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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한국일보

발걸음마다 용의 전설... 눈길 돌리면 쪽빛 바다

삼척 초곡항에서 임원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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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임원항 뒷산의 수로부인헌화공원은 향가 '헌화가'와 '해가'를 토대로 조성됐다. 용을 타고 되살아 나온 수로부인 조각상이 넓고 푸른 바다를 등지고 세워져 있다.

삼척시 남쪽 해안에는 용의 전설을 품은 해변이 여럿 있다. 옛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근거가 모호하면 더더욱 난감하다. 결국 빈자리는 재담 넘치는 이야기꾼만큼이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초곡용굴촛대바위, 해신당공원, 수로부인헌화공원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와 신라시대 향가에 언급된 이야기를 모태로 꾸민 공원이다. 옛이야기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소망과 이상이 투영돼 있다. 무엇보다 시리고 푸른 동해 바다 전망이 끝내주는 곳이다.


반투명 에메랄드, 물빛 고운 초곡과 장호 바다

동해안에 푸르고 시린 물빛을 자랑하는 겨울 바다가 어디 한두 곳일까. 그중에서도 갑진년 첫 여행지로 삼척 해변을 추천하는 이유는 용의 전설을 품은 해변이 유난히 몰려 있기 때문이다. 용처럼 비상하리라는 거창한 포부도 좋지만, 소박한 일상의 소망을 다짐하는 곳으로 손색없는 곳이다.


삼척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근덕면 끄트머리에 초곡항이라는 조그마한 포구가 있다. 몇 해 전 해안가 바위 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놓이며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한 곳이다. 해상 산책로의 정식 명칭은 초곡용굴촛대바위길, 지명과 지형, 마을의 전설까지 두루 담아 이름이 길어졌다. 외지인에게 구체적으로 알리려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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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곡용굴촛대바위길 해상 산책로에서 여행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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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곡용굴촛대바위길의 상징 촛대바위. 갯바위 사이 물빛이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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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곡용굴촛대바위길 출렁다리 아래로 파도가 부서진다.

해안 절벽을 따라 연결된 탐방로는 전체 660m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갯바위와 어우러진 바다 풍광은 옹골차다. 입구에서 몇 발짝만 내디디면 절벽에서 살짝 떨어진 작은 바위 봉우리로 산책로가 연결되고 조금 더 가면 용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길은 짧은 출렁다리를 거쳐 수면에서 우뚝 솟은 촛대바위까지 이어진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푸른 물결이 갯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촛대바위와 절벽 사이에 담긴 바닷물은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탐방로 전체가 바다 전망대이자 지질 박물관이다.


태풍 피해 복구공사로 길은 중간쯤에서 끊겨 전설의 용굴까지는 갈 수 없다. 용굴 전설은 소박한 어민의 꿈을 담고 있다. 가난한 어부가 백발노인이 꿈에서 일러준 대로 바다 한가운데서 죽은 구렁이를 제사 지내 주려고 해안 절벽으로 끌고 왔는데, 되살아난 구렁이가 굴속으로 들어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내용이다. 결말은 예상대로다. 그 후부터 어부는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만선을 이뤄 부자가 됐다고 한다. 실제 용굴은 배 한 척 들어갈 만큼 제법 큰 규모이고, 주변에 흩어진 갯바위가 절경을 빚어 주민들은 일대를 ‘해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초곡항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용화해변이다. ‘용화’라는 지명 역시 용굴에서 비롯됐다. 약 1km에 이르는 한적한 백사장으로 초록 바닷물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겨울 해변에 갈매기가 무리 지어 볕을 쬐고 있다. 용화해변 남쪽 언덕을 넘으면 장호해변이다. 규모는 용화해변과 비슷한데, 해안선이 안으로 둥그스름하게 파고들어 한결 아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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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장호해변 상공을 가르는 삼척해상케이블카. 장호항은 삼척에서도 물빛이 곱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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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장호해변 상공을 가르는 삼척해상케이블카. 장호항은 삼척에서도 물빛이 곱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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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용화해변으로 초록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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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남항 투명한 바다에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그 곡선의 해변 상공으로 케이블카가 가로지른다. 삼척해상케이블카(성인 왕복 1만 원)는 수심이 얕아 반투명의 에메랄드빛을 가득 머금은 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설이다. 갯바위 사이 바다 색깔이 유난히 고운 장호항은 여름철 스노클링과 투명 카약을 즐기는 명소다. 장호항에서 다시 언덕 하나를 넘으면 갈남항, 역시 갯바위가 바다와 어우러진 소박하고 한적한 갯마을이다.

다산과 풍요, 생명의 희망 품은 전설의 바다

갈남항에서 다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약 3㎞ 내려가면 또 조그마한 포구 신남항에 닿는다. 마을 앞 해안의 절반은 포구, 절반은 모래사장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해변이 손바닥만 한데, 의외로 지역의 숨겨진 일출 명소다. 아담한 모래사장 앞에 우뚝 선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렸고, 겨울철 떠오르는 태양이 그 옆구리에 걸린다. 주변에 흩어진 갯바위로 끊임없이 파도가 부서지고, 새벽 조업에 열심인 어선 주위로 갈매기가 날갯짓한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무심히 보아 넘기던 주민들도 새해에는 이 해변에 모여 한 해 소망을 빌며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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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 사이에서 해가 떠오르는 신남해변. 주민들이 새해 해맞이를 하는 숨겨진 일출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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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항 해신당공원 입구에서 어민들이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사실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에게 일출 포인트로 소문난 곳은 포구 북쪽 해신당 바닷가다. 얕은수면 위로 무수히 솟은 거친 바위에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을 장시간 노출로 찍으면 마치 안개 낀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검붉은 하늘 위로 말간 해가 솟아오르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해신당 바닷가에서 이 장면은 공식적으로 볼 수 없다. 일대가 ‘해신당공원’으로 조성돼 있고, 공원은 오전 9시부터 입장(3,000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조그만 당집, 해신당은 국내 성(性) 숭배 신앙을 대표하는 곳으로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과 음력 시월 오일(午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냈다. 동해안의 서낭당은 남신과 여신을 구분해 따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다를 관장하는 여신에게는 풍어를, 산을 주관하는 남신에게는 풍년을 기원한다.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바닷가 마을에선 당연히 남신보다 여신이 중시된다. 신남마을에도 뒤편 산기슭에 남신을 모신 ‘큰당’과 바닷가 언덕에 여신을 모신 ‘작은당(해신당)’이 있다. 멀찍이서 서로 마주 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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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공원 초입의 향나무. 마을 주민들은 향나무로 남근을 조각해 해신당에 제를 올리며 풍어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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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마을 해신당. 풍어를 기원하며 여신을 모신 당집이다.

표를 끊고 공원으로 들어서면 해신당에서 언덕으로 연결되는 숲길을 따라 온갖 모양의 남근 조각이 배열돼 있다. 노골적인 작품(?)이 많아 지면으로 보여주기 민망한데, 이 마을의 남근 숭배는 ‘애바위’ 전설과 관련이 깊다. 마을에 결혼을 약속한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처녀는 해초를 뜯기 위해 총각이 태워 주는 배를 타고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내렸다. 총각은 곧 데리러 오겠다 약속했지만 갑자기 들이친 파도와 폭풍우에 처녀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처녀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던 바위를 주민들은 ‘애바위’라 불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주민들은 시름에 빠졌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어부가 지금의 해신당 자리에 오줌을 누었더니 그때부터 만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을에선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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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공원 앞에 다양한 군상의 갯바위가 흩어져 있다. 한때 일출사진 명소로 꼽혔지만, 오전 9시부터 공원에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일출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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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공원은 마을의 처녀, 총각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토대로 꾸몄다. 결혼을 약속한 애랑을 애타게 부르는 덕배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여행객의 눈길은 당연히 ‘19금 조형물’에 쏠리지만, 남근 이야기는 일종의 '빌드업'이고 전설의 진짜 의도는 안전한 조업과 풍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다산과 풍요라는 인류의 오래된 소망이 투영된 공원이라는 얘기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수로부인헌화공원

해신당에서 다시 10㎞를 내려오면 임원항 뒷산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향가 ‘헌화가’와 ‘해가’에 등장하는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꾸민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가다가 바닷가 절벽에 활짝 핀 철쭉에 반해 꺾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침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뜻을 받들며 읊은 노래가 4구체 향가 ‘헌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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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헌화공원은 해안 절벽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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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헌화공원 초입에서 본 임원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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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헌화공원 산책로 중간에 거북바위가 숨어 있다.

부임 행차는 계속되고 둘째 날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로 끌고 들어간다. 이번에도 한 노인이 백성들을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하고, 그의 말대로 했더니 수로부인이 용을 타고 바다에서 나왔다. 이때 백성들이 불렀다는 노래가 '해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수로를 구출한 원동력은 결국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의 마음을 모은 노인의 지혜였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다.


수로부인헌화공원도 오전 9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임원항 뒤편 절벽에 설치된 51m 높이 승강기로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면 공원 산책로로 연결된다. 대숲을 따라 쉬엄쉬엄 조금만 올라가면 해가의 결말대로 용을 타고 바다에서 살아나온 수로부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높이 10m가 넘는 대리석 조각이 주변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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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헌화공원의 상징 조각상 뒤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에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오전 9시에 공원 문을 열기 때문에 일출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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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헌화공원 능선에 오르면 푸른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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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이 수로부인헌화공원 조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수로부인 조각상에서 남화산 능선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탐방로 주변에 신라시대 복장의 석상이 도열해 있고, 꼭대기에는 남편 순정공 석상과 12지신상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로부인 조각상 뒤로 펼쳐지는 넓고 푸른 바다에 햇살이 반짝거린다. 설화의 한 장면처럼 잠시 꿈을 꾸는 듯하다.


임원항은 동해에서도 비교적 해산물이 저렴하다고 소문나 있다. 항구 주변에 좌판을 펼치고 장사하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어선을 소유한 집에서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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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새로 개장한 가곡유황온천 실내스파 유리창으로 가곡천과 주변 산세가 가득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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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유황온천의 가족족욕장.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담소를 다눌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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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남부 해안 여행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삼척 바다 여행에서 추가해야 할 곳이 생겼다. 지난해 초 임원항에서 약 25㎞ 떨어진 산골에 가곡유황온천이 문을 열었다. 살짝 유황 냄새를 풍기는 32도의 온천수는 고혈압과 피부질환 등에 효능이 있다고 자랑한다. 온천은 2층 온천탕, 3층 실내스파, 4층 야외스파로 구성된다. 겨울철에는 야외스파를 가동하지 않아 아쉽지만, 3층 실내스파에서도 대형 유리로 가곡천과 주변의 수려한 산세가 가득 담긴다. 편안하게 앉아 담소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족욕탕도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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