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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by 동아일보

야구는 ‘기록택’, 골프는 ‘장타택’…‘건강택’으로 살아가는 박용택[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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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 시절 박용택(44)은 별명이 많은 선수였다. 선수 시절 초기 쿨가이와 메트로박으로 잠시 불렸지만 이후엔 이름의 끝 글자인 ‘택’을 붙인 별명이 많았다. 불방망이를 휘두를 때는 ‘용암택’이 됐고, 찬스를 번번이 날릴 땐 ‘찬물택’이 됐다. 삭발을 했을 당시엔 ‘간디택’으로 불렸고, 골든글러브를 받을 땐 눈물을 흘려 ‘울보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식의 별명이 수없이 양산되다 보니 ‘별명택’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별명은 ‘팬덕택’이다.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그가 오랫동안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기록택’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2년 LG트윈스에 입단한 그는 202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줄곧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19시즌 동안 그는 2504개의 안타를 때렸는데 이는 역대 한국 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이다. 통산 최다 출장 기록(2237경기), 통산 최다 타석(9138타석), 통산 최다 타수(8139타수) 기록도 갖고 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연속 3할 타율도 역대 1호 기록이었고,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기록한 7년 연속 150안타도 역시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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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유일의 2500안타 타자인 박용택. 동아일보 DB

그가 이렇듯 ‘기록의 사나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했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말엽 여러 차례 잔 부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큰 부상 없이 지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이름 앞에는 ‘꾸준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는 19시즌을 뛰며 통산 타율 0.309를 기록했고 213개의 홈런과 313개의 도루를 했다. 한국 나이로 마흔이던 2018시즌에도 1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3, 15홈런, 76타점을 올렸다.


박용택은 “무엇보다 부모님께 좋은 신체를 물려받은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 박원근 씨는 엘리트 실업 농구 선수 출신이다. 대경상고와 경희대를 나와 실업농구 한국은행에서 명 가드로 활약했다. 당시로는 무척 드물게 30대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건강한 몸을 타고 난 박용택이지만 오랫동안 건강을 지켰던 그만의 비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수분 섭취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물을 많이 마셨다. 경기 전 준비운동을 할 때부터 그는 페트병을 챙겨서 나갔을 정도다. 경기 중에도, 경기 후에도, 심지어는 집에 와서도 물은 많이 마셨다. 그는 “한창 어릴 때는 몰랐는데 언제인가부터 근육이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주려 했다. 어딜 가던지 의식적으로 물을 갖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마셨다. 자기 직전까지 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물이 열량 조절이나 통증 예방 등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물을 많이 마실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박용택은 사견임을 전제로 “물을 많이 마시면 콩팥에 무리가 간다는 연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항상 물을 옆에 끼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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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즌 동안 LG 유니폼만 입으며 LG의 심장이라 불린 박용택. 동아일보 DB

또 하나 그가 꼭 지킨 것 중 하나는 바로 ‘쪽잠’이었다. 선수 시절 박용택의 매일매일 자신만의 루틴을 지켰다. 오후 6시 반에 시작되는 안방 경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는 오후 1시에 야구장에 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트레이너실로 직행해 준비를 시작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거나 마사지를 통해 충분히 몸을 푼 후 오후 3시경부터 타격 훈련을 비롯한 단체훈련을 했다. 워낙 이 같은 루틴에 충실하다 보니 후배 선수들은 그를 ‘구도택’이라 불렀다.


그리고 경기 전 꼭 30분가량 쪽잠을 잤다. “꼭 잠이 드는 게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눈을 감고 있으면 피로가 풀리고 경기 때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평상시 수면의 질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모든 고민을 내려놓으려 했다. 박용택은 “프로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경기가 있다. 자기 전에 내일은 어떤 투수를 만나서 어떤 타격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를 미리 다 생각해 놓는다. 모든 준비를 미리 끝내놓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자기 전에는 부정적인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했다. 설혹 부진한 날에는 포털 검색창 등에서 야구 소식을 아예 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인 이상 어떻게 좋은 생각만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다음 날 최고의 컨디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식으로 어떻게든 좋은 기분인 상태로 자려고 했다”고 했다.


철저한 몸 관리로 오랜 세월 동안 남부럽지 않은 선수 생활을 한 그에게도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 그는 “3년 차 때 어깨를 다쳤다. 관절와순 손상이었다. 그때 눈앞의 성적을 중시하느라 아픔을 참고 그냥 뛰었다. 타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하고 재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우투좌타인 그는 원래 어깨가 강한 외야수였다. 하지만 어깨를 다친 뒤 치료 타이밍을 놓친 뒤에는 더 이상 강한 송구를 하지 못했다. 선수 시절 중반 이후부터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선 이유다. ‘소녀 어깨’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생겼다. 올해 초 신인 선수 오리엔테이션에 강사로 나선 그는 “프로야구는 길다. 당장 오늘내일이 급하지 않다. 무조건 전진해야 할 때가 있고, 한 템포 쉬어가며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다쳤을 때 아픔을 참고 운동을 하기보다는 완전히 다 나은 뒤 완벽한 몸으로 운동을 해야 더욱 건강하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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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부터 유연성을 위해 필라테스를 해 온 박용택.

은퇴한 지 3년째. 그는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야구 해설에 대해 “천직 같다”고 했다. 박용택은 “야구 선수 생활을 할 때는 결과가 좋게 나올 때만 재미있었다. 하지만 해설을 하면서 보는 야구는 그 자체로 너무 재미있다. 좋아하는 야구를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야구 예능 프로그램 등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일단 하는 거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예능이지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배팅연습을 한다. 몸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필라테스까지 한다. 은퇴 후에도 바쁘게 살다 보니 살이 찔 겨를이 없다. 오히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하니 더 건강하다.


취미로는 골프를 가끔 즐긴다. 선수 생활 말년부터 시작해 이제는 5년차 보기 플레이어 정도 된다. 하지만 거리 하나만큼은 프로 골퍼에 뒤지지 않는다. 야구 타격은 왼손으로 했지만 골프를 오른손으로 친다는 그는 “잘 안 맞아서 그렇지 제대로 맞으면 족히 300m는 나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라운딩을 한 이승엽 두산 감독은 “박용택이 야구도 오른손으로 했으면 ‘홈런 타자’가 됐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장타택’이라는 별명도 붙었을지 모른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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