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없이 이런 절경을?"… 내장산 부럽지 않은 5km 평지 가을 단풍 명소
가파른 산행 없이 즐기는 가을 단풍 명소, 전북 순창 강천산군립공원. 평지 5km 산책로를 따라 유모차·휠체어로도 만나는 붉은 단풍 터널이 절정을 맞았다.
순창 강천산
가을빛 애기단풍이 수놓은 5km 붉은 길
강천산군립공원 전경 / 사진=순창군 |
매년 10월 말, 대한민국은 붉은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이 황홀한 절경을 얻기 위한 대가는 혹독하다. ‘가을 단풍’과 ‘가파른 산행’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며, 우리는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체력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 속에 살아간다.
이 ‘단풍=고행’이라는 견고한 공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곳이 있다. 유모차와 휠체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단풍 터널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통과하고, 걷기 힘든 이들은 단돈 1천 원의 전기열차로 절경의 핵심부까지 진입한다.
이곳은 ‘노력과 보상의 비례 법칙’이 처참히 깨지는, 대한민국 가을의 ‘혁명’이다. 전국 최초의 군립공원이라는 역사적 자부심이 빚어낸 가장 평등하고 아름다운 가을, 전북 순창 강천산군립공원(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97) 이야기다.
“5km의 평지, 휠체어를 환영하는 붉은 카펫”
강천산 단풍 / 사진=투어전북 |
어른 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등산 스틱 대신 유모차를 미는 부모와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의 평화로운 풍경이 먼저 눈에 띈다. 강천산군립공원의 핵심은 정상이 아닌 ‘평지’에 있다.
매표소에서 시작해 병풍폭포와 강천사를 거쳐 구장군폭포에 이르는 약 2.5km(왕복 5km)의 산책길은, 이곳이 과연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평지 흙길로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맨발 산책로’지만, 실제로는 모든 이동 약자를 위한 ‘붉은 카펫’이다. 유모차와 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잘 다져진 길 양옆으로, 이 산의 주인공인 애기단풍이 도열하며 눈높이에서 붉은 터널을 만든다. 굳이 왕자봉(583.7m)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단풍의 하이라이트 90%를 이 5km의 평지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가장 편한 길에서 만나는 가장 강렬한 ‘애기단풍’”
순창 강천산 강천사 / 사진=투어전북 |
그렇다면 이토록 편안한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시시할까? 그 반대다. 강천산은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별명답게 사계절 내내 수려한 산세와 깊은 계곡을 자랑하며, 그 정점은 고추장처럼 맵고 진한 붉은빛의 가을 단풍이다.
특히 강천산의 단풍은 일반 단풍잎과 다르다. 손바닥만 한 다른 단풍과 달리, 아기 손처럼 작고 귀여운 애기단풍이 주종을 이룬다. 이 애기단풍은 잎이 작아 햇빛이 더 잘 투과되며, 그 결과 다른 어떤 산보다 투명하고 강렬한 붉은색을 뿜어낸다.
산책로 초입부터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병풍폭포, 고즈넉한 강천사를 지나 길의 종착지인 구장군폭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풍경이 이 강렬한 애기단풍과 어우러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특히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높이의 ‘현수교(구름다리)’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단풍의 절경은 강천산의 백미로 꼽힌다.
“1981년 ‘최초’, 그 철학의 무게”
강천산 가을 절경 / 사진=투어전북 |
강천산의 이런 파격적인 ‘포용성’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 답은 역사에 있다. 강천산군립공원은 무려 1981년, 전국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명소다.
이는 단순한 ‘1호’ 타이틀이 아니다. 1980년대 초, ‘자연보호’와 ‘국민 복지’라는 개념이 막 태동하던 시기, 순창군은 이 빼어난 절경을 일부 등산객이 아닌 모든 ‘군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구적인 철학을 실천에 옮겼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원’이라는 40여 년 전의 설계 철학이 지금의 완벽한 무장애 단풍 명소를 만든 근간이다.
최영일 순창군수가 “전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강천산만큼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데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그 풍경을 뒷받침하는 따뜻한 배려의 철학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입장 마감, 주차는 무료”
강천산 현수교 / 사진=순창군 |
강천산군립공원의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매표 마감은 오후 5시(17:00)에 종료된다. 해가 짧은 가을철, 5시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최소 오후 3~4시에는 도착해야 여유롭게 구장군폭포까지 왕복할 수 있다.
반가운 소식은 주차다. 제1주차장부터 제5주차장까지 넓은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모든 주차장의 요금은 ‘무료’다.
이번 주말, 가파른 등산로 앞에서 망설였던 부모님을 모시고, 혹은 아이의 유모차를 밀며 등산화 대신 편안한 운동화 차림으로 순창을 찾아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안하고, 가장 평등하며, 가장 강렬한 붉은 가을이 그곳에 있다.
유다경 기자 ttgyeong@telltri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