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최초 국제전쟁 ‘보드카’ 발전시키다
[명욱의 술 인문학]
서양 최초의 국제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이 있다.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한 중부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어 벌인 전쟁이지만 정작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변질된 17세기 최대의 사건인 ‘30년전쟁’이다.
‘30년전쟁’의 배경 속에는 자유도시와 신교의 성장이 있었다. 자본의 발달로 도시가 성장했고, 더 이상은 중세적인 교리는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한 도시민들은 개신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이 식용으로 자주 먹지 않았던 감자는 ‘30년전쟁’ 이후 구황작물의 대표주자가 되면서 군 보급품에서 술의 주요 원료로까지 활용된다. |
독일의 막스 베버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따르면 가톨릭이 부자는 천국에 가기 힘들다고 말하는 무소유의 가치를 전달하던 것에 비해, 개신교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교리를 내세웠다. 이 때문에 개신교는 부유한 사람들을 비롯해 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초기 전쟁은 교리를 내세운 전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의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양쪽 진영 모두 가톨릭이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성장이 두려운 프랑스가 개신교 편에 서서 싸운다. 결과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개신교 국가들이 로마가톨릭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독립을 인정받았고 프랑스는 영토를 확장했으며 프로이센왕국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전쟁 속에서 활약한 작물이 있었으니 바로 ‘감자’였다. 감자는 원래 유럽인들이 지극히 꺼리던 작물이었다. 남미에서 건너온 이 작물은 어두운 땅속에서 자라났으며, 새싹이 나면 독성을 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땅 위에 있는 작물을 모두 황폐화시켰다. 밀, 보리밭 등을 적군이 발견하면 바로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의 유명 곡창지대 및 포도 산지는 대부분 황폐화되지만 감자는 살아남았다. 그래서 땅이 황폐해졌을 때 재배하는 구황작물(救荒作物)의 대표주자로 감자가 대두된 것이다. 다만, 이때까지 감자는 주로 돼지사료로도 많이 사용됐다. 그래서 감자를 많이 키운 독일에서 햄과 소시지가 발달할 수 있었다.
이후 감자는 독일을 필두로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으로 퍼진다. 그러면서 발전한 술이 바로 ‘보드카’다. 원래 보드카는 한국의 소주와 같은 개념으로 호밀, 보리, 밀 등으로 만드는 증류주였다. 하지만 저렴한 감자가 등장하면서 대표적인 보드카 원료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도 독일 등에서는 ‘슈냅스(Schnapps)’라고 불리는 감자 증류주가 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
한국에는 1824년쯤 산삼을 찾기 위해 숨어들어온 청나라 사람들의 식량으로 몰래 경작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20년대 강원도 회양군에서는 독일인 매그린이 난곡이라는 감자 품종을 개발했고, 자기 땅을 잃어버린 화전민이 많이 모인 강원도는 감자 재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본격적인 감자 주산지로 떠오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감자로 만든 전통 증류주도 나왔으면 좋겠다. 감자빵, 옹심이 등 감자를 이용한 수많은 음식이 있지만 감자를 이용한 술은 매우 적다. 옹심이 국물과 함께 즐길 감자 증류주를 만날 날이 오기를 바란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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