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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시티라이프

비대면, But 혼자가 아니야 길고 긴 남한산성 한 바퀴 걷기

코로나 세상에 남한산성을 찾은 것은 집과 가깝다는 점, 그리고 찾는 사람이 만만치 않게 많은데 비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이 널찍한 곳이라는 점도 큰 이유다. 성곽길 복원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사업을 하면서 성곽길은 넓고 편평하게 정리되었고, 성곽에 바짝 붙은 길과 그 언저리 숲길, 구불구불 산길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서 낯선 사람과 가까이 마주칠 일이 없다. 약 12.4km에 달하는 전 구간을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휴식과 문화재 관찰을 포함, 약 4시간 정도로 운동에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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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동문, 남한산성 안내도(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제공), 행궁은 현재 닫혀 있다.

Info 남한산성 공식 탐방로

1코스

산성리 산성로터리에서 출발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로터리(0.7km) ☞ 3.8km, 1시간20분


2코스

산성로터리 – 영월정(0.4km) – 숭렬전(0.2km) – 서문(0.7km) – 수어장대(0.6km) – 산성로터리(0.9km) ☞ 2.9km, 1시간


3코스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산성로터리 근처)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동문(1.0km) –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5.7 km, 2시간


4코스

산성로터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로터리(0.6km) ☞ 3.8km, 1시간20분


5코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7.7km, 3시간20분

남한산성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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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니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2020년은 왜 이렇게 수난의 연속일까! 길어지는 코로나에, 장마에, 시끄러운 세상에. 그러나 인간의 외출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다. 원래 벌판과 강가와 숲이 사람의 본향이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집안은 안온함과 함께 답답함도 공존하는 곳이 아니던가. 구름이 사라지고 모처럼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즈음, 그러나 코로나는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보면 사람들 모습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 시국엔 가급적 넓고, 숲이나 계곡, 바닷가 등 사람들 모두가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찾는 게 좋은 방법이다. 남한산성 산성길이 그런 곳이다.


남한산성의 중심지이자 여행의 출발지점은 주소지로 지정된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일대이다. 이곳이 대중교통 버스의 종점이자 승용차를 위한 공영주차장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물론 밥집, 찻집, 닭집, 고깃집 등 먹거리 타운도 이곳에 집중해서 문을 열어놓고 있다.


로터리 근처에 주차를 한 뒤 행궁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코로나 이후 굳게 닫힌 한남루 뒤로 보이는 행궁 전각의 모습을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며 한가한 언덕을 천천히 오른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의 여러 행궁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다. 다른 행궁에는 없는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곧 남한산성 행궁이 단순히 왕의 행차를 대비한 시설이 아닌,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피난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평성대를 맞았던 정조 시대를 상징하는 화성 행궁이 정조의 효행과 즐거운 왕실 여행을 의미했다면, 종묘 사직을 설치한 남한산성, 외규장각을 운영한 강화도 등의 행궁은 ‘만약을 대비한 궁궐’로 준비되었던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의 굴욕이 국가와 백성의 가슴을 후벼 팠던 병자호란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으로 이동할 때 사용되며 행궁의 역할을 꾸준히 해 왔다. 그러나 이 역사의 현장 역시 일제에 의해 조롱과 훼손을 당했다. 좌승당을 경안리로 통째로 옮겨 경찰서로 이용했고 다른 시설들 역시 문화재는커녕 유산으로도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훼손했다. ‘좌승당’이 ‘앉아서도 승리한다’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건만, 주저앉은 채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능멸당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뒷목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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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 안 이성정

돌이켜 보면 조선 시대 때 이보다 더 참혹했던 행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단단히 맘 먹고 쳐들어 온 청나라의 군대가 산성을 포위하고 있고, 경복궁에서 곳곳에 포진해 있는 청군을 피해 거리를 방황하다 남한산성 행궁으로 이전한 왕실, 그리고 대소신료들은 청나라와 싸울 것이냐 항복할 것이냐를 두고 격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그것도 딱한 일이었지만, 당시 행궁 근처에 살던 민초들의 수난은 전쟁 이상이었다. 왕이 우리 동네에 긴 세월을 머문다는 게 뭐 그래 영광스러운 일이겠는가. 먹을 것 입을 것 갖다 바치고 툭하면 왕실을 위한 노역에 끌려갔을 터, 그들은 어서 왕이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되길 기도했을 것이다. 산성리 사람들만 고통받은 게 아니다. 남한산성에 ‘피난’ 온 왕을 보호하라는 명을 받은 전국의 군사들은 남한산성에 도달하기도 전에 매복해 있던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멸되고 만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것 또한 군사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근왕군 지휘소는 서로 연락도 주고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산성을 향하다 맥없이 몰살당한 것이다.


과거 역사 속 이러한 심란함은 숲길로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사라진다. 땀 흘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역사와 세상 일은 마음에서 사라지고 오직 나에게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헛헛 구원의 웃음을 되찾게 된다.

등산로가 많은 남한한성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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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보전이 잘 되어 있는 남한산성 성곽길

남한산성에는 공식적인 탐방로가 다섯 곳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나만의 루트 조합’은 헤아릴 수 없이 다채롭다. 오늘의 탐방은 산성로터리에서 가까운 행궁을 지나 수어장대로 향하는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올라, 딴눈 팔지 않고 오직 성곽길를 걷고 또 걸어 남한산성을 한 바퀴 다 돌고 북문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다섯 곳의 개별 코스들은 난이도, 시간 면에서 어렵지 않은 편이지만, 한 바퀴를 전부 돈다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복원이 되었다 해도 가파름과 거친 면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에 따른 소요 시간도 4시간 이상 걸린다. 거기에 가끔이나마 만나게 되는 오래된 사찰에 들려 산책과 기원이라도 하게 되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 버릴 정도다. 요즘 부쩍 행궁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코로나 이후 행궁 출입을 폐쇄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산책 겸 괜히 서성이는 사람, 모르고 왔다 당황해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행궁 근처 너른 뜨락을 산책하거나 앉아서 편안한 시간들 보내곤 한다. 탐방객들은 행궁 근처 뜰에서 놀다 돌아가거나 2코스를 올라 산성길에 접어들기도 한다.


행궁 옆에서 보이는 소나무숲 풍경이 아름답다. 남한산은 소나무 군락 가치가 높은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오직 산성리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남한산성 일대의 소나무는 조선시대 때부터 규모와 식생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일제 때 전쟁 물자와 땔감용으로 대책 없는 벌목이 이뤄져 금세 황폐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것을 산성리 사람들이 ‘금림조합’을 만들고 주민들의 벌목은 물론 일제의 목재 수탈을 견제함으로써 오늘의 예쁜 소나무 숲을 우리가 보고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탐방로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산길은 가파르고 길다. 금세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내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널찍한 탐방로에서 마주치는 여행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산길은 말 그대로 산에 금 하나 그어놓은 선이다. 위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다. 걷는 사람의 모습은 한 점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한 점이 거대한 숲이 쏴주는 맑은 기운을 마시며 거대한 숲을 스멀스멀 걸어가는 것이다. 탐방로를 걷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공간이 꽤 넓다고 느끼겠지만, 숲의 눈으로 볼 때 그 사람은 거대한 허파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30여 분을 걷자 성곽길이 나온다. 수어장대도 그 성곽길에서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해 남한산성 안에 지은 다섯 곳의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남한산성은 남한산 일대의 산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크고 작은 곁 산들도 산성의 주요 지역으로 속해있다. 수어장대가 있는 곳은 해발 482m의 청량산 정상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여행 중 꼭 들려서 쉬어가게 되는 곳인데, 지금은 문화재 보수 중이라 들어갈 수 없는 상태다.

등산객들의 휴식 공간이 되는 병영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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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은 성곽과 성곽길과 인근 숲길, 숲 공간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공식 탐방로, 곳곳에 있는 사찰과 연결되는 오솔길 등이 펼쳐진다. 남한산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너비와 폭 등이 정비된 부분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조선 시대 때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길이 그렇다. 도시계획에 의해 완전히 엎어버리는 게 아닌 한 조선, 더 이전의 삼국시대 때부터 조성된 길의 형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남한산성도 마찬가지이다. 성곽길은 대부분 구간이 쾌적하다. 조선 시대 때, 특히 병자호란 때는 넓은 길과 숲은 병사들이 걷고 대기하는 공간이었겠지만, 지금 그곳에는 여행자들이 걷고 쉬는 곳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숲에 조성된 휴식 공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다.


산성리 로터리나 송파, 위례 등 인구 밀집지역에서 접근이 쉽고, 적당한 등산과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는 남문, 서문, 북문 일대가 비교적 쾌적한 편이다. 탐방로가 기본적으로 왕복 2차선 정도로 널찍한 편이고 곳곳에 벤치도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손도손 조용히 숲을 만끽하기 좋은 곳들이 적당히 분산되어 있다. 곳곳에 화장실도 있어서 방문객의 편의를 돕는다. 화장실 관련 사용 팁 하나가 있다면, 남한산성 산성 구간에 있는 화장실들은 대개가 물을 사용하지 않는 특수한 방식이고, 손 씻을 물조차 공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남한산성에 갈 때는 꼭 휴대용 손소독기를 지참하는 게 위생상 좋다. 물론 로터리 근처 주차장 등의 화장실에서는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남한산성 북문인 전승문 근처를 지나면 성곽길은 급격히 한가해진다. 길도 좁아지고 숲 공간도 찾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도 또한 이전의 코스와는 달라진다. 이런 굴곡은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까지 이어진다. 이 코스가 비교적 험악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산세의 영향이다. 그런데 이 코스 동장대 근처 암문에서 연결되는 벌봉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벌봉은 남한산 옆 검단산의 봉우리이다. 해발 500m로 이곳에 서면 해발 400~450m 정도의 남한산성 성곽과 성 안이 내려다 보인다. 지금은 벌봉에 올라가 남한산성의 ‘뷰’를 즐길 수 있는 전망 포인트(숲이 우거져 잘 보이진 않는다)로 사랑받고 있지만, 병자호란 때는 조선군과 청군이 서로 이 봉우리를 차지하려고 전투깨나 벌였고, 결국 청나라에게 벌봉을 빼앗긴 뒤로 전세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난 이후 숙종 때 ‘벌봉의 중요성’을 근거로 남한산성의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 등을 쌓았지만, 이미 배는 떠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남한산성 성곽길 가운데 동장대터에서 장경사를 지나 남한산성 좌익문(동문)을 거쳐 지화문(남문)을 향하는 길이 제일 힘들었다. 걷기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가파른 길이 많았던 탓이다.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 북문까지 이르는 성곽길이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는 그늘길이라면, 북문 언저리에서 동문, 그리고 남문까지 가는 길은 본격 등산길이라 할 수 있다. 숲 속 쉴 공간이 드물어 탐방 시간에 따라 그늘길이 아닌 땡볕을 걷기도 한다. 남한산성을 등산 삼아 찾는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봉암성과 벌봉을 찾는 것도 이런 지형적 특징을 즐기기 위해서다.

남한산성에 남아있는 승영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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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사찰 장경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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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차의 만트라, 돌리면 지혜를 얻는다는 마니차

‘남한산성 학술심포지엄’(2011년)에서 경기도 문화재위원 이경미 님은 “조선 시대 때 승영(승군의 병영)으로 운영되던 남한산성 내 사찰은 10곳이었으며, 그때 그 위치에 지금도 존재하는 사찰은 동문에서 가까운 ‘장경사’가 유일하다”고 했다. 또한 망월사, 국청사, 개원사 등은 위치를 조금 옮겨 지금까지 사찰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장경사에 들렸다. 오늘까지 포함해서 서너 번 찾은 곳이다. 조선 인조 2년, 신라 문무왕 때 ‘주장성’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남한산성이 대대적인 보강 공사에 들어간다. 전국에서 징발된 백성 가운데에는 승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경사는 그렇게 남한산성 보수 공사에 교대로 동원된 전국의 승려들이 먹고 자고 머무는 공간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1638년 인조 16년 때의 일이다. 장경사는 계곡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곽길을 걷다 만날 수도 있지만 동문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도 되는데,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대웅전이 있지만, 사실 장경사의 역사를 이어온 건축물은 마당에 ‘장경사’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소박한 민가 스타일의 집이다. 장경사의 창건 이야기를 알고 이 건축물을 보면, 인조 당시 전국에서 찾아온 스님들이 이곳에 머물며 기도하고, 수행하며, 또한 남한산성 보수와 때론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릴 수 있다. 실제로 이 건물만이 장경사의 창건 당시 모습을 간직할 뿐, 대웅전은 1975년 화재로 전소되어 새로 지었고, 범종각 역시 현대에 건축했다. 장경사에는 독특한 시설이 하나 있다. 대웅전 옆 마당에 있는 ‘마니차’가 그것. 티벳어인 마니차는 한글로는 ‘공통’이라 부르는데, 원통형 표면에 만트라(진리, 진언)가 새겨져 있다. 한가할 땐 원통을 돌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도 좋고, 불자가 많을 땐 그냥 천천히 돌리며 걸어도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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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본영사찰로 창건되었던 개원사. 넓고 가깝고 깊은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남한산성에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온 승영사찰로 장경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망월사, 우익문 아래의 국청사,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에서 4코스로 연결되는 개원사 등이 있다. 남한산성 망월사는 10대 승영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찰로 원래 망월암이 있던 자리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예전의 가람들은 일제 때 파괴되어 사라졌으나 그 후 복원 과정을 거쳤다. 대웅보전 옆 13층 석탑이 웅장한데, 인도의 인디라 간디 전 수상에게 받아 온 진신 사리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 코끼리 등 인도풍 조각들이 눈에 띄는 이유과 관련 있다. 언덕이 가파르지만 조용한 시간과 기도, 탑돌이 하기에 좋은 사찰이다. 국청사는 인조 3년 1642년에 각성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국난 극복을 위한 사찰이니 만큼 시련도 깊어 스님들은 물론 사찰 또한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일제 때 불에 타 전소되었던 것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산성의 승영사찰들이 거의 다 전소되었던 것은 일제 시대 때 남한산성 곳곳에 있던 무기와 탄약 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만행의 결과이기도 했다. 무기야 치안을 위해 수거한다 해도, 사찰을 방화할 것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개원사 역시 비슷한 이유로 폐사되었던 것을 복원한 사찰이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약도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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