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여름, 시원한 맛을 찾아서
뜨거운 여름 열기를 식혀주는 속초의 푸른 바다 |
짙은 바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바야흐로 뜨거운 여름. 속초의 ‘시원함’을 입 안 가득 머금는다. 비로소 여름 휴양지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명태회냉면의 시초
함흥냉면옥
“여기 함흥냉면 하나요!” 함흥냉면옥의 문을 열자마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문한다. 커다란 주전자가 담겨 나온 따끈따끈한 육수는 갈비탕 같은 풍미를 지녔으며 삼삼하고 깊은 맛이 났다. 이거 밥 말아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즈음, 냉면과 냉육수가 담긴 주전자, 무생채 반찬이 나왔다.
함흥냉면옥 외관,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냉면을 먹어줘야 한다 |
일반적인 함흥냉면은 무채색의 단출한 냉면이다. 그러나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은 같은 이름이지만, 빨간색의 숙성 명태회 고명이 냉면 위로 올라간다. 과거 회냉면에는 보통 가자미회를 올렸는데, 함흥냉면옥에서 명태회를 고명으로 얹기 시작하면서 그 유명한 속초의 명태 회냉면이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따뜻하게 마실 수 있는 냉면 육수와 시원한 명태회냉면 |
맛은 전체적으로 삼삼하다. 그동안 맵고 새콤한 냉면을 맛 봐온 사람들이라면 식초와 양념장을 찾을지도 모른다(테이블마다 식초, 겨자, 양념장이 있다). 삼삼한 맛은 음식 맛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명태회는 질기지 않고 쫀득하게 숙성됐다. 만약 조금만 더 꼬들꼬들했다면 안 그래도 쫄깃한 함흥냉면 면발과의 조합이 과부하를 이뤘을 것이다. 간도, 쫄깃함도, 맛도 선을 잘 타는 느낌이다. 뜨끈한 육수 한 모금, 시원한 냉면 한 입. 이가 뜨겁다가 시리다. 바로 이 맛이 함흥냉면먹는 재미 아니겠나.
주소: 강원 속초시 청초호반로 299
영업시간: 월·화·목~일요일 10:30~20:30(수요일 휴무)
가격: 함흥냉면 1만원
●속초 여름의 대명사
청초수물회
자리에 앉으면 시원한 청초호가 창문 가득 차오른다 |
여름엔 역시 물회다. 여름 한정으로,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만드는 맛이다. 속초에는 수많은 물회집이 즐비하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청초수물회’에서는 ‘해전물회’를 선보인다. 해삼과 전복이 주를 이룬 물회라는 뜻이다.
바라만 봐도 오독한 식감이 느껴지는 전복과 해삼 |
이름처럼 오도독 씹히는 활전복과 해삼의 식감이 도드라진다. 그 뒤로 부드럽게 삶아진 문어, 바다의 향긋함을 품은 멍게, 뼈째회(작은 생선을 손질해 뼈가 있는 상태로 썰어 낸 생선회)의 맛이 파도처럼 입 안으로 밀려온다. 입 안 가득 오독오독 씹다 새콤달콤한 살얼음 육수가 목구멍으로 밀고 들어오면, 오장육부가 시원해지다 못해 너무 급하게 마셔 버리면 머리까지 찌릿찌릿하다. 이마저 ‘여름 별미’다.
거하게 차려진 청초수물회 한 상, 여름에는 이만한 밥상이 없다 |
새콤하고 달콤한 조합에는 고소함이 빠질 수 없다. 역시 속초 하면 오징어 순대다. 차가운 물회의 감촉을 고소하게 감싸 준다. 비빔면 & 삼겹살의 조합과 같은 맥락으로 완벽한 시너지다. 청초수물회에서는 특이하게도 떡을 반찬으로 내어 준다. ‘쫀득하다’보다는 ‘보드랍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인절미, 별미다. 이미 물회와 오징어순대로 초과 소화 근무를 해야 할 위장에게 미안해 떡 한 개만 집어먹었는데, 여행 일정 내내 남은 떡이 생각나더라.
주소: 강원 속초시 엑스포로 12-36
영업시간: 매일 10:00~20:50
가격: 해전물회(1인분) 2만5,000원, 오징어 순대 1만2,000원
●속초에서 찾은 빙수의 맛
흰다정
벽면 가득 채운 소담한 감성, 흰다정의 매력 |
분명 속초였는데, 카페 문을 열자마자 어느 일본 바닷가 마을에 온 것만 같다. 조용한 음악, 가만가만 담소를 나누는 이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간간이 나오는 낡은 텔레비전. 강렬한 여름의 햇볕은 문틈을 비집고 서성인다.
흰다정의 토마토빙수와 호지차블랑, 밤금단. 어느 하나 밀리는 맛이 없다 |
에어컨이 호쾌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자리에 앉아 말간 다홍빛의 토마토 빙수를 한 입 떠먹으면 어릴 적 우리 집 냉장고가 생각난다. 천으로 감싸져 있는 냉장고 손잡이를 당겨 차가운 토마토를 꺼내 숭덩숭덩 썰어 냈더랬다. 그리곤 달달한 설탕을 뿌려 먹던 그 맛. 흰다정 토마토 빙수엔 달콤하고 탱글탱글한 식감의 토마토 퓌레와 팥이 한가득 담겨 나온다. 부드러운 빙수 얼음은 우유를 베이스로 얼려서 ‘카키고리(かき氷)’식으로 갈았다. ‘카키고리’는 곱게 간 얼음에 시럽을 뿌려 먹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간식이다.
볶은 녹차 가루로 만든 ‘호지차블랑’은 떫고 쓴 대신 고소한 미숫가루 맛이 난다. 맨 위에는 짭짤한 밀크 크림이 올라가는데 생김새도 맛도 속초의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닮았다.
흰다정의 내부는 마치 어느 일본 바닷가 마을에 온 듯한 분위기다 |
‘밤금단’도 함께 즐기면 좋다. 찐밤과 백앙금으로 만들어 낸 화과자다. 포크를 대면 모래성처럼 스르르 무너진다. 까페 흰다정은 빙수가 파도치고, 스르르 밤금단이 흩어지는 것이, 꼭 속초를 빼닮았다.
주소: 강원 속초시 수복로 248
영업시간: 월·화·목~일요일 11:00~19:30(수요일 휴무)
가격: 호지차블랑 6,500원, 밤금단 4,200원, 토마토 빙수 9,500원
●속초 토박이 젤라토
라또래요
외관부터 시원한 매력을 풍기는 라또래요, 속초의 토박이다 |
라또래요는 속초 토박이다. 사장도 속초 토박이, 젤라토에 들어가는 재료도 속초 토박이.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감자, 딸기, 블루베리, 키위 등 로컬 식재료를 이용해 젤라토를 만든다. 아이스크림과 떡, 그 어느 중간에 위치한 쫀쫀한 식감이다.
라또래요의 젤라토.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다 |
시그니처 메뉴는 감자 젤라토와 쑥 젤라토. 강원도 햇감자로 만든 감자 젤라토 위에는 통후추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토핑처럼 올려 준다. 순간 이게 감자스프인지 젤라토인지 헷갈린다. 맛은 예상 외다.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포슬포슬한 감자 알갱이가 콕콕 박힌 식감이다. 놀란 건 바삭한 후추의 식감과 향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점. 쑥 젤라토는 향이 깊고 부드러운 식감이다. 쑥 가루가 뭉침 없이 고르게 섞여 있다.
라또래요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재료로 젤라토를 만든다 |
계산대 한쪽에서 판매하고 있는 카넬레(Cannele)를 지나쳐서는 아니, 아니, 아니 된다. 이토록 강조하는 덴 이유가 있다. 겉부분은 이제 막 부쳐 낸 전(煎)의 바깥 부분처럼 바삭하고, 안쪽은 에스프레소 향이 나면서 쫀득한 식감이 재미있다. 옴폭 들어가 있는 카넬레 윗부분에 차가운 젤라토 한 스푼 톡 얹어 베어 물면 머릿속으로 세 음절이 떠오른다. 유레카. 아이스크림과 크루아상 조합을 처음 맛봤을 때만큼 인상적이었다. 주차는 라또래요에서 400m 떨어진 해수욕장 3공영 주차장에서 가능하다.
주소: 강원 속초시 동해대로 3938-1
영업시간: 매일 11:00~19:00
가격: 한 가지 맛 4,500원, 두 가지 맛 5,000원, 카넬레 2,500원
글·사진 홍은혜 기자 ehtrip@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