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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머니투데이

연진아, 우리 학교는 '왕복 10시간' 걸려

전국 하나뿐인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만을 위한 기숙 학교, 대중교통으로 가 보니…서울서 새벽 6시 출발해 오전 11시 20분에 도착, 왕복 10시간 넘게 걸리는 '외진 곳'에 두어, 주말이면 집에 돌아가는 학생들 "힘들어요"…선생님들도 출퇴근 왕복 3시간씩 오가며 아이들 돌봐, 급식시설도 '열악'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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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피해 학생들만 다닐 수 있는,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학교. 그러니 어디서든 오기가 편해야하는데, 정말 교통이 너무 불편하고 오래 걸렸다. 서울에서 등교한다면 벌써 5시간째. 2시간 뒤 버스가 온다고 해서 망연자실 서 있는 기자./사진=그저 학교에 가고 싶을뿐인 남형도 기자

"여기서 택시 17년을 했는데…거긴 정말 외진 곳인데요. 산속이라서, 해도 빨리 져요. 무슨 일로 가세요?"


날 태우고 운전하던 택시 기사의 물음이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풀어 쓰면 이랬다.


거기엔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어요. 믿기 힘드시겠으나 전국에 딱 하나 뿐이에요. 피해 학생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는요. 여기서 마음 회복도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요. 정말 중요하잖아요. 근데요. 이리 구석진 곳에 둔 거예요.



굽이굽이 산길을 돌 때마다 몸이 오른쪽, 왼쪽, 다시 반대쪽으로 쏠렸다. 핸들을 능숙하게 꺾던 기사는 내 말에 잠시 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말을 이어갔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네요. 교통이 안 좋네요. 하, 왜 이런 데 뒀을까요. 학교폭력으로 가뜩이나 힘든 아이들을요. 사람도 더 있고, 좀 밝은 곳이면 좋을텐데…거기는 수행하는 사람한테나 어울리지요."


작은 간이역에서 택시를 타고 또 40분째. 택시가 마침내 멈췄다. 충북 영동에 있는 그 학교, '해맑음센터'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21분. 서울에서 새벽 5시 50분에 출발해 장장 5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거였다.

학교폭력 당한 아들과 죽고 싶었을 때…다시 살려준, 그런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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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한 해맑음센터. 수많은 학교 폭력 피해 학생들을 다시 살게해준 곳. 여기가 임시 거처임을 강조하는 건, 여길 계속 쓰는 건 정말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된 곳에 다시 터를 잡았으면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맑고 파랗던 날. 그 하늘 아래 간판이 보였다. 하도 대중교통을 오래 탔더니 욱신거려 허리를 쭉 폈다. 신음이 나왔다.


걱정돼 빨리 오고 싶었었다. 해맑음센터. 학교란 단어마저 아픈, 피해 학생들을 위해 아예 단어조차 빼버리며 달래준 곳. 10년간 적은 예산으로 고군분투하며 수백 명의 학생들을 애정과 신념과 희생으로 살려낸, 이곳.


그 가치를 한 이야기로 갈음하려 한다. 우현이(가명) 어머니를 만나 들은 실제 얘기다.


우현이를 계단에서 막 굴리고, 때리고, 왕따를 시켰단다. 주도한 가해자가 있었다. 그리 밝았던 애가 말이 없어졌다. 학교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학교폭력위원회는 아무 도움도 안 됐다. 가해자는 멀쩡히 잘 다니고, 우현이가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등교 마지막 날이 됐다. 담임 선생님이 짐을 챙기러 오라 했다. 우현이 어머니는 참담한 심경으로 아들 짐을 바리바리 쌌다. 터덜터덜, 돌아서서 나올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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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에서 만난 우현이. 노래를 얼마나 잘하던지. 대학도 음악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여기에서 다시 회복하고 자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운동장에서 축구 하는 애들이 보였다. 해맑게 웃는 이들 중에, 우현이를 죽도록 괴롭힌 가해자도 있었다. 그놈은 공을 차며 행복해 보였다. 우현이 어머니는 "당장 달려가서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고 했다. 꽤 오래 지난 일인데도 회상하며 꺽꺽 토하듯 울었다.


그때 아들과 온 곳이 '해맑음센터'였다. 출석이 인정되고, 가해 학생이 없으며,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우현이 곁엔 밤을 함께해줄 선생님도, 또래 피해 학생들도 있었다. 다들 우현이편이었다. 다시금 말이 많아졌다. 표정도 밝아졌다. 공부도 했고, 주특기인 노래도 자주 불렀다. 이젠 어엿한 대학생이다. 우현이 어머니가 말했다.


"실은, 그때 우현이랑 같이 죽고 싶었어요. 우릴 다시 살려준 건 해맑음센터입니다. 오직 여기뿐이에요, 이런 곳은요."

강제로 쫓겨난 학생들, 교육부가 정해준 건…산골 깊은 '외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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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된 건물. 쩍쩍 갈라진 바닥. '안전등급 E등급'은 예견된 거였다. 대책을 마련해달란 말만 지켜줬어도, 해맑음이 문 닫는 일은 없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뭉클한 우현이 이야기. 이는 해맑음에서 회복한 수많은 얘기 중 하나일 뿐. 오죽하면 한 학생이 센터를 떠나며 이런 말을 했을까.


"지금까진 어른들에게 크게 실망했었어요. 해맑음센터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천사가 이리 산속에 들어와 있으니, 제가 못 만났던 거였어요."


그러나 해맑음센터에 위기가 왔다. 폐교한 60년 넘은 낡은 건물을 썼었는데, 기숙사가 기울어질 정도로 위험해졌다. 그걸 우려한 해맑음센터 선생님들이 이미 4년 전부터 교육부에 요청했었다. 이사갈 곳을 찾아달라고. 찾아주지 않았다. 아이들 침대가 7cm씩 뜰만큼 건물이 위험해진 뒤에야, 교육부가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시한 후보지는 대부분, 당시 센터보다도 열악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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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를 당했고, 가해 학생과 같은 교실이 힘들어 해맑음센터에 온 아이들. 피해 학생들끼리만 다닐 수 있는 게 전국에 고작 하나인데, 그마저도 쫓아내버렸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교육부가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마지막 날, 유일하게 기댈 건 선생님의 토닥임 뿐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더니 안전등급 E등급이 나왔다며 나가라고 했다. 결국 올해 5월 19일, 학교폭력 피해 학생 7명이 쫓겨나다시피 나갔다. 그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비판이 쏟아졌다. 일주일 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해맑음센터에 다녀갔다. "책임을 통감한다, 깊이 반성한다"기에 뾰족한 대책이 나오나 싶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오랜 기간 속앓이하던 조정실 해맑음센터 센터장에게 연락이 왔다. 드디어 '임시 거처'가 생겼다고, 다시 문을 연다는 거였다. 반가우면서도 이번엔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자마자 벌써 놀랐다.


충북 영동에 있는 해맑음센터 주소를 입력했을 때,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4~5시간(편도 기준) 넘게 걸린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KTX→무궁화호→하루 3대 다니는 버스'…대중교통으로 가는 데만 '5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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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막 나온 시간, 새벽 5시 48분. 동네에서 체크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해맑음센터에 오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 그중 가장 많은 지역이 서울경기도였다. 기숙형 학교라, 금요일이면 집에 돌아갔다가 월요일엔 다시 등교했다. 그런데 이리 멀면 매번 어찌 다니려나 싶었다.


서울에서 직접 가 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그게 기준인 게 맞다 여겼다. 모든 부모가 매주 차로 데려다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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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10분. KTX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한 시간./사진=남형도 기자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서울 지하철과 KTX와 무궁화호와 충북 시내버스를 타는, 엄청난 여정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40분. 6시 56분 출발 KTX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오전 8시 7분에 내렸다.


그다음엔 무궁화호를 타고 황간역까지 가야했다. 그런데 배차 간격이 커서, 다음 열차가 오전 9시 28분 차였다. 1시간 20분을 대전역에서 때워야 했다. 유명빵집 빵을 사고,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유실물 센터에 맡기고도 시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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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34분. 무궁화호에 오른 시간./사진=남형도 기자

덜컹거리는 낡은 열차, 무궁화호 1호차에 올랐다. 그걸 타고 48분을 더 가서 작은 간이역, 황간역에 오전 10시 23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물한리까지 가야 하는데, 배차 간격이 너무 길었다. 640번 버스는 하루에 1번 운행하고, 642번 버스는 하루에 3번밖에 운행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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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반에 영동 버스정류장에서. 배차 간격이 너무 길었다. 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결국 택시를 탔다./사진=남형도 기자

다음 버스가 2시간 뒤인 오후 12시 20분에 온다고 돼 있었다. 지나가는 어르신께 "이 버스 시간표가 정말 맞느냐"고 재차 여쭤봤더니 고갤 끄덕였다.


별수 없이 택시를 잡아야 했다. 10분을 기다리니 한 대가 왔다. 차를 타고도 40분을 더 들어가야 했다. 택시 기사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시간이 많은 어르신들 밖에 안 탄다"고 했다. 택시요금이 3만3500원이나 나왔다.


힘겹게 해맑음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22분.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면, 무려 5시간 30분이 걸려 등교할 수 있는 거였다. 이게 맞는 것일지.

"선생님 뽑는데 공고만 4번 냈어요, 멀어서 못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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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 간판도 하나하나 다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사진=남형도 기자

산속 깊고 조용한 곳. 주로 여름에 계곡을 찾는 이들이 많은 곳. 원래는 교사들 휴양지로 쓰던 건물을, 해맑음센터로 쓰는 거란다. 언뜻 보기엔 고요히 쉴 수 있을 듯했으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녔다.


윤석진 상담지원팀장이 학교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나를 반겼다. 그는 얼마 전 아기를 낳았다. 돌보느라 집에서 출퇴근하는데, 왕복 6시간이 걸린단다. 윤 팀장은 "새벽 6시에 차를 타고 조치원역에 가서, 거기서 기차를 타고 영동역까지 가서, 선생님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타고 한꺼번에 해맑음센터로 온다"고 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등하교가 어렵다. 매주 금요일이면 그리운 집에 돌아간다. 오후 1시에 선생님들이 대전역까지 데려다주고, 월요일엔 다시 대전역에서 데리고 온다. 왕복 2시간씩 걸린다. 그게 다가 아니다. 학생들은 대전역에서 집까지 또 가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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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과 행정실 사이에 구분이 안 돼 있어, 선생님들이 일하며 학생들 수업 소릴 다 들어야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불편한 교통. 그로 인해 더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교육 기회'의 박탈이다. 일단 대전에서 영동 외진 곳으로 오며, 선생님 두 분이 그만두었다. 오래 함께해 온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다시 선생님을 모시는 것도 쉽잖았다. 조 센터장은 "선생님을 뽑기 위해 채용 공고를 3번이나 내야 했다"며 "너무 멀다며 다들 오기 꺼려했다"고 했다.


예컨대,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을 위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이 해맑음센터의 강점이었다. 이는커녕, 영어·수학 등 주요 교과 선생님도 없어서, 줌(화상)으로 수업을 듣고 있단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27일,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를 지적하기도 했었다. 분노한 그는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일갈을 멈추지 않았다.


"해맑음센터는,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가는, 첫 길을 가는 아이들이 정말 얼마나 큰 고통이 될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급식시설도 없어…센터장이 직접 밥을 지어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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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에 올려진 드라이기.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쓰는 시설 지원이 이리 열악하다./사진=남형도 기자

기숙하는 학교에 '급식시설'도 없었다. 이 부분은 정말 놀라웠다. 하루 세끼 먹여야 하는 아이들 밥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급식실을 (충북교육청에서) 해주기로 해놓고 안 해줬어요. 여긴 안 된다고. 그래서 내 방에서 부르스타랑 도마랑 칼 갖다가 애들 밥을 해주고 그랬지요. 조리대가 없으니까 방바닥에 앉아서 밥해 먹으니…."


그마저 마땅찮을 땐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 차를 타고 가서 밥을 먹였다. 아침, 점심, 저녁 식비만 1인당 2만4000원씩 들었다. 비용도 그렇지만, 저녁엔 술 마시는 손님들이 많아 교육에 적당치 않았다.


방문한 날도 점심을 먹기 위해 차로 이동해야 했다. 차 2대에 나눠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30분씩 나가야 했다. 고작 점심을 먹기 위해서. 찬우(가명)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차에서 흘러나왔다. 10여 곡이 바뀌는 동안에도 차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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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점심식사를 하러, 급식 시설도 없어서, 30분을 넘게 봉고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불편함. 부조리함./사진=남형도 기자

아이들과도 대화했다. 오래 걸리는 등굣길이 지겹다고 했다.


"집에서부터 해맑음까지 한 3~4시간 정도 걸려요."(지아, 가명)


"왔다갔다 하는데 진이 다 빠지겠어요. 좀 가까워야 하는데."


"그러게요."(지아)


식당에 도착해, 누구는 제육볶음을, 누구는 곤드레 육개장을, 또 다른 누군가는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다 먹고 또 30분을 센터까지 이동해야 했다. 소화할 틈도 없이. "식사를, 매번 이렇게 나와서 하는 게 많이 불편해요." 찬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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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시설이 인근에 마련됐어도 여전히 열악해서, 밥과 반찬을 다 하고 다시 센터로 옮겨야 한다. 선생님들이 직접 나르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분리 칸막이도 없는 열악한 교실…교육부 "더 나은 장소로 이전해야 한단 절박함 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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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의 두 강아지, 단비와 비단이. 두 녀석과 인사하는 지아./사진=남형도 기자

해맑음센터가 대전에 있을 때부터 다녔던 정훈이(가명)에게 물었다. 예전과 비교해 어떠냐고.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대전에 있을 때 센터가 더 좋아요. 일단 더 가까웠고, 수업도 종류가 훨씬 많았지요. 영어나 수학은 지금 줌(온라인)으로 하는데요. 직접 듣는 게 훨씬 나아요."


하루를 머무는 동안 나 역시 그리 느껴졌다. 행정실과 교실은 칸막이 구분도 안 돼 있었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옆으로 고스란히 들려오는 구조인 거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해맑음센터에 와서 했던 이런 얘기가 떠올랐다. 되새김질하게 됐다.


"피해 학생들의 치유와 회복이 정말 중요한데, 그에 대해 충분히 보살피지 못한 점 깊이 반성합니다. 국가 차원 시설은 여기 한 곳입니다. 시급히 대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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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감을 따는 아이들.체험 학습도 해맑음센터의 강점이다. 여러 활동을 하며 아이들은 회복하고 다시 살아간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접근성이 열악해 강사를 모시기조차 어려운 실정이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을 먹고 감나무에서 함께 감을 따고. 처음엔 서툴렀으나 이리저리 막대기를 움직이며 요령을 배우고. 잘 익은 감이 떨어졌을 때, 곁에 있던 친구들과 선생님이 환호성을 질러주고. 그때, 잠시 잃어버렸던 무언가가, 표정에 밝게 채워지는 걸 봤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가지를 따고, 감을 예쁘게 깎고 힘을 모았다.


"와, 선생님. 이거 보세요! 저 세 개를 한 번에 땄어요."


그 웃음이 왜 이리 좋은지. 따스한 햇살에 푸른 땀방울이 흘렀다. 짧은 순간에도 자라고 있었다. 이런 공간에선 더욱 쑥쑥 자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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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에서 차를 타고 1시간씩 영동역에 나가서, 거기서 다시 또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선생님들. 출퇴근에 5~6시간씩 걸린다. 오직 아이들만 바라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사진=남형도 기자

5년째 예산도 동결돼있는 해맑음센터. 폐쇄당한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외진 곳에 몰린 피해 학생들의 유일한 학교. 기댈 건 오롯이 서로의 힘뿐이었다. 그리 치유하고 있었다. 그 역할은 대체될 수 없으며 무척 중요하다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았다. 그저 사명감으로 버텨달라고. 그렇게만 하기엔 힘든 환경이기에, 너무 늦기 전에 바뀌었으면 싶었다.


교육부 담당 과장에게 물었다. 이와 관련해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그는 교육부 입장은 아니지만, 개인 의견으로라도 밝히겠다며 답을 했다.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진심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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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센터에 왔었던 이주호 교육부 장관(가운데)과 조정실 해맑음센터장. 정말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를 바랄뿐./사진=뉴시스

"지난달 23일 해맑음센터 방문 결과, 더 나은 장소로 이전해야 한단 절박함을 체감했습니다. 더 좋은 곳이 있을텐데, 교육부 장관님까지 앞장서고 있지만 아직 못 찾았습니다. 학교 부지는 시도교육청 소속이라, 이들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교육부는 장관님 지시에 따라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이 이 기사를 보고, 적절한 장소를 제시한다면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계속 묶여 있던 해맑음센터 예산에 대해서도 담당 과장은 "직전 센터보다 접근성이 더 열악하고, 인프라가 부족해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 예산은 국회가 심의하는데, 현장 필요성이 반영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니 이 기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가서 다시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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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가 그린 해맑음센터의 두 강아지, 비단이와 단비./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지아가 조금 일찍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의 행정심판 때문이었다.


가해 학생들의 최근 수법이 이렇단다. "나도 너한테 피해 입었어" 같은 지저분한 물귀신 작전. 지아는 길어지는 다툼에 지친다고 했다.


조정실 센터장이 지아를 토닥이며 이리 말하는 걸 들었다. "걱정하지 마, 거짓은 진실을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러게, 그리 든든한 내 편이 있는데 어찌 이길 수 있을까. 왕복 서너 시간을 감수하고 출퇴근하던 선생님들이다. 진정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한.


영동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지아가 뜻밖의 말을 했다.


"선생님, 제가 일찍 가서 마음이 쓰이는 게 있는데요."


"응? 뭔데, 지아야."


"주환이(가명)가 밥을 잘 안 먹거든요. 옆에서 잘 먹으라고 좀 챙겨주세요. 신경이 쓰여요."


얼마 전 학교폭력 피해로 들어온 중학생 주환이. 많이 말랐고, 또 코피를 자주 쏟는 동생을 두고 가는 게 맘이 쓰인다고. 자기 일도 힘들면서 선생님께 노파심에 부탁하던 착한 아이.


뒷자리에서 그걸 우연히 들었다. 묵직한 뭔가가 뜨겁게 올라오다 삼켜졌다. 다짐하듯, 지아와 속으로 약속했다.


컴컴한 터널 속에서 길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작은 불빛 같은 이곳이, 계속 이어지도록 정말 애쓰겠다고.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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