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 | 검색결과 - ZUM 허브

연관검색어
19년 복역한 독립운동가는 왜 ‘양복 수선공’으로 남았나
직썰
19년 복역한 독립운동가는 왜 ‘양복 수선공’으로 남았나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체포 당시 상황을 보도한 1924년 7월 26일 자 독립신문 기사. 왼쪽 사진의 ‘박상만’이 박 의사다. 재판기록이 실린 1924년 9월 1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이 자료를 근거로 1968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박희광은 남성자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부터 오동진(1889~1944) 휘하 통의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