. 왼쪽 멀리 고당봉, 가운데 원효봉, 오른쪽 의상봉.

금정산 남북 능선과 동쪽 부산, 서쪽 낙동강이 훤히 바라보이는 4망루의 그늘에서 고당봉과 원효봉을 실컷 조망하고, 햇빛 짱짱한 능선길을 또 걷는다. 낙동강 방향으로 억새꽃이 붉게 물들고 있는 풀밭에 개쑥부쟁이, 기름나물, 나비나물, 마타리, 엉겅퀴, 고마리 등의 여름꽃과 가을꽃이 섞여 있다. 얼마 지나면 가을꽃들만의 꽃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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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의 야생화. 왼쪽 고마리. 습지에 무성하게 자라고,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 가운데 꽃범의꼬리. 꽃대가 범의 꼬리처럼 길게 휘어진다. 오른쪽 나비나물. 마주 나는 2개의 잎이 나비의 날개처럼 보인다.

등산로 가운데 돌멩이 위에서 까맣게 빛나는 것이 있어 들여다보니 족제비 배설물이다. 기자는 금정산이 가까운 시내의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담을 넘어가는 족제비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산에 먹이가 부족해 내려왔을까, 염려했었는데, 오늘 산 능선에서 족제비 배설물을 발견하니 반가웠다. 짐승 배설물을 반가워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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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등산로 이모저모. 산을 배려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산에 부담을 주는 사람도 있다

길이 순해서 그런지 고무신을 신고 온 어르신도 있고, 양산을 쓰고 가는 숙녀도 있다. 조깅화를 신고 뛰는 사람도 많다. 아니! 산악자전거를 타고 오는 단체도 있다. 땅이 패여 더 많은 흙알갱이들이 쓸려나가고, 사람을 피하느라 등산로 폭은 넓어져, 결국 등산로는 더 넓게 더 깊이 패여 나갈 것이다. 산악자전거는 노면이 단단한 임도에서만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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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넓어지는 등산로. 오고가는 사람이 교차할 수 있는 폭만 남기고, 자연으로 돌려주었으면 한다.

길을 더 내려가니 등산로가 여러 줄 나있고, 길들이 합쳐져 신작로처럼 넓어지고 있다. 몇 년 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노면의 굴곡이 더 깊어졌다. 더구나 이 내리막길의 끝은 습지다. 금정산에는 습지가 많다. 사막화되는 기후변화시대에 습지는 생물들의 피난처와 오아시스로서 절대 보호해야 한다. 상부의 등산로가 패이고 식물이 사라지면 하부의 습지에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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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풍경. 오른쪽에 산악자전거 단체가 등산로로 오르고 있다. 산악자전거는 바닥이 단단한 임도에서만 타야 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시원하게 쭈욱 내려가니 동문이다. 여기서 직진하면 남문을 거쳐 백양산까지 기다란 능선길이 이어진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정맥은 백양산에서 구덕산을 통과해 몰운대에서 바다를 만나 소멸된다.


동문에서 왼쪽은 버스가 다니는 산성도로로 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금정산성 막걸리와 핫플레이스 카페가 유명한 산성마을로 가는 길이다. 산꼭대기에 이런 도로와 큰 마을이 들어서 있는 것이 금정산에겐 미안한 일이다. 한편으론 이렇게 큰 도시에서 금정산의 자연이 이만큼이나 남아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금정산 산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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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 위 등산로에서 바라본 금정산과 부산 시내.

금정산의 곳곳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금정산보다 늦게 추진한 대구 팔공산이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정산은 경관적,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자연환경은 점점 야산 수준으로 되어가고 있다. 부산에서 맹활약했던 고 최화수 기자는 이렇게 썼다. "금정산은 산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도심의 허파다. 그러나 과도한 이용으로 심각한 훼손 위기에 있다. 금정산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자연과 문화를 잘 보전해서, 그 아름다움을 사람도 즐기자!"는 것이 국립공원 제도다. 금정산이 말을 한다면 "어서 날 구해줘, 내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게!" 이렇게 호소할 것 같다. 북한산과 무등산처럼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이 자연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면서, 시민들의 자부심도 드높이는 묘수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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