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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한국일보

헤집은 상처 여전한데... 해발 1400m 환상 설경

<191> 정선 북평면 가리왕산 케이블카와 아라리인형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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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인 하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백두대간 설경이 펼쳐진다. 케이블카는 스키장 건설로 훼손된 가리왕산의 복원 실시설계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해발 1,381m 고지까지 20분 만에 쓩~. 눈앞에 펼쳐지는 백두대간 준령이 시리고 깨끗하다. 발품도 팔지 않고 이렇게 쉽게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니. 공기는 상쾌하고 몸은 가뿐한데 마음 한구석은 찜찜하다. 이곳을 좋은 관광지라고 소개해야 할지 여전히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강원 정선 가리왕산 이야기다. 가리왕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상봉)가 1,561m로 남한에서 9번째로 높다. 오대산 비로봉 다음이다. 엇비슷한 높이의 산들이 대부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 비해, 가리왕산은 2018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활강) 스키장 부지로 거론되기 전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람의 발길이 적은 만큼 생태환경이 뛰어난 산이었다.

논란은 현재 진행형... 관광자원으로 활용 vs 원래대로 복원

지난달 26일,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나와 정선 북평면으로 가는 59번 국도에는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오대천도 꽁꽁 얼어 수면과 계곡의 바위에 하얗게 눈이 덮였다. 단순하고 담백한 겨울 수묵화다.


목적지인 숙암리에 도착하자 2개의 대형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세워진 파크로쉬와 파인포레스트 리조트다. 계곡 양쪽이 가파른 산이고, 무채색의 겨울이라 하얀 건물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숙암리(宿岩里)는 ‘잠자는 바위’라는 뜻이다. 옛날 정선 북평에서 평창 진부로 이어지는 이 골짜기에는 몇 번이고 오대천 물길을 건너야 하는 험한 오솔길만 있었다. 주막이나 숙소가 없으니 길손들은 하천변 너른 바위에서 잠시 쉬거나 한숨 자고 다시 길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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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경기가 열린 가리왕산. 스키장은 문을 닫았지만 슬로프와 관리도로, 리프트 건설 등으로 훼손된 자국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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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입구의 현수막. 정선군은 원상복원보다 국가정원으로 조성할 것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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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스키장 시설이 들어서며 기존 마을은 바로 옆 언덕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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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하부 정류장과 파크로쉬리조트.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4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었다.

파크로쉬리조트 뒤로 돌면 ‘알파인플라자’ 건물이 보인다. 올림픽 때 선수와 대회 관계자를 실어 나르던 케이블카 정류장이다. 활강경기는 16도 이상의 급경사 슬로프에서 열린다. 스키 중에서도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경기다.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올림픽이 끝나고 가리왕산 스키장도 문을 닫았다. 애초 원상복구를 전제로 건설을 허가했기 때문에 관련 시설도 철거해야 했지만, 논란과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11월 17일 강원도와 산림청, 원주지방환경청은 ‘가리왕산 산림생태복원 실시설계용역 착수 보고회’를 열고 내년 3월까지 실시설계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한시적으로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방안도 확정돼, 지난 1월 2일부터 가리왕산 케이블카가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일단 2024년 말까지 2년간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처음부터 스키장 건설을 반대해 온 녹색연합은 이 같은 결정에 “단 3일(올림픽은 16일간 진행되지만, 활강경기는 3일간 열린다) 올림픽을 이유로 500년 된 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원상 복구하기로 한 강원도와 정선군이 스스로 약속을 내팽개쳤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지역 주민의 입장은 180도 달랐다. 박승기 정선군번영회 고문은 “케이블카 만이라도 올림픽 유산으로 남겨놔야 한다. 이것마저 없으면 정선은 올림픽과 아무 상관이 없는 도시나 마찬가지다. 국가 대사를 위해 희생을 강요해 놓고, 끝나고 나니 나 몰라라 하는 게 말이 되나? 원상 복구할 거면 사라진 동네도 그대로 복원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리조트가 들어선 자리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초등학교까지 있었지만 올림픽을 치르며 마을은 사실상 해체됐다. 10여 가구가 바로 옆 언덕으로 이주했을 뿐이다.


케이블카 하부 정류장(숙암역) 옆에는 ‘가리왕산 올림픽 국가정원’이라는 현수막이 기정사실처럼 걸려 있다. 정선군은 가리왕산을 순천만국가정원이나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처럼 국민휴양시설로 정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덕웅 정선군 문화관광해설사도 바다와 강에 하나씩 있으니, 산악형 국가정원도 하나쯤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복원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축폐기물은 또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 요즘 자꾸 지역 소멸 이야기하는데, 이거라도 있어야 일자리가 유지되고 시골에도 사람이 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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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리프트 시설을 정비해 1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가리왕산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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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을 건설하며 가리왕산 원시림도 단면을 드러냈다. 하얗게 껍질이 벗겨지는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물박달나무 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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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면 스키장 건설로 훼손된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부 정류장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산 중턱의 간이정류장에서 한 번 방향을 꺾어 정상으로 올라간다. 가리왕산은 오래전부터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상봉과 중왕봉 사이, 정선읍과 평창 진부면을 잇는 말목재(마항치)에는 조선 영조 때 것으로 추정되는 강릉부삼산봉표(江陵府蔘山封標)가 있다. 나라에서 산삼 주산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케이블카 간이정류장이 세워진 곳은 산나물을 뜯으려 올라온 지역 주민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 설경이 점점 깊어진다. 쌓인 눈이 하얗게 가렸지만 넓은 슬로프와 관리용 도로, 케이블카 자국이 산자락을 할퀸 것처럼 선명하다. 오랜 시간 다져진 땅을 단시간에 깎았으니 탈이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지난해 장마철에 배수관과 전기선이 노출되는 등 가리왕산에는 해마다 크고 작은 산사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스키장에 잘려나간 경계마다 500년 원시림의 단면도 모습을 드러냈다. 가리왕산에는 아름드리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흔하고, 자작나무와 비슷하게 껍질이 벗겨지는 거제수나무,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다릅나무도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22m 높이로 자란 초대형 사시나무, 가슴높이 지름 1m가 넘는 거대한 들메나무도 확인됐다. 스쳐가는 케이블카에서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지만, 울창했을 산림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해발 419m 하부 정류장을 출발한 케이블카는 단숨에 고도를 1,000m 가까이 높여 상류 정류장에 닿는다. 남서쪽 백운산, 청옥산에서부터 북동쪽 계방산, 오대산, 발왕산, 안반데기, 노추산까지 거칠 것 없이 장대한 산악 풍광이 펼쳐진다. 춤추듯 이어지는 산줄기마다 눈부신 설경이다. 기대했던 운무나 상고대는 보지 못했지만 고봉의 장엄한 풍광은 그대로다. 가장 가까운 상원산 중턱에는 벗밭마을이 가물거린다. 안방 창문만 열고 올림픽 구경했다는 산골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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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에서 맞은편 상원산 중턱의 벗밭마을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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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상류 정류장인 가리왕산 하봉에서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중봉과 상봉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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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주변으로 덱 산책를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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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본 가리왕산 상부 정류장 풍경. 설산의 나목이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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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하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진다.

가리왕산은 옛날 맥국의 갈왕이 피난해 성을 쌓고 머물렀다는 데서 비롯한 지명이라 전해진다. 그래서 ‘갈왕산’이라 불러야 옳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발음하기 쉽도록 가리왕산으로 고쳤고, 한자도 ‘임금 왕(王)’ 대신 ‘왕성할 왕(旺)’으로 바꿨다는 설이 있다. 모두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은 이야기다.


케이블카 탑승객 중 일부는 등산 장비를 챙겨오기도 하는데, 상부 정류장에서 연결되는 등산로는 모두 막혀 있다. 대규모 등산객으로 인한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대신 3층 높이의 정류장 건물 주변에 덱 산책로를 설치해 놓아 고산 전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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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에서 보는 중봉과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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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의 덱 산책에서 눈 덮인 상원산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최흥수 기자

2월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탑승마감 오후 4시)까지 운행한다. 토요일엔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오후 6시 30분까지, 일요일엔 해돋이를 볼 수 있도록 오전 6시 30분부터 운행한다. 편도 불가, 왕복 탑승료 1만 원이다.

‘인형의집’에는 꼭두각시놀음 고수가 산다

산이 높을수록 들이 귀하다. 정선 북평면은 북쪽의 평지라는 의미다. 면소재지는 골지천을 중심으로 북평과 남평으로 나뉜다. 정선에서 가장 넓은 들판이어서 ‘긴드루(긴 들)'로 불리기도 한다. 오대천 주변에는 좁은 들을 의미하는 ‘졸드루’도 있다. 모두 땅이 귀한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그렇다 보니 내세울 만한 관광지도 부족한 편이다. 59번 도로변에 116m 높이의 인공폭포(백석폭포)를 볼거리로 만들어 놓았고, 반대편 골짜기인 항골계곡에는 주민들이 너덜바위를 이용해 여러 기의 ‘소망의 탑’을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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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지안가든에서 본 북평면 남평 들판. 정선에서 가장 넓은 평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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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북평에서 평창 진부로 이어지는 국도변의 백석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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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면 소재지 난향로원의 남녀 성기 모형의 조형물. 마을 주민들에겐 액운을 막아주는 진지한 시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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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지대 바위로 '소망의 탑'을 세워 놓은 정선 북평면 항골계곡.

면소재지 뒤편 도로변에는 난향로원(蘭香路苑)이 있다. 난향은 난초 향이 아니라 고려시대 이 지역으로 시집왔다 철없는 행동으로 목숨을 끊게 된 새색시의 이름이다. 남녀 성기를 꼭 닮은 자연석을 배치해 음양공원이라고도 부른다. 토속적인 옛날 관광지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자못 진지한 시설이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한다면 ‘아리리 인형의집’을 추천한다. 단순히 예쁜 인형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 아니라, 꼭두각시놀음에 평생을 바친 안정의(83)씨가 운영하는 박물관이자 작업장이다. 서울인형극회에서 방송인형극으로 시작해 콩쥐팥쥐, 흥부놀부 등 전래동화와 피노키오, 알리바바 등 외국동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형극을 무대에 올린 인물이다. 극에 쓰는 인형을 직접 제작하는 인형 장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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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간 꼭두각시놀음 인형극을 이어오고 있는 안정의 아라리 인형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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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인형의집 전시관의 꼭두각시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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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인형의집에는 20여 개국의 꼭두각시 인형도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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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인형의집에 전시된 일본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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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아라리 인형의집 대표가 무대에 올릴 인형이 빼곡하게 들어찬 작업실에서 요즘 공들이고 있는 학과 거북 인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시장에는 공연에 사용했던 다양한 인형 외에 세계 20여 개국의 인형도 수두룩하다. 국제공연에 참가하며 물물교환으로 모은 귀한 물건들이다. 작업장에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인형이 한가득하다. 요즘 안 대표가 공을 들이는 작품은 학과 거북이다. 정선에 전해오는 ‘삼구팔학(三龜八鶴)’ 전설을 동화로 각색해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인형은 많고 전시실은 비좁아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건 아쉽다. 내부 정비를 거쳐 2월 중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여행 길에 잠시 쉬어갈 요량이면 나전역이 제격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정선장날(끝자리 2, 7일)에만 아리랑열차만 서는 시골역을 2020년 카페로 개조했다. 대합실 긴 의자를 그대로 사용해 소박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덕분에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드라마 '모래시계' 외에 예능과 광고도 다수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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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간이역을 개조한 나전역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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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역의 추억을 간직한 나전역 카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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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역 카페 승강장 주변에 1971년 정선선 개통 사진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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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역 카페의 감자빵과 고구마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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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 북평면 일대 여행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카페는 마을의 관광두레에서 운영한다. 커피 외에 고구마와 감자빵,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차가운 겨울날 시골 간이역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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