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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by 재무제표 읽는 남자

4월은 잔인한 달, 왜?

SUMMARY

- 감사보고서는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판단, 총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네 단계로 구분

- ‘의견거절’은 곧장 주식 거래가 정지되며 상장 폐지까지 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단계

- 과한 전환사채 발행, 빈번한 지배구조 변경, 주가 급등락 보며 사전 시그널 파악 필요

 

© Unsplash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를 통해 인간 사회의 죽음과 파멸, 혼돈과 무질서를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오한 내용은 대부분 모르지만 첫 구절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이 봄을 알리는 4월입니다. 전혀 공감이 되질 않죠. 하지만 주식투자자에게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상장폐지 기업이 나오는 달이거든요. 즉 나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잔인한 달’입니다.

 

© 매일경제 2023.3.27

 

매년 심판대에 오르는 상장사들 외부감사는 회계법인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리뷰해 ‘적정한지’를 인증해 주는 과정입니다. 그 결과 보고서를 ‘감사보고서’라 부릅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195개 회계법인이 26,969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감사합니다. 이중 상장사는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코넥스시장을 합쳐 2,396개입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적정’을 받고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합니다. 그래서 2~3월은 회계팀, 재무팀이 무척 바쁜 시기입니다. 회사는 회계법인에게 정기총회 4~6주 전에 재무제표를 줘야 하고, 회계법인은 정기총회 1주일 전에 ‘감사의견’을 포함한 감사보고서를 피드백 해야 합니다.

‘감사의견’은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사의 재무제표 수준을 알리는 등급과 비슷합니다.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네 가지로 구분되며, 적정의견은 제대로 된 재무제표가 만들어졌고, 감사를 통과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은 ‘비적정 의견’으로 분류되며, 무언가 재무제표 관련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제시됩니다. 상장사가 비적정 의견을 받으면 곤란해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거래정지 등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주주총회가 3월 말에 몰려 있으니, 보통 3월 20일 전후로 회계법인에게 감사보고서를 받아야 합니다. 감사보고서 미제출 기업이 되면 화창한 봄날을 맞기 힘들 수 있습니다. 마감시간에 쫓겨 단지 서류 제출이 늦어지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감사인에게 4~6주 전에 아무런 증빙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정말 엉망인 재무제표가 밝혀져 ‘계속기업가정의 불확실성’, 즉 회사가 지속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대화가 오갔을 수 있으니까요. 감사보고서 미제출 기업의 숫자를 봐도 2,396개 기업 중에 46곳입니다.(3/24 기준)

 

© DART 셀리버스 2023.3.23 공시

 

가장 심각한 단계, ‘의견거절’ ㈜셀리버리가 2023.03.23 "감사보고서 제출" 공시에서 2022사업 연도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감사범위 제한 및 계속기업 존속능력 불확실성으로 인한 ‘의견거절’ 임을 밝혔습니다. 감사 의견거절은 상장폐지 사유로 2023.04.13(限, 영업일 기준)까지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네요.

보통 재무제표가 적절히 작성되면 ‘적정’이라는 의견을 받게 됩니다. 감사 의견거절은 회계법인이 “어랏, 회사가 자료(재무제표 관련 증빙)를 안 주네, 넘 이상한데... 주세요 빨리! 감사의견 내려고 하는데 또 안 주시네... 그럼 저희가 드릴 의견이 없으니 ‘의견거절’ 드립니다.”라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회사가 문제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의신청을 통해 의견거절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상장폐지까지 진행되는데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던 원인이 크다면 의견거절을 뒤집기가 쉽지 않습니다.

㈜셀러버리는 홈페이지 게시물을 통해 투자자들에 대한 사과뿐만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 활동으로 크게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대표이사의 사재(20억 원) 출연, 자회사 및 모든 유·무형 자산 매각을 통해 자금 확보, 추진 중인 기술수출 계약을 조속히 달성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우선 셀리버리가 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2022년 재무제표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셀리버리는 제약, 보건, 바이오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술인 "약리물질 생체 내 전송기술 (Therapeuticmolecule Systemic Delivery Technology: TSDT)"을 기반으로 한 6종의 신약후보물질과 연구용 시약을 연구개발 중인 회사입니다. 최대주주는 대표이사인 조대웅 (13.45%), 그리고 2022년 말 기준 소액주주 50,911명이 지분 77.89%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셀리버리는 바이오 기업으로 2018년 기술 특례를 통해 상장사가 된 경우입니다. 바이오 기업의 붐이 있었던 당시엔 성장성이 우수한 신약기술을 가진 회사에 대한 IPO가 ‘특례’로 이뤄졌습니다.

이제 5년이 지나가는 시점입니다. ‘약리물질 생체 내 전송기술 TSDT 플랫폼’이 샐리버리의 핵심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성공하면 iCP-Parkin (파킨슨병 치료제), CP-FXN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 치료제), iCP-SOCS3 (췌장암 치료제), CP-BMP2 (골형성 촉진제), CP-SD (고도비만/당뇨 치료제) 등의 약효에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셀리버리의 감사 의견거절은 그간의 연구성과와 별개로 기업의 재무적인 상황으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담당 외부감사인인 대주회계법인은 ‘영업손실이 668억 원이며, 당기순손실이 751억 원입니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255억 원 초과하고 있으며, 올해 10월엔 전환사채 350억 원(액면가액)이 청구될 예정입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적자가 큰데 팔 자산도 없고, 올해 10월엔 갚아야 할 사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대책을 회사가 제시하지 않았다는 거네요.

 

© 재무제표 읽는 남자

 

좀 더 세부적으로 재무제표를 살펴보겠습니다. 셀리버리의 2019~2022년 재무제표 상으로 자산총계가 2021년 1,294억 원으로 전년대비 급증합니다. 당시에 어떤 기업 변화가 있었는지 검색을 해보니 종속기업인 ㈜셀리버리 리빙앤헬스를 인수합니다. 연결기준이기 때문에 종속회사가 포함되어 자산이 증가했습니다. 해당 회사는 당기순손실 -309억 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1년 전환사채 발행으로 약 700억 원의 자금조달이 이뤄졌습니다. 그 돈이 단 1년 만에 145억 원밖에 남지 않습니다. 어떤 계획이었는지는 모르나 셀리버리의 종속회사 취득은 재무적 위기를 낳은 첫 번째 원인으로 보입니다.

전환사채는 향후 자본이 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갚아야 할 빚입니다. 2022년 셀리버리의 부채비율은 713%입니다. 손익계산서를 보면 아직 매출액을 통한 이익을 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위험해 보입니다. 보통 부채비율 200%만 넘어도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다는 시그널로 봅니다. 물론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이라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현재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가장 쉬운 건 자본을 확충하는 추가적인 투자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2020~2021년에 재무활동을 통한 자금조달이 있었으니 또 한 번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더욱더 신약개발의 ‘마일스톤’이 필요합니다. ㈜셀리버리도 2022년 영업적자 666억 원을 낼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비용 지출 내역이 보입니다.

 

© DART 셀리버리 2022 사업보고서: 주석28 성격별 비용

 

2022년 총 900억 원의 비용 중 경상연구개발비 202억 원은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으로 이해할만 한데 광고선전비 162억 원은 좀 의외입니다. 또한 종업원 급여 역시 2배 이상 증가했네요. 직원 수가 2022년 말 기준 100명입니다. 2019년 90명에 비해 그리 늘지는 않았습니다. R&D 쪽 투자가 더 이뤄져 신약개발 결과를 좀 더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2022년 셀리버리가 사용한 비용을 보면 대표의 사재출연 20억 원은 2023년 경영활동을 지속하는데 다소 부족한 숫자입니다. 유무형 자산을 정리해 자금을 마련하다고 했지만 이미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매각을 한다면 2021년 인수했던 셀리버리 리빙앤헬스인데 여기는 비상장사입니다. 1991년 12월 9일에 설립되어 위생용품(물티슈)의 제조 및 판매를 하던 회사를 2021년 11월  17일자로 에스브이에이제이홀딩스(유)와 유상현으로부터 M&A 한 뒤 사명을 ㈜아진크린 → ㈜셀리버리 리빙앤헬스로 변경한지도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셀리버리 리빙앤헬스 2022년 매출액은 228억 원, -30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잇따른 상장폐지 ‘위기 주의보’ 상장사가 의견거절을 받을 경우 곧바로 주식거래 정지가 진행됩니다. 확인이 되지 않은 재무제표를 가진 회사에 대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3월 한국테크놀로지와 비덴트가 동일하게 거래정지에 처해 있습니다.

 

© DART 한국테크놀로지 2022 별도기준 손익계산서

 

㈜한국테크놀로지는 사업 개요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다양한 분야에 사업을 펼치고 있던 코스닥상장사입니다. ICT기반 스마트주차장 관련 주차센서 개발, 제조, 설치 운영, 진단키트, 살균기, 급속 전기차 충전기, 스마트 응급 통합관제시스템, 로봇청소기 등이 언급되며, 대우조선해양건설과 부동산 시행 및 건축 인테리어 사업을 역점 추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회사의 매출 규모를 보면 99.84%가 종속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번 감사 의견거절이 나온 이유는 감사범위 제한인데 종속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 역시 감사의견거절로 감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테크놀로지의 별도 기준 재무제표를 보면 2022년 매출액이 15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급감하고 영업이익조차 -70억 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장사이지만 자산 3,041억 원의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지분 11.16%를 갖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건설㈜가 2023년 2월 6일 서울회생법원의 회생개시결정을 받았습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을 이용해 전환사채와 유상증자 등의 자금조달을 하려고 했으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 DART 비덴트 2022 사업보고서

 

㈜비덴트는 방송용 모니터 및 관련 기기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으로 200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주력 제품은 고성능 HD 비디오 장비입니다. 2022년 매출액이 167억 원인데 이 회사가 유명한 이유는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사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빗썸홀딩스의 34.22%와 ㈜빗썸코리아의 10.22%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2022년 금융수익이 314억 원이고, 관계사 지분법손익으로 영업이익이 7억 원이지만 당기순이익은 2,232억 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덴트 역시 감사 의견거절로 인해 주식거래 정지 상태입니다.

외부감사인 태성회계법인은 비덴트의 내부통제를 지적하며 회사가 가진 자산과 부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특히 몇 개의 특수관계자 거래가 적절한지 확인할 수 없다는 감사의견거절 근거를 밝혔습니다. 보도된 바로는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과 관련된 횡령 사건이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감사 의견거절과 거래정지는 같은 이유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감사를 하는데 적법한 재무제표를 제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미리 알 수는 없을까? 이번 글에서는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일인 3월 말이 다가오면 상장폐지 기업 이야기가 많아지는 이유와 감사 의견거절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바이오 기업인 셀리버리의 경우는 신약 기술 개발 과정 속에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탓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경영활동 자체가 문제 있던 기업이 등장합니다. 만약 이런 회사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회사의 위기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까요?

 

© DART 뉴지랩파마 2022 사업보고서: 손익계산서

 

뻔한 답이지만 재무제표를 열심히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숫자 정보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사전에 상장폐지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손익이 안 좋을 때는 당연히 위험합니다. 매년 적자가 나는 경우에는 아무리 사업 아이템을 바꾼다고 해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재무상태표의 결손금 숫자를 보고 판단하면 좋습니다. 결손금은 당기순손실의 누적분입니다. 뉴지랩파마 역시 2022년 -1,417억 원의 결손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은 하락하고, 영업적자가 쌓이는데 자산총계 보다 커진다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동시에 현금흐름의 기말 잔고도 확인해야 합니다. 기업이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캐시(현금)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본이자 보유량 만으로도 신용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적자이고 결손이 누적되고 있더라도 영업비용만큼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말의 현금부터 줄어든다면 고민을 해야 합니다.

 

© DART 국일제지 2022 사업보고서: 현금흐름표

 

2023년 4월에도 감사 의견거절 기업이 나타났습니다. 상장폐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3월에도 예상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희망적으로 봐서일까요? 그보다는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업 내부의 정보일 수 있고, 의도적으로 숨겨진 케이스도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2~3년 동안의 재무제표 리뷰뿐만 아니라 직전 분기 보고서를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나마 탈출할 수 있을 때 빠져나와야 하니까요. 회사의 규모에 비해 과한 전환사채 발행, 빈번한 지배 구조 변경, 주가 및 거래량의 급변을 11월쯤에 목격했다면, 분기보고서를 보면서 잔인한 4월을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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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 읽는 남자
소개글
現) 회계 전문 도서 저자 ‘재무제표 읽는 남자 이승환’ 저서: 『숫자 울렁증 32세 이승환 씨는 어떻게 재무제표 읽어주는 남자가 됐을까』 / 『취준생 재무제표로 취업 뽀개기』 / 『핫한 그 회사, 진짜 잘 나갈까?』 / 『재무제표로 찾아낸 저평가 주식 53』 재무제표 읽는 남자입니다. 투자하기 위해서, 기업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챙겨 봐야 할 재무제표. 읽기만 해도 도움이 되는 재무제표 유용함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