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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채 지은 비결

오승현·박혜선 서가건축사사무소 소장 “디자인이 압도하는 집은 피해야”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

서가건축사사무소의 오승현(왼쪽) 소장과 박혜선 소장. 둘은 부부 건축가다. /이상빈 기자

통상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지으려면 대지가 50평(165㎡) 이상은 필요하다고 한다. 건물 바닥 면적이 30평(99㎡) 정도 나오는데 이보다 작은 경우 벽과 계단 넣으면 제대로 된 집 하나 나오기 어렵다.


올해 신진건축사상 최우수상을 받은 오승현·박혜선 서가건축사사무소 소장은 ‘공간의 마법’을 부렸다. 단독주택이나 지을 법한 땅에 지상 5층짜리 출판사 사옥 ‘칠월’을 지었다. 사무실(2층 규모)과 집 두 채, 행사 공간까지 갖췄다. 엘리베이터도 있다. 여기에 각 공간으로 향하는 출입구가 다르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심사단은 ‘단독주택 짓기도 빠듯한 땅에 갖출 것 다 갖춘 사옥을 지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대한건축사협회가 주관하는 신진건축사상은 만 45세 이하 젊은 건축사가 설계한 작품 중 준공한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땅집고는 오승현·박혜선 소장을 만나 공간의 마법을 가능하게 한 그들의 건축 노하우를 들어봤다.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

2018년 신진건축사상 최우수상을 받은 서가건축사사무소의 '칠월'. /ⓒ신경섭

-‘칠월’이란 건물은 어떻게 탄생했나.


<박혜선>“서울 은평구 대조동에는 1980년대 지은 집이 많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건축주가 건물에 애착이 있었다. 집과 회사가 함께 있길 바랐다. 165㎡(50평) 남짓한 땅에 건폐율은 60% 정도여서 층당 면적이 30평쯤 나왔다.


제한된 볼륨 안에 필요한 내용을 치밀하게 넣는 전략이 필요했다. 대가 집은 출입구 1개와 계단이 있는데, 대조동 사옥은 출입구 세 개에 엘리베이터를 갖췄다. 출입구는 고층부로 가는 주거 직행 출입구와 2층 출판사(2~3층) 출입구, 지하공간 출입구 등이다.


계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건물 전체를 위한 계단을 따로 두지 않았다. 각 층별로 내부에서 움직이는 동선(動線)만 짰다. 계단 공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공간 활용을 위해 가구도 직접 맞췄다. 책장과 책상, 신발장, 컴퓨터 받침대도 직접 짰다.”


-건물 짓기 전에 건축주와 대화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오승현> “그렇다. 그런 대화가 비법이다. 우리 주택이든 사무실이든 일단 방문한다. 살고 일하는 방식을 엿본다. 집은 가전 제품이나 가구 배치, 쓰는 물건을 눈여겨본다. 사무실은 인력과 가구 배치를 살펴본다.”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

좁은 대지에 사무실, 집, 행사 공간 등을 모두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박혜선 소장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가구도 직접 맞춤 제작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칠월' 내부. /ⓒstudio texture on texture

<박혜선>“건축주와 대화할 때 구체적인 수치나 항목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주길 요구한다. 최대한 상상력을 펼쳐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들을 다 듣는다. 그리고 건축적인 제약을 설명한다.


‘칠월’은 대화를 나누면서 건축주가 집 같은 사무실을 원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사무실은 가족과 함께 일하는 공간이면서 신발을 벗고 바닥 난방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식사도 모두 안에서 했다. 사무실보다 집에 가까웠다. 그런 점을 감안하다보니 ‘칠월’ 같은 건물을 지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같다.


결국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령 극도로 정리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집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건축주도 있지만 집에 무언가 없으면 불안해진다는 이들도 있다.”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


<오승현>“집은 쇼룸이 아니라는 말에 공감한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집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눈은 혹하는데 디자인만 고려한 것 같은 집이 간혹 눈에 띈다. 디자인이 사는 이들을 압도할 정도로 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의외로 놓치는 것 중 하나는 수납이다. 옛날 집을 보면 수납 공간이 부족해 겨울에 선풍기가 나와 있고, 여름에도 난로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청소 물품은 현관 근처에, 계절 물품은 생활 외 공간에 각각 빼놓으려고 한다.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

서가건축을 대중에게 알린 인천 남동구 구월동 다가구주택 'ANNE House'. '2016 인천광역시 건축상' 준공건축물 주거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노경

<박혜선>“집은 생활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개인과 가족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야 말로 좋은 집을 짓는 방법이다. 밖에서 건물이 어떻게 보이느냐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주자들에겐 내부에서 창을 통해 외부를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적절한 크기의 창과 건물 요소의 균형, 비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조명과 채광도 좋은 집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앞으로 도시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오승현>“도시에 감성이 더 담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사라지면 허상 아닐까.”

집짓기도 벅찬 땅에 5층 사옥+집 2

두 부부는 존경하는 건축가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Siza)를 꼽았다. 박혜선 소장은 "건축가가 나이 들면 스펙트럼이 좁아지는데, 시자가 한 작업을 보면 굉장히 넓다. 소셜하우징부터 빈민하우징, 미술관, 고급주택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시자의 사회주택. /핀터레스트

<박혜선>“최근 공상과학물을 보면 미래를 말하면서도 배경과 공간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걸 볼 수 있다. 미래에도 도시나 공간은 더 보수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너무 화려하고 미래적인 설정은 허구처럼 느껴진다. 가장 편한 집은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말처럼 어렸을 때 편했던 집이 가장 좋은 집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획은.


<오승현>“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동네’의 맥락에서 건축을 하고 싶다. 건축에 대한 인식은 큰 건물도, 공공 건축물도 아닌 동네 건물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일반인이 경험하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험이 결국 건축을 바꾸고 동네 문화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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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부가 최근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충남 홍성의 '엄찬고택'. 오승현 소장은 "현대 건축물의 평면으로 써도 괜찮을 정도로 설계가 잘 돼있다"고 말했다. /뉴스1

<박혜선>“건축가는 시각이 넓어야 공간에 대응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작품의 다양성은 생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 주거 건물 위주로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분야를 넓히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5년 간은 다른 축들을 만들고 싶다. 상가나 플래그십 스토어, 창고 리노베이션 공모전도 참여하고 있다. 내년엔 더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싶다.”


[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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