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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61회 그래미를 이끈 여성들

61회 그래미를 이끈 여성들

1년 전 그래미 시상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올해 그래미 무대를 휩쓴 여성들의 활약은 작년에 벌어진 사건과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먼저 시상식 후 물의를 빚었던 닐 포트나우의 발언부터 살펴보자.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CEO인 그는 음악계 내 성별 불평등을 묻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변한다. 여성 뮤지션들이 그래미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분발 "Step up"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의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래미가 백인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SNS에서는 #GrammysSoMale이라는 해시태그로 항의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핑크와 케이티 페리, 할시 등 여성 아티스트들의 분노가 이어졌다. 이러한 발언의 문제점은 여성들이 맞닥 들이는 유리천장과 구조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알레시아 카라는 60회 그래미에서 주요 부문 수상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SZA는 가장 많은 부문에서 후보자로 이름을 올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부문에서 에드 시런에게 수상의 영예가 부여된 사실과는 대조된다. 같은 부문 후보자였던 케샤의 Praying은 성폭력 가해자와의 법정 사투를 극복한 이야기였다. 인간의 존엄성이 빛나는 노래보다 너의 몸을 사랑한다고 반복하는 Shape Of You를 통해 어떤 숭고한 가치를 발견한건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MeToo를 상징하는 흰색 의상을 입고 다른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며 강간 문화 고발에 앞장선 케샤의 퍼포먼스는 작년 그래미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깊이 반성하고 분발해야 할 쪽은 이런 뮤지션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래미 주최ㅡ결정권자의 대다수가 남성인ㅡ측이다. 남성의 성과를 여성의 성취보다 중요시하고 주목하는 불공정성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오만함으로 가득 찼던 그래미가 추락하는 시청률과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던 모양이다. 올해는 지금껏 고수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여성 중심으로 재편된 시상식

그래미는 올해 본상 부문의 후보 인원을 다섯 명에서 여덟 명으로 늘렸다. 선거인단 역시 이전과는 다른 기준을 토대로 결성했다. 꾸준히 비판받던 다양성 부재를 보완하기 위해 39세 이하, 여성, 유색인종을 대거 포함시켰다. 또한 남성이 독식했던 사회자 자리에 흑인여성인 알리샤 키스를 배치하여 이미지 쇄신을 꾀했다. 알리샤 키스가 2005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발탁된 여성 사회자라는 점은 변화인 동시에 그래미의 극심한 남성 중심 구조를 반영한다. 이런 그래미의 결단에 부응하듯 그는 첫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미셸 오바마, 레이디가가, 제니퍼 로페즈,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음악이 삶과 여성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야기하며 여성 간의 연대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는 그래미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를 명료하게 표현한 장면이었다.

 

뿐만 아니라 향후 14년간은 단독으로 진행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유려한 진행 솜씨와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무대까지 선보였다. 맨발로 두 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며 냇킹콜에서부터 후보자로 선정된 ella mai, leon Bridges의 곡을 커버했다. 힙합의 레전드 로린힐의 대표곡과 자신이 피처링한 empire state of mind로 시상식장을 묵직하게 메울 때는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됐다. 수준 높은 퍼포먼스 덕분에 다시 step up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며 분노와 환희가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들은 단 한순간도 고군분투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 시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자. 작년에는 총 86개 부문에서 17개 부문에 한해 여성들이 수상했으나 올해는 38개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빅 4 부문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상에는 15명의 여성이 노미네이트 됐다. 동일한 부문에서 6명의 여성만이 남성과 경쟁했던 작년과 비해 더 많은 여성을 포용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카디비는 95년도에 신설된 베스트 랩 앨범 부문 사상 최초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랩퍼가 되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활약을 반긴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뿐 아니라 뮤지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아 리파는 올해의 신인상 수상 소감으로 닐 포트나우의 부주의한 발언을 인용해 여성들이 분발한 해였음을 밝혔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H.E.R 모두 여성들이 조명 받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강조했다.

그래미의 변화, 지속될 수 있을까?

그래미는 올해 여성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다. 음악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는 것.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제작된 연극인지, 진정으로 그래미가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공표한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슬프지만 예술이 만인 앞에 평등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산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난 5년간 899명의 후보 중 오직 9%만이 여성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음악 프로듀서의 2%만이 여성이고 3%만이 엔지니어와 믹서로 활동 중이며 이 중 그래미 수상자는 거의 전무하다. 그래미 정도의 권위를 지닌 곳이라면 솔선수범하여 린다 페리와 같은 여성 프로듀서를 홍보하고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다.

 

로드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겪은 사건 또한 그래미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로드는 작년 올해의 앨범상 후보 중 유일하게 무대에 서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원인은 그래미의 프로듀서인 켄 에를리히의 일방적 요구 때문이었다. 켄은 로드가 헌정 공연에만 참여하길 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곡을 선보이길 바란 로드는 통보와 다름없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올해 아리아나 그란데에게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아리아나가 원했던 곡 대신 켄이 선정한 곡을 넌지시 내민 것이다. 아리아나와의 협의에 실패한 뒤, 그가 모든 곡을 소화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며 책임의 화살을 돌리기까지 했다. 이에 아리아나는 뮤지션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결국 시상식에 불참한다. 이처럼 부당한 조건을 남성 아티스트에게도 요구하는지가 궁금하다. 유독 여성 아티스트들이 이런 일을 마주하는 것은 그래미가 여성에게만 위계적인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바다.

 

주최 측은 비판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오랜 기간 제자리에 정체되어 지루함과 차별로 가득 찬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에 금이 가지 않는다는 자만심 덕분이었을 터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여 불신의 시선으로 그래미를 관망한 게 벌써 수년째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뒤 이제는 폐지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확신했지만 여성들이 주도하는 무대를 보고 격분하던 감정을 조금 추스르게 됐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CBS에 의하면 작년에 비해 시청률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호평도 이어지고 있으니 적어도 올해의 생존 전략은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그래미가 이런 변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이다. 혁신적이라는 평을 듣지 않을 수준의 선택으로 자리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이미 늦어버린 걸 수도 있다. 부리나케 발맞추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어쩔 줄을 몰라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선연하다. 이들이 과연 식어버린 음악팬들의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어찌 됐건 존립의 이유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니 과거의 영광에만 사로잡혀 발전을 거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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