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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그리운 이태석 신부님! 저 한국에서 의사 됐어요"

20년전 이태석 신부 따르던 꼬마 남수단 청년 존 마옌 루벤

"꼭 의사 돼 신부님 뜻 잇겠다"며 유학 11년만에 국가시험 합격

"고국 돌아가 의료 활동 펼칠 것"


"신부님, 보고 계시나요? 저 신부님과의 약속 기어이 지켜냈습니다."


29일 인제대 부산캠퍼스에서 만난 존 마옌 루벤(33)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최근 제84회 의사 국가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부님이 살아계셔서 이 모습을 직접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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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존 마옌 루벤이 인제대 부산캠퍼스 내 고 이태석 신부의 흉상 앞에서 의사 가운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신부님이 살아계셨으면 '내가 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했을 것 같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아프리카 남수단 출신의 존이 한국에서 의사가 되도록 이끈 건 이태석(1962 ~2010) 신부다. 이 신부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톤즈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의료·교육 봉사를 했다. 이후 대장암 투병을 하다 선종했다.


두 사람은 이 신부가 톤즈를 최초로 방문했던 1999년 처음 만났다. 2001년 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톤즈에 선교사로 온 이후엔 존이 복사(미사에서 사제를 돕는 사람)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 신부로부터 기타를 배워 5년간 함께 밴드 활동도 했다. 존은 "신부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집 없고 가난한 그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고 전기를 들어오게 할 정도로 추진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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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옌 루벤이 2009년 암 투병 중이던 이태석(왼쪽) 신부를 찾아 함께한 모습. /존 마옌 루벤 제공

그런 이태석 신부를 존은 '수단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수단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걸 납득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독한 내전과 가난에 우리끼리도 서로 돕기 힘들어 다 같이 죽어가는 상황이었다"며 "저 먼 한국에서 와서 우리와 똑같이 먹고 생활하면서 그런 훌륭한 일을 하시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존은 이태석 신부를 만나기 전부터 의사를 꿈꿨다. 이웃들이 감기 같은 사소한 질환에도 치료해줄 의사가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우리나라에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려 했어요. 그런데 신부님을 만나고 꿈이 커진 거죠. 한국에서 훨씬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신부님의 권유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2009년 한국에 유학 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2012년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에 진학했다. 인제대에서 학비를 지원했고, 이 신부가 세운 수단어린이장학회가 생활에 도움을 줬다.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존은 "의사소통의 한계, 흑인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한국 생활 적응에 애를 먹었다"며 "그럴 때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연연하지 말라'는 신부님의 조언을 되새기며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존은 재수 끝에 의사 시험에 합격했다. 작년 시험에서는 실기시험에 붙고도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대로 고향에 가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꼭 의사가 돼 신부님의 뒤를 잇겠다'고 했던 이태석 신부와의 약속이 거짓말이 되면 안 된다는 각오로 더 치열하게 노력했고,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인 올해 당당히 합격했다.


3월부터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존은 수련의(醫) 생활을 마치면 남수단으로 돌아가 그곳 주민을 돕는 의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물론이고, 남수단에서 의대 교수가 돼 후배 의사를 양성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꿈입니다. 제2의 이태석이 되려면 신부님처럼 꿈을 크게 꿔야죠."


[부산=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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