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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조선일보

신호등의 파란불은 왜 초록색일까

[아무튼, 주말]

[서민아의 물리학자의 팔레트]

조선일보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한때 낯선 나라, 도시에 갈 때면 건널목 신호등이 다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것을 유심히 보고 사진으로 모아본 적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만 만든 신호등이 있고, 또 어떤 곳에는 안에 걷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걷는 사람의 모양도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걷는 모양,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모양이 제각기 달라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는 신호등을 파란불과 빨간불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 불빛이 아닌가. 그런데 매우 드물지만 어떤 도시의 신호등은 실제로 파란색이기도 했다. 왜 미세하게 색과 모양, 그리고 실제 색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걸까. 그렇게 시작된 표지판 색에 대한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몇 가지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란색과 초록색은 색깔을 나타내는 스펙트럼에서 근처에 존재하는 색이다. 우리말에서도 파란색과 초록색은 푸르다는 넓은 의미에 포함되어 두루두루 함께 쓰인다. 실제 초록색인 숲도 푸른 숲이라고 하듯이. 이는 ‘푸르다’는 폭넓은 의미를 가진 언어가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쓰였고, 후에 색에 대한 개념이 세분화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언어권에 따라 초록색과 파란색을 구분하거나 묶어서 부르는 경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초록색이 신호등이나 안내판에 많이 사용되지만 이를 ‘파란불’이라고 부르는 건 넓은 의미에서 푸른색으로 통칭하던 데서 왔다.


‘일곱 빛깔 무지개’란 표현도 뉴턴이 처음 프리즘으로 빛을 나누었을 당시 조화로운 의미로 쓰인 일곱이라는 숫자를 도입하여 나눈 것이지, 다른 숫자를 적용했다면 무지개색은 열두 색이 되었을 수도 있다. 색의 스펙트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어디까지 노란색이고 초록색인지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 사이에 연두색도 있지 않은가!


적도 부근의 중앙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유독 자외선(무지개색 스펙트럼에서 보라색의 바깥에 존재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이 매우 세다. 이런 나라에서 유독 파란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부른다는 학설도 있다. 보통의 경우 초록색으로 보이는 물체가 과도한 자외선 빛에서는 파란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서 부른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진화와 색의 명명은 문화, 역사 및 지각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 복잡한 현상이기 때문에 한 가지 근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름은 그렇게 불린다고 하고, 정작 신호등에서 멈춤 신호는 빨간불인데, 지나가도 좋다는 사인은 왜 초록색일까. 또 비상구 표지판은 왜 초록색일까. 사람에게 ‘금지’라든가 주의를 시키는 표지판은 강한 인상을 주고 시선을 끌기 위해 빨간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건물이나 계단 등의 비상구 표시는 신호등 색처럼 초록색이다. 비상 상황에서 출구 위치를 알려주는 이 사인은 정전같이 어두운 환경에서 사람 눈이 보이는 반응으로 결정된다. 사람의 눈은 밝은 곳에서는 붉은색을 강하게 인지하지만, 빛이 부족한 곳에서는 초록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망막에 색을 인지하는 세포들이 있는데, 우리가 빛의 삼원색이라고 부르는 빨강, 초록, 파랑(Red, Green, Blue)에 각각 반응하는 원추세포들이 존재한다. 이 중 빨간색은 자연의 색과 가장 보색이면서 구분이 되고, 가장 긴 파장을 가져서 산란이 적게 일어나 먼 곳에서도 식별할 수 있다. 주의나 경고 표지판에 많이 쓰이는 이유다. 이 외에도 빛의 명암을 인지하는 간상세포가 따로 존재하는데, 이는 매우 약한 빛의 명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색을 구별하는 원추세포보다 간상세포가 활발하게 반응하고, 이 간상세포는 특별히 초록색에 조금 더 민감하다. 정전 같은 어두운 환경에서는 빨간 불빛보다 이 간상세포가 상대적으로 더 민감한 초록 불빛이 사람들의 시야에 잘 들어온다.


우리가 규칙이나 규범이라고 정의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 대부분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약속, 언어와 문화적 배경으로 정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듯 기저에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색깔에 관계된 규칙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리라. 빛과 색의 과학은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민아 KIST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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