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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동아일보

“고려시대 문인들이 극찬한 하동 차 마시며 봄 향기 느껴볼까”

이두용 여행작가가 들려주는 하동 십리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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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 여행작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은 동백이다. 동백은 겨울의 끄트머리, 눈이 내릴 때도 만개하곤 한다. 뒤를 이어 봄의 전령인 매화와 산수유도 꽃을 피운다. 하지만 ‘봄꽃’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벚꽃을 먼저 떠올린다. 바람에 온기가 실려 오면 준비라도 한 듯 대한민국 전역이 연분홍 벚꽃 앓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건 봄의 벚꽃과 가을의 단풍뿐이다. 벚꽃 소식이 들리면 상춘객들은 명소를 찾아 떠난다.

벚꽃 비 쏟아지는 눈부신 사랑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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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하동의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6㎞ 구간에 매년 봄 십리를 잇는 동화 속 꽃물결이 펼쳐진다. 이두용 여행작가 제공

따뜻한 바람이 볼에 와 닿으면 벚꽃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나라 벚꽃은 3월 중순 제주도에서 출발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며칠 늦는다는 예보다. 벚꽃이 육지에 닿으면 순식간에 꽃물결이 전국으로 번진다. 국내에는 벚꽃 명소가 많다. 제주, 진해는 물론 부산, 경주와 창원, 울산, 하동에 서울까지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가수 조영남의 유일한 히트곡인 ‘화개장터’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르는 화개장터’. 정확하게도 화개장터를 시작으로 겨우내 언 가슴을 녹이는 하동의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6㎞ 구간에 매년 봄 십 리를 잇는 동화 속 꽃물결이 펼쳐지는데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다.


벚나무가 켜켜이 가지를 맞대 긴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여느 벚꽃 군락으로 보이지만 차를 타고 이 터널로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레 ‘와!’ 하고 탄성이 나온다. 이런 길이 십 리나 이어지니 정신을 뺏기지 않을 장사가 없다. 하동은 십리벚꽃길을 중심으로 봄이면 섬진강 주변과 차밭 곳곳에 벚꽃 군락이 형성돼 말 그대로 지천이 벚꽃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리벚꽃길은 혼례길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비 내리는 시기에 남녀가 이곳을 거닐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 이유에서인지 봄엔 이곳을 찾는 커플이 많다. 살랑이는 따뜻한 바람과 눈부신 벚꽃의 향연을 마주하면 없던 사랑도 생겨날 것 같다.


올봄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화개장터벚꽃축제’도 열린다.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단 3일이니 날짜만 맞는다면 이때 찾는 게 좋다.

1200년 역사의 대한민국 차(茶) 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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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차밭

우리나라 차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있는데 최초는 하동이다. 무려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를 다녀온 대렴공이 차의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 선덕여왕 때부터 차가 존재했지만 흥덕왕에 이르러 성하였다’라는 내용이다. 실제 전해지는 내용에도 선덕여왕(632∼647) 시기에 이미 차가 있었고 흥덕왕(826∼836) 때엔 즐겨 마셨다고 한다.


하동은 고려시대인 13세기 전반에 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엔 국내를 넘어 중국에 전했을 만큼 최고의 차 생산지로 손꼽혔다. 당대의 문인들이 시를 통해 앞다퉈 하동의 차를 칭찬하기도 했다.


하동은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차 생산 시기엔 일교차가 커서 좋은 차를 키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주로 섬진강과 지류인 화개천 일대에서 재배하는데 보성이나 제주 등 다른 차 명소와 비교해도 성분이나 맛, 품질이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보통 차는 자체의 품질도 있지만 따는 시기와 덖거나 발효하는 시간, 방법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는데 하동은 예전부터 이어진 자체의 ‘덖음’ 기술을 활용해 타 지역과 차별화를 두었다.


굽이진 섬진강 따라 이어진 십리벚꽃길 맞은편에 언덕마다 파릇파릇한 차밭을 조망할 수 있어 벚꽃과 함께 봄의 향기를 흠뻑 느끼기에 좋다. 따뜻하고 향 가득한 차 한 잔은 여행의 마무리로 최고.


5월엔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도 열린다. 차에 자부심 강한 하동에서 작정하고 준비한 행사다. 5월 4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데 크고 작은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호랑이가 안내한 곳에 절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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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하동 십리벚꽃길을 따르다 보면 연분홍 황홀경의 끄트머리에 절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쌍계사(雙磎寺)다. 십리벚꽃길이라는 이름 이전까지는 쌍계사 벚꽃길이라고 부를 만큼 사찰이 이곳의 중심 역할을 했다.


쌍계사는 역사도 깊은데 신라 성덕왕 23년(714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와 삼법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삼법이 선종의 6대조인 혜능 스님의 정상(頂相, 머리)을 가지고 귀국했다. 정상 모실 곳을 찾던 중 꿈에서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 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오늘의 하동을 찾아왔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자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고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에 도착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쌍계사에는 오랜 역사에 걸맞게 국보인 ‘진감국사 대공 탑비’를 비롯해 대웅전 건물과 부도, 삼세불탱, 동종 등 보물 9점을 보유하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순식간에 시끄러운 속세와 단절된 기분이 든다. 벚꽃을 끌어안고 십 리를 달려온 봄바람도 사찰에 다다르면 대웅전 마당에 고요히 머물다 떠난다. 고요하다.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없이 좋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구층 석탑이 눈에 띈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와 전단 나무 불상 1존을 모시고 그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신자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쌍계사는 하동의 차(茶)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데 근처에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 ‘해동다성진감선사추앙비’ ‘차시배지(茶始培地)’ 등의 기념비가 있다. 최초 하동에 차를 가져온 것도, 키우고 마시기 시작한 것도 쌍계사의 시작과 관련이 있고 스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하동의 명소가 인연의 고리로 연결된 것 같아 재밌다.

뽀얀 국물에 영양 가득한 봄 제철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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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첩국

하동에 와서 재첩국을 안 먹고 가면 서운하다. 민물조개인 재첩은 경상도 섬진강 쪽과 전남 구례 화엄사 부근 섬진강 쪽에서 나는데 그 중심 격인 하동이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은 강에서 나는 조개라는 뜻으로 ‘갱조개’라고 부르는데 오염된 물에서는 살지 못하는 특성상 유기농에 가깝다.


재첩국은 요리도 쉽다. 재첩과 깨끗한 물, 파와 부추만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서 끓이면 끝이다. 뽀얀 국물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다’라고 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만 아는 정서인데 재첩국이 딱 그 맛이다. 크기는 바지락보다 10배 정도 작지만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아 숙취에 좋고 바지락이나 다른 조개에 비해 영양가도 몇 배나 높다고 한다. 예전엔 ‘조개의 보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소 심심한 맛이지만 하동의 명물이니 여독을 풀며 한 그릇 뚝딱 하면 포만감에 기분까지 좋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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