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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연경 언니 있기에… 한국 여자배구는 두려울 게 없다

- 비전의 김연경 : 고교 때부터 "올림픽 우승 목표"… 女배구 위상·연봉 등 변화 이끌어

- 헌신의 김연굥 : 월드스타면서 대표팀 경기 개근 "대표팀이 잘 돼야 V리그도 성장"

- 긍정의 김연경 : 복근 찢어져 진통제 맞으면서도 후배들 웃게하는 '스마일 캡틴'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이 2020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려고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보낸 아흐레는 전쟁이었다. 주최국 태국은 서울에서 비행기와 버스로 12시간 넘게 걸리는 나콘라차시마에 진지를 세웠다. 가는 길은 험했고, 선수들 몸은 상이군인처럼 너덜너덜했다. 오직 우승팀만 올림픽에 간다는 압박까지 있었지만 한국 선수단은 담대했다. 김연경(32· 터키 엑자시바시)이 함께한 까닭이다.

스마일 캡틴 김연경

'연경 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불렸다. 선수들은 물론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과 코치진, 통역, 트레이너, 팀 닥터, 호텔 직원, 현지 가이드, 태국 경찰, 버스 기사, 취재진 등 나콘라차시마 땅에 있는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키 192㎝ 김연경은 한 번도 찡그리지 않고 이 모든 부름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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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만난 김연경. /양지혜 기자

방콕에서 나콘라차시마로 버스 4시간을 달릴 때, 긴장으로 굳은 선수단을 웃기려고 김연경이 나섰다. 터키에서 온 그는 띠동갑 후배 이주아에게 '펭수'가 뭔지 등을 물으며 수다를 열어젖혔고, 라바리니 감독을 "뚱뚱하다"고 놀려 웃음 폭탄을 안겼다. 대회 기간 김연경과 한 방을 쓴 이다영은 "개그우먼 같은 언니 덕분에 긴장을 풀고 뛰었다"고 고마워했다.


김연경은 대회 조별리그 도중 복근이 4㎝가량 찢어졌다. 복부가 칼에 찔린 것처럼 깊은 내상이다. 그는 태국과 결승전 날 진통제에 마취제까지 맞고 나와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2득점을 꽂았다. 초·중·고교 동창 김수지는 "숨만 쉬어도 아플 텐데…"라고 말을 못 이었다. 오지영은 "연경 언니가 복근이 찢어졌는데도 웃길 생각부터 해서 '제발 언니 감정에 충실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고교 후배 표승주는 "혼자 너무 많은 책임감을 짊어져 안쓰러운데 언니는 늘 웃는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확고한 태극마크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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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김연경의 꿈은 항상 명확했고, 착실히 이뤄나갔다. 그는 여고생 시절 인터뷰에서 "여자 배구를 중흥시키고, 올림픽 우승도 하겠다"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그 시절 여자배구는 남자부 번외 경기 대접을 받았다.


"예전엔 다들 대표팀에 안 오려고 했어요. 힘들고 부상만 당하니까요. 그런데 연경 언니는 달랐어요. '대표팀이 잘해야 여자배구가 잘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라고요. 훨씬 바쁜 언니가 대표팀에 꼭 오니 후배들이 안 올 수 없죠. 언니가 총대 메고 협회 시스템도 지적해서 바꿔나갔고요. 어린 나이부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요. 그러니까 김연경인 거겠죠." 양효진의 말이다.


2012 런던 올림픽 4강 멤버이자 대표팀 최고참인 한송이와 김해란도 '김연경 전후'가 다르다고 설명한다. 둘은 "연경이가 월드 스타이면서 대표팀에도 헌신해준 덕분에 여자배구의 인기나 위상, 연봉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그런 연경이가 원하는 올림픽 메달 꿈을 꼭 이뤄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환성 대표팀 닥터는 "17년째 대표팀 일을 했지만 한국 배구는 김연경의 등장으로 차원이 달라졌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은 한국의 보물"이라고 평했다.

"연경 언니와 꼭 올림픽 메달을"

김연경 이름 석 자는 고행을 감수케 하는 원동력이다. 대표팀은 지난 5일 이코노미석 여행객 틈바구니에 섞여 태국으로 떠났다. 대한배구협회는 타이항공 단체 티켓을 끊었다. 허리와 아킬레스건이 아팠던 이재영도 예외가 없었고, 강소휘는 골프 치러 가는 여든 살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라바리니 감독은 올림픽 티켓을 딴 금의환향 귀국길에서도 이코노미석에 앉아 태블릿PC로 대표팀 전력 분석을 했다. 태국 현지 버스도 유치원 차량처럼 좌석이 좁아 선수들이 신음했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던 김희진은 도착 이튿날 연습 때 다리 근육 이상을 느끼고선 눈물을 흘렸다. 김희진은 매일 새벽까지 고주파 마사지를 받았고, 그를 잠 안자고 돌봤던 송혜련 트레이너는 대회 마지막 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승부욕 1등' 이재영도 결승전 날 오전에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울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그런 선수들이 매일 오전 8시부터 볼 연습과 본 경기, 저녁 비디오 분석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견뎠다. 모두의 가슴에 "연경 언니와 올림픽 메달을 꼭 따고 싶다"는 확실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18일 아침 터키로 떠났다. 모처럼 푹 잤다는 김연경의 얼굴은 태국에서보다 더 핼쑥했다. 그는 "앞으로 최대 6주를 치료에 전념해야 할 텐데, 제가 소속팀에서도 주장이라 책임감을 느낀다"며 "도쿄 올림픽까지 더 강해져서 돌아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연경의 번호는 10번. 축구 천재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와 같다. 대표팀 우승 복 없기로 유명한 메시도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축구 금메달을 땄다. 세계 여자 배구계의 메시이자 그 이상인 김연경이 올여름 도쿄 하늘 아래서 메달을 깨물고 환하게 웃기를 응원한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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