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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by 경향신문

“우리가 옳았다” KTX 승무원들 13년의 투쟁

“우리가 옳았다” KTX 승무원들 1

12년 전인 2006년 4월, 서울 용산 고속열차 승무사업소 캐비닛 위에 파업으로 오랫동안 현장에 나가지 못한 승무원의 구두에 먼지가 쌓여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6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승무원을 대량 해고한 ‘KTX 승무원 사태’가 21일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과 코레일은 2006년 정리해고된 이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KTX 해고 승무원 180여 명을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하는 데 합의했다고 21일 밝혔습니다. KTX 승무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 4526일째 만의 일입니다.

 

“드디어 이 곳에서 투쟁과 농성이 아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이 꿈같고 믿기지 않습니다”

 

해고 승무원들 노조(KTX열차승무지부)의 김승하 지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 열린 기자회견(철도 노사 교섭보고 및 천막농성 해단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옳았다” KTX 승무원들 1

철도노조와 코레일이 KTX 해고 승무원 복직에 합의한 21일 13년째 투쟁을 이어온 KTX 해고 승무원들이 서울역 플랫폼 중앙계단에서 투쟁 해단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꿈에 그리던 승무원직으로는 당장 돌아가지 못하지만, 승무원들은 일단 코레일의 정규직 직원으로 ‘복직’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코레일은 해고 승무원들을 역무직에 채용하고 앞으로 코레일이 KTX 승무업무를 직접 운영하게 되면 그 때 이들을 승무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고 승무원들은 지금 자회사(코레일관광개발)에 간접고용 된 승무원들이 앞으로 코레일에 직접 고용되고, 자신들도 원래 하던 승무업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36:1 경쟁률의 ‘취업 사기’

십여 년을 끌어온 이 사태의 시작은 KTX가 운행을 처음 시작한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철도청이 항공사 승무원같은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고 떠들썩했습니다. 입사 경쟁률은 2004년 13대1이었고 이듬해는 무려 136대1까지 치솟았습니다. 항공사 전형을 포기하고 공기업인 철도청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승무원으로는 여성만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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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KTX 첫 운행을 앞두고 기관사들과 승무원들이 안전운행을 다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입사할 때는 마침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사측은 일단 홍익회(퇴직자와 유가족을 위한 사업을 하는 철도공사 유관단체)에 승무원들을 채용한 후에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바뀌고 나면 정직원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대 초·중반이던 승무원들은 처음에 기간제로 계약을 하면서도 정규직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비정규직’ 개념이 널리 알려진 때도 아니었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을 부실한 위탁업체들에 넘겨 관리하게 했습니다. 승무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자 철도공사는 ‘열차팀장은 안전을 담당하고 승무원은 고객서비스만 맡아야 한다’면서 업무 규정을 바꾸고는 승무원들을 자회사로 배치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소속을 자회사로 두면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억지 논리’였습니다. 자회사로의 소속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파업으로 맞서자 철도청은 승무원 290여명을 한 번에 정리해고해 버렸습니다. 기만적인 채용이 사실상의 ‘취업 사기’였다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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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28일 KTX 해고 승무원 100여명이 국회 앞에서 동료 승무원의 사법처리에 항의해 정복 차림에 포승으로 몸을 묶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호욱 기자

1·2심 법원, “실질적 사용자는 코레일”

승무원들은 승무원들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가 모두 승무원들 손을 들어 줬습니다. 2010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승무원 승소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이듬해 8월 서울고법에서도 철도공사의 항소를 기각한 겁니다.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것을 인정한 판결이었습니다. 해고 기간 동안 밀린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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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28일 KTX 승무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역무 계약직 고용합의를 연내 이행할 것을 코레일 측에 촉구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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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26일 KTX 해고 승무원들이 승소 판결을 받은 후 환한 표정으로 법정을 나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날벼락’ 대법원 판결

그런데 최종심서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2015년 2월26일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판결로 승무원들은 각자 1억원 가까운 빚을 얻었습니다. 1심에서 승소한 후 4년동안 코레일에서 받은 돈을 모두 내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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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을 시작할 때 20대이던 승무원들은 2015년 대법원 판결이 나올 무렵 30대 중반이 됐다. 그해 3월4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KTX 승무원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엄마를 따라나온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다음달, 복직을 기다리던 해고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KTX 승무원 사태가 10여 년 째 해결되지 않자 2017년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정부와 코레일에 승무원들을 복직 시킬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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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교섭을 촉구하는 KTX 해고승무원들과 종교인들이 지난해 9월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를 출발해 서울역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승무원들은 사법 거래의 ‘희생양’이었나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발표로 KTX 승무원들이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시도한 ‘재판 거래’ 희생양이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전략’ 문건에는 ‘KTX 승무원 재판’도 언급돼 있었습니다.

“우리가 옳았다” KTX 승무원들 1

KTX 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정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후 면담 요청서 전달을 대법원 대법정으로 들어간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이 직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KTX 해고승무원들은 지난 5월 김환수 대법원 비서실장에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 대한 직권재심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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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KTX 해고 승무원들이 대법원의 ‘재판 거래’에 항의하며 서울 서초동 대법원 표지석에 하얀 국화꽃을 던지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하늘에 있는 동료에게…“우리가 옳았다”

“싸워 봐야 안 되는 거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붙잡고 있는 너희가 멍청한 거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피해자였고 우리가 옳았기 때문에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고, 그 믿음을 많은 분들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셨습니다.” 김승하 지부장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레일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하고, 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해고된 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 참여했던 승무원 가운데 복직을 원하는 사람을 모두 채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재심 과정에서 승무원들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기쁜 순간에도 이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는 한 친구, 그 친구에게, 그래도 우리가 정당했고 옳았고, 끝까지 투쟁해서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 친구와 딸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늘에서나마 지금 이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겠지만, 힘 모아서 모든 것을 밝혀 내고 사법농단 책임자 처벌하는 것이 그 친구를 위한 마지막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김승하 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 발언은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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