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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머니그라운드

유독 아꼈다, 이부진을 ‘리틀 이건희’라고 부르는 이유들

일부 사람들이 욕하는 금수저의 성공 스토리는 능력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아니다, 아무리 재벌가의 자손일지라도 기업 경영에 소질이 없어 기업을 망치는 금수저도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의 자손으로 태어나 학벌과 재력, 집안의 인맥까지 갖췄으니 살기 편하다는 것은 인정! 하지만 대기업의 CEO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삼성가의 ‘이부진’은 신라호텔의 대표로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으로 사회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녀가 발휘한 의외의 결단과 이건희를 닮은 리더십 때문인데, 삼성가에서 ‘리틀 이건희’라고 불리게 된 그 이유를 풀어보도록 하자.

직원들과 평소 격의없이 소통

책임회피보단 정면돌파식 대응


우선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2011년 한복 퇴출 사건이 화두가 될 수 있다. 왜냐면 그녀의 당시 대처법이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평소 직원들과도 격의 없고 소통을 중요시했던 그녀는 대중과의 소통에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복 퇴출 사건 당사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를 전한 것이다.이슈에 대응하는 다른 기업의 총수들처럼 법무팀 뒤에 숨지도 않고 회피하거나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닌 정면돌파식 대응을 보여준 것이다.이로 인해 부정적이었던 여론도 빠르게 진정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부진식 리더십에 이건희의 특출난 기업가 정신까지 더해졌는데 그 특징들을 아래에서 풀어보겠다.

위기 속 새로운 변화 모색

신라호텔 주가 14% 끌어올려


현재 중국 국빈들의 주 호텔로 자리 잡은 신라호텔은 2010년 최악의 위기가 있었다. 소위 테러도 가능하다는 6분간의 정전으로 인해 중국 VIP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바로 1년에 거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추진한 것이다. 이후 2014년 중국 주석인 시진핑의 방한 소식을 듣고 이부진은 자처하여 손수 그의 일정 전반을 챙기는 노력을 했다. 이로 인해 ‘중국 국빈 전담’이라는 명성을 회복하는 쾌거와 함께 신라호텔의 주가를 상승시켰다.

이부진이 리틀 이건희라고 불리는 두 번째 특성을 꼽자면 바로 이 부분이다. 2015년 그녀의 판단력이 빛을 발했던 것은 신라호텔의 주가를 14%나 끌어올린 면세점 사업이다. “잘 되면 여러분 덕, 떨어지면 제 탓이니 걱정마세요.” 발언으로도 유명한데, 롯데와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기에 이때 이부진의 판단은 놀라웠다.


그녀는 고심 끝에 신의 한 수를 던졌다. 당시 ‘실시간 검색’이 될만큼 대중의 관심도 높았는데 바로 선대 때부터 경쟁 상대였던 현대 가의 2세와 손은 잡은 것이다. 이로써 신라호텔의 취약점을 보안시키며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또한 명분보다는 실리를 앞세우는 그녀의 경영 스타일을 확고하게 보여주게 되었다.

3년들여 루이뷔통 인천공항 유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보여


그녀는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이뷔통을 인천공항에 유치시켰다. 2010년부터 인천국제공항에 입점시키기 위해 직접 루이비통의 헤네시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나는 등 3여 년의 공을 들였다.


결국 직접 발로 뛰어다닌 결과 루이뷔통 회장의 경영원칙을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로 공항 면세점에 입점 시켰다. 신라면세점은 이로써 집객효과를 얻으며 매출 상승에도 큰 효과를 거두었다. 2001년 3천억이던 매출을 현재 2조 매출로 뛰어오르며 그녀의 사업가 기질은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되었다.

2014년 택시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택시 운전자의 부주의로 신라호텔은 5억 원의 피해를 보았지만 운전사의 힘든 사정을 알고 모든 변상 의무를 면제한 것이다. 이례적인 사건이기도 하고 땅콩 리턴과 비교되면서 조현아를 2번 힘들게 한 사건이라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의 지도층들은 얼굴을 알리는 방식은 재밌게도 대부분 범법행위다. 그러니 이 사건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의 지도층의 문제점을 꼬집을 때마다 출연하는 영국의 왕실도 이부진을 부각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영국 왕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귀하게 태어나 고귀하게 행동한다’의 정신 때문이다. 이를 닮은 이부진의 행동은 국민들이 바래온 지도층의 모습이었기에 삼성가에 대한 이미지를 좋은 방향을 바꾸는 계기를 주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10월 25일 이건희 회장 별세

이부진, 오열하는 모습 보여


작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6년의 투병 끝에 영면에 들었다. 2014년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었다. 영결식은 고인과 유족이 뜻에 따라 가족장 형태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영결식을 마치고 장지를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던 이부진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부진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이재용 부회장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유족 등을 태운 운구 행렬은 이건희 회장의 자취가 남아있는 서울 한남동 자택과 승지원, 화성 사업장을 들른 후 수원에 위치한 가족 선영으로 향했다.

고인은 생전 각별했던 딸 사랑으로  유명했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이부진과 이서현의 손을 잡은 모습을 드러내며 직접 공식석상에서 소개했다. 이후 두 딸과 공식석상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그때마다 손을 꼭 잡은 다정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건희 회장의 직접적 사인은 신부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런 후 6년이 넘는 긴 투병 생활을 했다. 고령임에도 긴 투병생활을 해왔던 이 회장의 신장 기능이 나빠지면서 회복이 어려웠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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