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개펄서 잡은 꽃게-조개로… 어부와 종업원에게 진수성찬을[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전북 부안군 군산식당의 ‘충무공정식’을 주문하면 꽃게탕과 조기조림, 톳무침 등 다양하고 신선한 찬이 나온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
![]() 김도언 소설가 |
겨울 바다를 보러 충동적으로 격포에 왔다.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격포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권역에 속하는 수려한 관광지로, 위도 등을 오가는 여객터미널 항과 어항으로 모두 이름난 곳이다. 인근 군산, 서천 등과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해산물의 중간 집산지로도 예전부터 ‘유명짜’했던 곳이고.
요기를 하기 위해 33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군산식당을 찾았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개펄이 발달한 서해 일대는 꽃게와 조개류가 풍성하게 잡힌다. 이곳 격포항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히 백합조개는 현지인들이 입을 모아 특산물로 꼽을 정도로 실속과 맛이 일품이다. 보통 사람들은 흔전만전한 것들의 맛을 평가절하하는 버릇이 있지만 현지에서 먹는 백합 맛은 다른 차원을 보여줬다.
군산식당 역시 꽃게와 백합을 주재료로 삼아 정식을 팔고 있었는데, 내가 주문한 것은 ‘충무공정식’이라는 메뉴였다. 꽃게탕과 조기조림, 김구이 같은 백반에 어울릴 만한 찬과 함께 감칠맛이 으뜸인 오징어젓갈, 신선한 톳무침, 그리고 양념과 간이 맞춤한 갑오징어무침, 시금치와 숙주나물 등이 나왔길래 나는 고추장과 참기름을 달라고 해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꽃게탕의 깊고 얼큰한 맛은 숙취를 한 방에 날려주었고, 백합죽은 얼큰한 국물로 얼얼해진 속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철야 조업을 마치고 새벽에 격포항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젖은 옷을 말리면서 이 집 음식으로 허기와 피로를 풀고 햇살 같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좋은 음식엔 분명 위로의 기능이 있는 법이니까.
이것은 좀 가외의 얘기일 수 있는데, 필자가 군산식당을 찾은 시간은 평일 오전 9시경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남은 명의 내국인 종업원과 외국인 종업원들이 마주 앉아 오순도순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의 상에 놓인 밥과 반찬을 곁눈으로 살피니 제대로 차린 백반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각별한 인상을 받았다. 종업원도 식구처럼 살뜰하고 각별하게 대하는 이 집 주인의 인상만큼이나 다감한 면모를.
사실 필자는 차분한 취재를 위해 일부러 피크 타임을 피해 노포를 방문할 때가 잦은데, 그러다 보면 종종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식사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간단한 식단에 누가 볼세라 허겁지겁 해치우듯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밥을 팔기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야말로 편하고 맛있게 밥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 그래야 손님들의 식사를 진심으로 도울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까.
그런데 군산식당은 피크 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전 9시에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백반정식을 차려내고 있었다. 노포를 다니는 동안 종업원들이 이곳처럼 편하게 식사하는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노포란 무엇일까. 오랫동안 맛과 정성을 인정받으며 밥을 팔고 술을 파는 곳이 노포를 설명하는 레토릭의 전부일까. ‘손님 시점’이 아니라 ‘종업원 시점’에서 보면 노포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노포는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활을 온존케 하고 북돋워서 한 개인의 숭고한 자존감과 행복을 돕는 곳이기도 하다고. 군산식당에서 나는 그 아름다운 가능성을 보았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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